홀연히 미국으로 유학 떠난 김한정 실제로 뭐했나

김한정 전 비서관이 극비리에 입국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김 전 비서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사실상 동교동의 대변인 겸 비서실장 역할을 해오다 2005년 갑자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김 전 비서관의 유학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새나왔다. 일부에선 김 전 비서관이 대북송금 특검, 노벨평화상로비의혹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피해 도망치듯 미국으로 간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08년 국정원 직원이었던 김기삼씨가 대북송금과 노벨상로비 의혹을 다시 제기했을 때도 김 전 비서관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DJ의 입’으로 통했던 그였지만 끝내 입을 다물었다. 김 전 비서관은 일고의 대응 가치도 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일축할 뿐이었다. 하지만 김기삼씨는 DJ정부당시 김 전 비서관의 입김이 막강했으며 DJ정부 때 일어난 주요사건의 배후에는 김 전 비서관이 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말하자면 김 전 비서관은 숨은 실세라는 것이다. 김 전 비서관의 입국이 사실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주목을 끄는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김 전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 재임중 청와대 제1 부속실장을 지냈다. 그는 대북송금, 비자금조성, 노벨상로비의혹 등으로 동교동쪽에 세간의 시선이 쏠릴 때마다 김 전 대통령의 방패막 역할을 적절히 수행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DJ정부 때 정책업무를 담당했던 인사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김 전 비서관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로 나뉜다. 추진력 있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확고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있다. 또 다른 평가는 최고 권력자의 꼭두각시로 온갖 정치적 비리에 앞장선 인물이라는 것이다.
과거 외교관이었던 한 인사는 김 전 비서관에 대해 “그의 직책은 허울뿐이었고 실제로 그가 한 일은 정치적으로 훨씬 더 복잡한 일이었다. 대통령의 밀사 노릇을 하기도 했다. 내가 해외에 근무할 때 그가 대통령의 지시를 직접 전달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직 국정원의 한 관계자 A씨는 김 전 비서관에 대해 “국정원에서도 그의 입김은 센 편이었다. 그가 계획을 주도하고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베일에 가려진 권력자였다”고 증언했다.
“나는 평범한 공무원”
김 전 비서관이 일반적인 비서관과는 확실히 달랐음을 보여주는 증언은 곳곳에서 나온다.
국정원 전 직원이었던 B씨는 김 전 비서관에 대해 “김 전 비서관은 DJ의 자서전 해외 출판 작업도 담당했다. 그 작업과 기타 해외로비에 필요한 자금 30억원을 직접 운반했다”고 말했다. B씨는 당시 김 전 비서관과 자신이 해외에서 같이 손발을 맞췄던 적이 있어 이 같은 사실을 잘 안다고 전했다.
또 해외 대사관에 근무했던 L씨는 “대사관의 국정원 직원이 모든 보고를 김 전 비서관에 올렸다. 또 김 전 비서관은 누구의 지시를 받고 그것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모든 계획을 짜고 직접 현지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작업에 필요한 자금 조달도 그가 담당했다”고 말했다.
이런 증언들은 김 전 비서관이 김 전 대통령에 말을 편하게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일 뿐 아니라 김 전 비서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책에 주요하게 반영됐다는 김기삼씨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김 전 비서관은 “나는 그저 평범한 공무원일 뿐 그런 일은 하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일부에서 증언하는 것처럼 권력의 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턱도 없는 억지라는 것이다. 또 DJ정부의 여러 비리 의혹들에 관여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부정하고 있다. 자신이 그럴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게 김 전 비서관의 일관된 설명이다.
김 전 비서관은 국제정치를 공부한다는 이유로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정작 김 전 비서관이 미국서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떻게 생활하는지에 대해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또 김 전 비서관은 자신의 근황에 대해 외부에 공개한 적도 없다.
미국에 머물고 있는 김기삼씨는 “김 전 비서관을 만나 보려했으나 쉽지 않았다. 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수소문 해 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의 근황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최근에는 그가 한국으로 들어갔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듣기에는 이미 들어 간지 오래라고 한다. 김 전 비서관이 귀국한 게 사실이라면 그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고 여운을 남겼다.
김 전 비서관의 행방을 알아보기 위해 김대중평화센터에 그의 입국여부를 아는지 확인해 봤다. 이에 평화센터의 한 관계자는 “비서관님이 입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김 전 비서관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다고 했다. 그의 근황에 대해서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국제정치 공부 후 사업준비?
이 관계자는 “정확히 언제 입국했는지는 모르지만 작년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쪽(평화센터)에는 안 나오신다. 앞으로 사업을 할 것이라는 얘기를 얼핏 들은 적 있다. 어떤 사업이라는 말은 못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2005년 2월 미국 유학을 떠난 김 비서관은 미국 뉴저지 주립 럿거스대에서 최소 1년 동안 유학하면서 옛 소련과 동구 공산권 붕괴와 북한의 대내외 정책변화 등을 연구할 계획이었다. 아울러 그동안 미뤄왔던 국제정치학 박사학위 논문도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김 전 비서관은 경남 함안 출신으로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김 비서관은 87년 대선 때 김 전 대통령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평민당 총재 공보비서, 아태재단 연구원, 청와대 제1부속실장 등을 지내며 김 전 대통령을 최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이밖에 2003년 6월에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20만 달러 수수설' 추가 고소·고발사건과 관련, 검찰조사를 받은 적 있다.
한나라당은 같은 해 4월 ‘20만 달러 수수설'을 청와대가 기획 폭로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김 전 실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