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빨 안먹히는 DJ ‘고민’

4.29 재보궐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선거에서 DJ의 입김이 상당 부분 줄어든 것이 눈에 띈다. 특히 민주당 텃밭인 전주에 정동영 전 장관과 신 건 전 국정원장이 나란히 무소속으로 출마해 이를 입증하고 있다. DJ는 직·간접적으로 정 전 장관과 신 전 국정원장의 무소속 출마를 반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은 더 이상 호남맹주로서 DJ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DJ는 정 전 장관이 출마를 저울질할 때부터 계속적으로 출마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DJ의 복심인 박지원 의원은 “무소속 출마는 없을 것이다. 결국 당에서 공천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출마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부득이하다면 공천을 주고 민주당으로 출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당과 정 전 장관 모두 DJ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민주당 지도부는 공천을 줘야 한다는 의견에 반해 끝까지 정 전 장관에게 공천을 주지 않았다.
정 전 장관도 무소속 출마는 안된다는 동교동측의 입장을 거스르고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고 말았다. 결국 당이든 정 전 장관이든 호남맹주인 DJ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수십 년간 호남의 맹주로 자리 잡았던 DJ가 이제 입김이 다한 모양이다. 포스트 DJ를 향한 잠룡들이 대권을 거머쥐기 위해선 결국 DJ를 뛰어 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신들의 입장에 맞춰 재보궐 선거를 치를 모양새”라고 말했다.
여기에 동교동계로 분류되던 신 전 국정원장의 무소속 출마로 더욱 확실히 증명되고 있다. 신 전 국정원장은 “전주 공천이 잘못됐다. 친노 386이 전주를 거머쥐는 것을 놔둘 수 없어 출마했다”고 말했다.
신 전 국정원장은 전주 출생으로 지난 15대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의 법률특보를 역임했다. 이후 인수위원을 거쳐 국정원에 발탁돼 국정원장까지 오른 인물이다.
누가 봐도 동교동계로 지칭되는 신 전 국정원장의 무소속 출마 강행은 그 만큼 DJ의 입김이 약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동교동계는 끝까지 신 전 국정원장의 출마에 대해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고 한다.
동교동측 관계자는 “신 전 국정원장이 전혀 우리와 상의 없이 출마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 전 장관과 마찬가지로 무소속 출마에 반대했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자칫 분당으로 이어질 수 있어 어떻게든 막아야했는데 무소속 출마를 강행 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이나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모두 차기 대권을 염두해 두고 있는 잠룡들이다. 이들이 대권을 위해선 호남맹주로 거듭나야 하고 이를 위해 DJ를 뛰어 넘어 포스트 DJ자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 정통한 소식통은 “어차피 DJ의 입김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대권을 노리는 잠룡들은 이제 포스트 DJ를 향해 약진할 때다. 정 전 장관과 정 대표는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중요한것은 정치9단 DJ가 이를 가만히 두고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데 있다”고 말했다.
재보궐 선거 이후 민주당은 한바탕 후폭풍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 전 장관의 복당과 지도부 책임론 등 다양한 측면에서 민주당을 한바탕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 DJ를 꿈꾸는 잠룡들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관심이 집중된다.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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