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잃은 대통령 연설 “한국은 취급 않습니다”

다국적 기업 구글이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하면서 인터넷 규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동안 포털업체들이 정부의 규제에 착실하게 협력했던 것과는 달리 구글은 한국에 대한 서비스를 포기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특히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라디오 연설을 유튜브에 업로드하겠다고 밝힌 터라 논란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청와대의 대통령 동영상을 한국 국적으로 올리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유튜브에 대한 위법성 검토를 지시하면서 구글과 정부의 갈등은 골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구글코리아가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하면서 재계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구글이 정부의 인터넷 실명제 방침을 거부하고 나서면서 정부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탓이다. 올해 초 개정된 정보통신망법 44조 5항에 따라 지난 4월 1일부터 유형별 일일 평균 이용자 수가 10만명 이상인 인터넷사이트는 게시판 사용자에 대한 본인 확인을 거쳐야만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를 어긴 사이트에 대해 시정명령이나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하지만 구글코리아는 지난 4월 9일 유튜브 한국사이트의 동영상 업로드와 댓글 업로드 기능을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실명제를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서비스 제한이라는 강수를 선택하겠다는 뜻이다.
무국적 대통령 연설 논란
이에 대해 정부의 시선은 썩 곱지 않다. 청와대가 지난 3월 27일 이 대통령 라디오 연설을 구글 사이트 유튜브에 업로드 하겠다고 밝힌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대통령 연설 동영상을 한국 국적으로 업로드를 할 수 없게 됐다는 적잖은 부담을 끌어안게 됐다.
물론 유튜브의 동영상 업로드와 댓글 기능은 여전히 살아있다. 다만, 해당 국가를 한국으로 설정하면 안된다는 조건이 붙었을 뿐이다. 세계를 상대로 서비스하는 유튜브는 국가와 상관없이 모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심지어 미국본사가 운영하고 있는 ‘youtube.com’으로 접속해 한국어 서비스를 선택하면 영상물 등의 게시물을 아무런 제한 없이 올릴 수 있다. 따라서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는 일은 없다는 것이 구글의 설명이다. 실제 유튜브에서 국가 설정이 존재하는 것은 불과 29개국에 불과하고 나머지 국가는 ‘World Wide’설정으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의 경우에는 일반 이용자와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연설을 한국 국적으로 올릴 수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결국 청와대는 지난 4월 10일 “당초 해외 홍보를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업로드는 지장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구글의 방침에 따라 대통령 연설 동영상은 무국적(World Wide)으로 올라가게 생겼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는 비아냥부터 ‘국제적 망신’이라는 비판까지 거론되고 있다.
당연히 구글을 보는 정부의 시선이 고을 리 없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 1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구글 대표자를 만나서 진위를 파악하고 있다”면서 “상업적으로 눈가리고 아웅한 것”이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이날 최 위원장의 발언은 최근 유튜브의 반발에 대해 정부 측 공식적 입장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최 위원장은 이어 “실태조사를 통해 본인확인제도 시행에 따른 추가 보완조치나 제도 불이행 사업자에 대한 처리 등에 대한 대책 등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이 발언을 한 이후 방통위는 실무 차원에서 대응책 마련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위는 이르면 주중 상임위원 주재로 후속조치 마련을 위한 대책회의를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방통위 대책회의에서는 본인확인제 시행 이후 7일간의 의무 불이행에 대한 행정조치와 우회접속의 편법성 여부, 구글코리아 한국사업의 적합성 등이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같은 방통위의 행보는 다분히 정부 입김이 작용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튜브 자체는 국내법인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튜브는 지난 2006년 미국 구글 본사에 인수 된 이후 미국에 법인을 두고 전세계를 상대로 서비스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방통위의 위법성 검토도 결국 흐지부지 되지 않겠느냐”라고 전망했다. 유튜브를 직접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 신통치 않다는 분석이다. 그래서인지 현재 구글 측은 종전의 의지를 굽힐 생각이 없어 보인다.
구글의 레이첼 웨트스튼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총괄 부사장은 구글 공식 블로그에 “특정국가의 법과 민주적 절차의 부재가 우리의 원칙에 너무 벗어나 있다”며 “법을 준수하면서는 사용자 혜택을 주는 사업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라고 글을 올려 한국 정부의 인터넷 규제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현재 포털 업계는 이같은 구글의 행보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구글코리아 측에서 유튜브 서비스 중단과 관련 “힘없는 사람들 목소리를 빼앗는 위험한 제도” 등의 비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기존의 포털사이트들은 졸지에 억압되고 통제된 인터넷 사이트가 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구글의 선택이 정치적 의도로만 비치는 감이 있지만 상당 부분 비즈니스적 고려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구글코리아는 최근 영업부문과 마케팅부문에 정리해고를 감행했다”며 “국내 수익이 신통치 않다는 점이 적잖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본사와 서버가 해외에 있는 구글은 기존 포털과 입장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인터넷 새 패러다임 오나
어쨌거나 ‘표현의 자유’라는 국민의 권익을 우선시 한다는 구글의 홍보 전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효과를 창출했다는 평이다. 이미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구글 유튜브는 인터넷 망명처로 비춰지고 있다.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동영상이나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UCC 등을 올릴 수 있는 정치적 피난처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측면만 본다면 구글의 방침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정부 측의 대응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자칫 정부에 밉보여서 사업 차질을 빚게 되는 것이 아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여론 통제’에 대한 논란에 불을 붙인 구글의 행보가 어떤 결과를 빚어낼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