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보험금 노린 패륜범죄’
지난 3월 9일 대구지방경찰청은 어머니 살해를 청부한 김모(29)씨와 청부살인을 의뢰받고 김씨의 어머니를 차로 치어 살해하려한 장모(31)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각각 존속살해미수와 살인미수.경찰에 따르면 2003년 9월 20일 오전 3시 30분경 장씨는 대구시 북구 칠성동 A약국 노상에서 김씨의 어머니 유모(64)씨를 승합차로 치어 전치 32주의 중상을 입혔다.
조사결과 범행은 어머니 앞으로 가입해둔 보험금을 노린 것으로, 어머니가 사망하거나 1급장애 판정을 받을 때 나오는 보험금은 무려 1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이후 김씨가 3개의 보험사로부터 수령한 금액은 총 1억5천만원으로, 유씨 앞으로 가입되어 있는 보험이 많은 것을 수상히 여긴 보험사들의 제보로 덜미가 잡혔다.당시 경찰에서 김씨는 “옷가게를 하면서 진 빚이 있는데다가 어머니가 하는 김밥가게도 장사가 되지 않아 경제적인 부담이 컸다”며 범행사실을 인정했다.
검찰, “알고보니 짜고친 고스톱”
그러나 얼마후 이 사건은 경찰수사를 뒤엎고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청부살인미수로 보기에는 여러가지 풀리지 않는 의혹이 있다고 판단한 검찰은 재조사에 착수, 경찰수사와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다. 검찰조사결과 이 사건은 보험금을 노린 아들의 청부살인 범죄가 아니라 어머니와 아들이 사전에 공모해서 저지른 전형적인 보험사기로 밝혀졌다. 경찰 수사단계에서 인정된 존속살해미수와 살인미수 혐의가 사기로 처리되고, 피해자였던 유씨가 공범자로 기소되는 등 사건이 검찰기소 과정에서 완전히 뒤집어진 것이다.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김밥장사를 하던중 6천만원의 빚을 진 유씨는 아들의 신용카드를 사용하다가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고민 끝에 이들 모자는 고액의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범행을 공모, 7개의 보험에 가입했다. 또 생명에 지장없이 1급장애 수준의 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카레이서 자격증이 있는 장씨를 범행에 포섭했다. 모자 합작 사기극임을 밝혀낸 대구지검 형사5부는 4일 김씨와 장씨를 구속기소하고, 김씨의 어머니 유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잔혹한 패륜범죄가 ‘간 큰 모자’의 어이없는 대사기극으로 판명되는 순간이었다.
사전 공모 의혹 제기돼
사건이 보도된 후 언론 등은 여러 가지 정황을 토대로 모자의 사전공모 의혹을 제기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선 범행시기와 살해의도 여부다. 경찰의 발표대로 김씨가 어머니를 살해할 작정으로 보험에 가입했다면, 왜 진작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는지다. 김씨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1년 3개월이 넘는 기간동안 월 50만원 상당의 보험금을 납입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어머니를 죽이지 않고 상해만 입혀도 사망에 준하는 보험금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있던 김씨가 살의를 가질 이유는 없었다. 경찰은 살인을 청부받은 장씨가 범행순간 마음을 돌려 유씨를 정면으로 들이받지 않았다고 했으나 검찰은 이 사건이 애초부터 공모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살해 의도가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사고발생 시각 및 유씨의 현재 건강상태도 의심을 살 대목이다. 유씨는 그 시간에 사고장소로 나갈 이유가 없었다. 또 유씨가 받은 1급 장애판정대로라면은 유씨는 영원히 하반신 불구로 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지 2년 6개월이 지난 최근 유씨는 보행이나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겪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모자의 범행 공모를 강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다.마지막으로, 사고직후 유씨 모자가 장애진단을 받기 위해 대구시내 병원을 전전했다는 사실이다. 유씨 모자는 2개 병원에서 1급 장애판정을 받지 못했다가 7개월여만에 한 종합병원에서 1급 판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유씨가 1급 장애판정을 받으려 애쓴 흔적이 포착됨에 따라 유씨가 자신이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사실을 미리 알았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 “자백까지 했는데…”
검찰조사로 뒤집힌 수사결과를 대하는 경찰의 입장은 그다지 편치 않은 듯하다. 경찰은 아들 김씨가 “어머니를 살해해서 보험금을 타내려 했다”고 자백을 해, 존속살인미수혐의를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고 직후 1급장애 진단을 받은 어머니 유씨가 보행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범죄 공모 가능성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 경찰청 관계자는 “사고 이후 김씨가 자신의 범행을 순순히 자백했다고 들었다. 경찰은 일단 용의자들에 대한 영장을 받아놓은 뒤 추가조사에 나설 예정이었던 걸로 알려지고 있다. 무조건 부실수사를 운운하며 경찰죽이기에 나서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경찰에서는 사기부분의 혐의도 첨부해 사건을 송치했기 때문에 경찰이 처음부터 수사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경찰의 책임은 다한 셈”이라고 주장했다.경찰내부에서는 “경찰의 조사결과대로라면 김씨는 존속살인미수죄를 적용받아 무거운 처벌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아들의 극단적인 처벌을 원치 않는 어머니가 변호사와 상의, 공모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진술을 번복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부모 마음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사건을 담당한 임철 변호사는 “엄연한 사실에 기인해서 원칙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일부러 처벌을 가볍게 하기 위해 변호사가 사실과 다른 진술을 유도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경찰관계자는 결과가 뒤집힌 이번 사건을 검경간 갈등 측면에서 해석하기도 했다.“경찰의 부실수사는 걸핏하면 도마에 오르곤 한다. 수사권 조정안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현재, 이런 사건은 경찰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검찰에는 더없는 기회인 셈이다. 어느 쪽이든 수사상에 실수가 있었다면 인정하고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지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지거나 한쪽을 비방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러나 검찰은 경찰 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돼있는 사람들 같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 경찰내부에서는 그간 여러차례 지적되어온 실적위주의 수사관행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존속살해미수 및 살인미수건은 형사활동평가 점수에서 사기사건보다 3~4배 정도 높은 점수를 받는다.
문제는 구속영장이 발부된 후에는 죄목이 바뀌어도 점수가 유효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적을 올리려는 욕심에 과잉수사나 부실수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고, 수사상 허점을 인정하고서도 선뜻 재수사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는 것.경찰내부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불만과 자성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피해자 유씨에 대한 조사없이 용의자의 자백에만 의존, 성급하게 사건을 처리한 것에 대한 비난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경찰내부에서 여러 차례 지적되어온 실적위주의 수사관행 및 부실수사 역시 다시 한번 도마위에 오를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했다.
# 경찰 부실수사 도마위에20대 괴한들 눈앞서 놓치기도
그동안 검찰이 권력집단의 비호자 및 편파수사, 봐주기 관행으로 비난을 받아온데 반해 경찰은 부실수사로 도마에 올랐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불거진 수사권 조정안을 코앞에 두고 검경은 이러한 점을 이용해 서로 흠집내기에 혈안이 된 듯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하지만, 최근 경찰의 부실수사 의혹을 불러일으킬만한 사건들이 잇달아 터지자, 경찰은 적잖은 속앓이를 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2월 말에는 검찰의 수배를 받고있던 뺑소니범을 경찰이 파출소앞에서 놓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된 것은 경찰의 늑장대처. 경찰은 한달이 넘도록 피의자의 신원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다가 뺑소니를 당한 피해자가 청와대 등 외부기관에 진정을 낸 후에야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또 지난 13일 새벽 대구에서는 부녀자를 납치한 20대 괴한들을 바로 눈앞에서 놓치는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납치된 부녀자의 가족이 거액의 몸값을 건네기위해 나간 장소에서 경찰의 추적을 눈치 챈 범인들이 달아난 것이었다. 피해자가 무사히 풀려나긴했지만, 현장에서 범인을 놓친 경찰은 신중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여론의 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다.잠잠할만하면 터지곤하는 이러한 사건들은 경찰수사에 대한 신뢰도를 깍아내리는 것으로, 최근 60년 숙원 성취를 기대하고 있는 경찰내부에서는 여느때보다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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