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파 ‘쿠데타’조짐…“상왕정치 이상득 내쳐라”

‘상왕(上王 : 왕위에 왕)’, ‘만사형통(萬事兄通 : 모든일은 형님을 통해 이뤄진다)’, ‘영일대군(출생지 경북 영일을 따온 말)’ 모두 이상득 의원을 일컫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님이자 6선의 국회의원으로 별칭만큼이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 청와대조차 이명박 대통령을 사석에서 ‘이명박’이라고 불러도 제지하지 못할 정도다. 이런 이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로부터 ‘우리정치의 수치’라는 비판을 들었다. 4월29일 치러지는 경주 재선거에 자신의 오른팔격인 정종복 후보에 맞서 무소속 출마를 한 친박 정수성 후보의 사퇴 압력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친박 진영에서는 박 전 대표의 선공에 ‘형님의 전횡이 민심까지 왜곡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분노를 터트렸다. 당 전반적인 분위기 또한 ‘형님정치가 도를 넘고 있다’고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치 속성상 권력은 피를 나눈 형제라도 나눠가질 수 없다. 대통령의 형님일지라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야인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이상득 의원이 4월 재보선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지역이 경주 재선거라는 점은 진작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당내 분란을 원치 않는 이 의원으로서 친박 정수성 후보와 친이 정종복 후보의 맞대결은 화약고와 마찬가지다. 더욱이 이 의원의 지역구인 포항과 인접한데다 오른팔격인 정종복 후보가 출사표를 던진 만큼 무소속 후보에게 패할 경우 자신 역시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 의원이 친박 정 후보의 중도사퇴를 은근히 기대할만한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정 후보가 ‘이상득 의원으로부터 사퇴압력을 받았다’는 기자회견은 이 의원의 향후 정치 인생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대목이다. 본인이 직접 만나지는 않았더라도 밀사 역할을 한 이명규 의원이 형님의 뜻을 전했으리라는 점은 누가보나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친박 진영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후보자를 매수한 게 아니냐’며 선거법 위반으로 몰고 갈 태세다. 구체적으로 차기 국방장관직을 제안한 게 아니냐고 ‘빅딜설’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상득 친이 vs 친박
화약고 막으려다 뇌관 건드려
그러나 이 의원은 “사퇴 압박은 말도 안된다”면서 “육군대장에게 사퇴하라고 압박한다고 그게 먹히겠느냐”고 반문했다. 오히려 이 의원은 “정 후보가 먼저 보자고해서 약속을 잡았는데 다시 취소하기에 이명규 의원을 보낼 테니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자칫 이 의원과 정 후보의 진실 공방으로 축소될 공산이 높았던 ‘사퇴 압력 파문’은 박근혜 전 대표가 나서면서 친이와 친박간 전면전으로 번졌다.
박 전 대표는 작심한 듯 지난 1일 본회의장 출석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저도 언론을 보고 알았다”면서 “이번 사건은 우리 정치의 수치”라고 직격탄을 날렸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이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면서 이 의원을 겨냥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이미 박 전 대표는 지난달 30일 경주에서 선거 사무실 개소식을 마치고 대구를 찾은 정종복 후보가 악수를 청하며 사진을 찍으려하자 “사진 찍지 마라”며 면박을 준바 있다. 정 후보의 대구 행사에 갑작스런 방문은 박 전 대표를 곤혹스럽게 만들었고 정 후보 역시 사진 한방 제대로 찍지 못하고 돌아섰다.
친박계 한 인사는 “정 후보가 어떤 사람이냐? 지난 공천 때 이방호와 함께 친박 인사들을 날린 주역 아니냐”면서 “이를 잘 아는 박 전 대표가 정 후보를 반갑게 맞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여전히 친박 진영에서는 지난 공천 때 ‘앙금’이 남아 있는 셈이다.
반면 친이 진영은 형님 감싸기에 나섰다. 공성진 최고위원은 평화방송에 나와 “이상득 의원이 회유 공작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오래 닳은 정치인 같은 모습이다”며 정 후보를 비난했다. 안경률 사무총장의 경우 불교방송에 출연해 “이상득 의장이 한나라당 후보 공천 확정도 안됐는데 그런 일을 할 리도 없다”고 옹호했다.
한편 지난달 말에 귀국한 이재오 전 의원 역시 이번 파문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총선때 공천권을 함께 좌지우지했던 정 후보가 경주에서 다시 낙선할 경우 무리하게 친이 후보에게 공천을 줬다는 당내 비판과 함께 박근혜의 힘을 재차 실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중인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가 의원직을 상실할 경우 올해 10월에 치러질 재보궐 선거에 출마할 공산이 높다.
정 후보와 마찬가지로 친박 진영의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힌 이 전 의원은 ‘공천=당선’이라는 공식에 ‘박근혜’ 변수가 존재할 수 있다.
이 전 의원이 ‘조용한 귀국’을 선택한 것이나 몸을 낮추고 ‘당분간 정치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등 연착륙을 꾀하는 배경 또한 박 전 대표와 각을 세우지 않겠다는 의미다. 당연히 이상득 의원의 친박 후보 ‘사퇴압력 의혹’으로 친박 친이 감정 다툼이 본격적으로 불거질 경우 이 전 의원의 ‘역할론’은 더 적어지기 때문이다.
청와대-이재오,
‘형님 때문에…’ 전전긍긍
청와대 역시 대통령의 형님 일이라는 점에서 말을 아끼고 있지만 속내는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그동안 청와대 정정길 비서실장은 친박 인사들이나 정두언 의원 등 당내 소장파 등을 만나 당 화합을 도모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4월 임시국회에서 ‘일산분란’하게 MB 개혁 법안 통과를 바라는 청와대로서는 당이 재차 분란에 빠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게다가 친박 진영에서는 ‘박연차 리스트’에 허태열 최고위원, 김무성 의원 등 박 전 대표의 핵심 인사 2명이 거론되면서 청와대와 검찰에 불편한 기색을 토로했다. 친박 진영 일각에서는 MB 정권이 ‘박연차 리스트’를 통해 ‘친박 죽이기를 하고 있다’고 표적 수사라는 불만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청와대는 이미 친형 이 의원의 ‘이명박’ 호칭 때문에 곤혹스런 처지에 빠진 적이 있다. 지난 2월말 미디어 관련법이 국회 상임위에 기습 상정된 데 이 의원이 역할을 컸다는 언론보도에 “내가 ‘이명박이’ 시키는 대로 하는 똘마니냐”며 불만을 표출했다.
이 의원이 사석에서 ‘이명박이’라고 부른다는 점은 정치권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집권 2년차에 접어든 대통령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이제 고쳐져야 한다는 게 청와대의 생각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친형이라는 점에서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 하나가 ‘55인 선상반란’이다. 대통령의 형님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18대 공천 때 이 의원은 곤혹을 치룬바 있다. 공천 과정에서 친이재오계 ‘55인 선상반란’으로 ‘공천 불가’라는 위기에 처했지만 이를 잘 뚫고 생환했다. 당시 ‘공천 불가’의 배후에 있었던 이재오 전 의원이 대통령의 만류로 막판에 ‘꼬리’를 내리면서 유야무야됐다.
때가 오면 제2의 선상반란
일어날 것…신정풍운동
그러나 이번 이 의원의 ‘오버’는 가볍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친박 진영의 반응이다. 한 친박계 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를 봐라”면서 “국회의원도 아닌데 부패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와대뿐만아니라 민정수석실에 국정원까지 동원돼 감시를 했지만 돈을 받았다”면서 “관리된 인물도 이 정도인데 6선의 국회의원에 상왕으로 불리는 이 의원은 어떻겠느냐”고 한탄했다.
이 의원이 자칫하면 국회의원직 임기를 마치기도 힘들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친박 인사는 “민주당 정동영 전 의원이 정풍운동을 통해 DJ 오른팔인 권노갑 전 의원을 내쳤다”면서 “한나라당 역시 원희룡 의원이나 남경필 의원 등 당 지도부를 향해 쓴소리를 보내는 소장파들이 재차 한나라당발 정풍운동을 벌일 수 있다”고 예측했다. 친동생인 이명박 정권휘하에서 ‘형님’에 대한 검찰 조사는 무리겠지만 당내 소장파들이 뭉쳐서 제2의 선상 반란은 언제든지 터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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