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다시 ‘조국의 시간’이 돌아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2019년 하반기 이른바 조국사태를 전후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의 갈등에 대한 뒷이야기를 다룬 회고록인 ‘조국의 시간’이 발간됐기 때문이다. 조 전 장관은 장관 퇴임 이후 정치권 주변부를 떠돌다가 또다시 여야 대선경쟁의 한가운데로 발을 들였다. 조 전 장관의 회고록은 예약판매 분량을 포함해 공식 출간 하루 만에 이미 10만부를 돌파했다. 출판시장의 불황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특히 발간과 동시에 곧바로 온·오프라인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교보문고는 물론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서점에서 6월 첫째주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조 전 장관이 또다시 언론은 물론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으면서 정치권도 시끌벅적하다. 특히 조 전 장관의 회고록을 둘러싼 정치적 대치전선이 가팔라지는 가운데 차기 대선에 미칠 영향을 놓고 여야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 조국사태 놓고 여야 또다시 가파른 대치전선 가열
- 민주당, 송영길 대표 사과에도 논란 확산에 곤혹
- 이준석 돌풍과 대비 효과에 차기 대선 악재 ‘중론’
4.7 재보선 압승 이후 연일 상승세를 타고 있는 국민의힘은 표정관리에 나섰다. 아무래도 조국이슈가 쟁점화될 경우 더 이상 손해볼 것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상황이 다소 복잡한 쪽은 아무래도 더불어민주당이다. 특히 4.7 재보선 참패 최대 원인 중 하나였던 조국사태가 재현될 경우 차기 대선에서 악재로 작용할 게 불보듯 뻔하다. 더구나 조국사태를 매끄럽게 정리하지 못할 경우 당 내부 노선투쟁이 불거지면서 분열상 또한 커질 수 있다. 송영길 대표가 지난 2일 취임 한 달 간담회를 통해 조국사태에 대한 분명한 반성을 밝힌 이후 민주당 안팎에서 불거지고 있는 논란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의 더 큰 고민은 ‘조국사태’가 단기간에 해결될 이슈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돌풍’이 부는 가운데 ‘조국사태’를 둘러싼 공방으로 시간을 허비할 경우 보다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조 전 장관의 회고록 발간을 둘러싼 여야공방의 속내와 민주당의 고민을 짚어봤다.
조국회고록 與 ‘이를 우째’ vs 野 표정관리 속 폭풍공세
“국민의힘은 이준석 돌풍으로 활력이 만발한 반면, 우리 당은 다시 조국의 시간이라는 수렁에 빠져들 수는 없다.”(조응천 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中)
조국회고록을 둘러싼 민주당의 난감한 처지는 비주류인 조응천 의원의 페이스북 메시지에서 잘 드러난다. 하필이면 왜 차기 대선을 앞둔 중차대한 이 시점에 책을 냈느냐는 원망이녹아있다. 4.7 재보선 참패 후유증을 이제 겨우 수습하고 숨을 돌릴만한 상황에서 또다시 메가톤급 대형악재가 터졌기 때문이다. 특히 재보선 참패에서 나타난 20·30세대들의 지지 철회 현상이 조국사태로 상징되는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공정의 가치 훼손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이준석 돌풍을 의식해 발탁한 이동학 청년최고위원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이 최고위원은 조 전 장관의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초에는 동의한다면서도 “회고록이 이번에 나오는 게 아니라 다음 대선 끝나고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봤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다만 민주당 내부에서 조국 전 장관의 입장을 옹호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대체로 친문 강경파 의원 또는 친조국 성향 의원들이다. 이들은 검찰개혁을 주도했던 조 전 장관이 정치적 희생자라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김남국 의원은 “조 전 장관이 성찰의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 가지 보도되지 않았던 이면의 사실들을 책을 통해서 이야기하고자 했을 것”이라고 지지했다. 박찬대 의원도 “조국은 살아서도 죽어야 했다. 국민의 소망이 투사된 선봉장”이라면서 “그런 조국을 검찰이 언론과 함께 무참히 도륙했다”며 “칼 한 자루씩 품은 가슴으로 조국의 시간을 우리가 기꺼이 맞이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야권을 쾌재를 부르고 있다. 조국회고록 논란이 가져올 정치적 반사이익 때문이다. 야권 지도부는 물론 유력인사들이 조 전 장관을 거세게 비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은 “‘조비어천가’를 부르며 극렬 지지층에 환심만 줬다가는 국민에게 버림받는 폐족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조 전 장관과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인 원희룡 제주지사는 “조국은 국론 분열이 아니라 자신의 딸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다른 학생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아직도 반성을 모른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은 “조국에 의해 사냥 당해 상처받은 분들의 절규가 곧 조 전 장관에게 도달해 응분의 조치가 뒤따르기를 바란다”며 “본인과 가족 수사에는 사냥, 상처 운운하는 모습이 정말 가증스럽다”고 비판했다.

‘진퇴양난’ 송 대표 공식사과 당안팎 논란 여전
민주당은 그야말로 대략난감이다. 조국회고록을 옹호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인 셈이다. 특히 차기 대선이 불과 9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또다시 ‘조국변수’가 불거질 경우 대선국면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검찰개혁’이라는 화두를 놓고 ‘조국 vs 윤석열’ ‘추미애 vs 윤석열’ 갈등구도가 만들어질 때마다 여권은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졌다. 취임 이후 지지율 고공행진을 거듭해왔던 문재인 대통령은 지지율 급락에 레임덕 위기에 내몰린게 대표적이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21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던 민주당 역시 조국사태의 여파 등으로 4.7 재보선에서는 참패를 기록한 바 있다.
차기 빅3 대선주자들도 입장이 엇갈린다. 윤석열 전 총장과 지지율 양강을 형성한 이재명 경기지사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뜻하지 않는 발언이 친문 강성 지지층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는 조 전 장관을 옹호하며 친문 지지층 구애에 나섰다. 이 전 대표는 “아프고 미안하다”고 언급했다. 정 전 총리는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발가벗겨지고 상처 입은 가족의 피로 쓴 책”이라고 거들었다.
모든 시선은 송영길 대표에게 쏠렸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어떻게든 조국이슈를 정리하고 넘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2019년 10월 당시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공식 사과했지만 또다시 진화에 나선 것이다. 송 대표는 지난 2일 취임 한 달을 기념해 ‘국민소통·민심경청 프로젝트 대국민 보고회’에서 기념해 간담회에서 이른바 ‘조국사태’에 대해 “국민과 청년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독이 든 성배를 든 것이다.
송 대표는 “조국 전 장관의 법률적 문제와는 별개로 자녀 입시 관련 문제는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보고 반성해야 할 문제”라면서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지위 인맥으로 서로 인턴 시켜주고 품앗이하듯 스펙 쌓기를 해주는 것은 딱히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런 시스템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청년에게 좌절과 실망을 주는 일이었다.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바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당내 친문 강경파를 의식한 듯 “조 전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수사의 기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가족 비리와 검찰 가족의 비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할 것”이라며 윤 전 총장도 정조준했다.
‘조국사태 사과→윤석열 전 총장에 대한 검증 공세→민생올인’을 내세운 송 대표의 기조는 당 안팎의 공감대를 얻었다. 친문 핵심인 윤건영 의원은 “조국 전 장관을 좋아하는 분들의 마음이 아플 수도 있지만 대표는 전체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옹호했다. 비주류인 박용진 의원은 “아쉬운 감은 있지만 대표가 책임 있게 입장을 표명한 부분은 의미가 상당히 있다”고 밝혔다. 조 전 장관 역시 송 대표의 사과 직후 “저를 밟고 전진하라”는 입장을 냈다.
반면 송 대표의 사과 이후 즉각적인 후폭풍이 나타났다. 어차피 털고 가야할 이슈였지만 송 대표의 사과를 놓고 연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친문 강경파인 김용민 최고위원은 “송 대표가 사과한 것은 잘못”이라며 “이 사건의 본질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자신의 대권이나 정치적 야욕을 위해서 자기 상급자인 조국 전 장관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은 검찰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라 꼬집었다. 민주당 당원게시판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송 대표에 대한 인신공격적 비하와 더불어 자진사퇴나 탄핵을 공개적으로 촉구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월 이낙연 전 대표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건의를 언급했다가 당원들로부터 융단포격을 받은 것 이상의 융단폭격이다. 친문 재선인 전재수 의원은 “왜 사과를 하느냐는 당원 글이 상당히 있었다. 이는 우리 지지자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평가했다.
‘내로남불 꼰대’ 조국vs‘세대교체 젊음’ 이준석 희비교차

‘조국’이라는 키워드는 민주당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됐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갈 길 바쁜 지도부가 ‘조국의 강’을 건너려고 할수록 당내 친문 강경파들의 반발 강도 또한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이 조국 전 장관을 손절하지 못하고 옹호하면 옹호할수록 국민의힘 전당대회 과정에서 나타난 이른바 ‘이준석 돌풍’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프레임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젊은세대에게 내로남불의 상징이 돼버린 조 전 장관을 옹호할 경우 민주당은 이른바 꼰대 정당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더구나 민주당은 4.7 재보선 참패 이후 초선 의원을 중심으로 부동산 내로남불과 조국사태 반성의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터져나왔지만 친문 강성당원들의 반발에 사실상 유야무야된 바 있다. 이 때문에 여권의 전략가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이준석 돌풍이 거셀수록 대비되는 조국사태의 악영향을 진화하기 위해 고심 중이라는 후일담도 들려오고 있다.
반면 오랜 기간 ‘수구꼴통’이라는 낡은 이미지에 시달려온 국민의힘의 경우 이준석 돌풍의 효과로 세대교체 이미지 선점을 물론 개혁보수 정당으로의 입지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이준석 돌풍의 여파는 차기 대선 지지율 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갤럽의 6월 1주차 조사에서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3%의 지지를 얻었다. 이재명 경기지사(24%), 윤석열 전 검찰총장(21%)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5%)에는 밀렸지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2%), 정세균 전 총리·홍준표 소속 의원(이상 1%) 등 여야의 정치적 거물을 눌렀다.
만 40세가 되지 않아 차기 대선 출마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만큼 국민들의 세대교체 욕구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결국 민주당으로서는 최대 난제로 떠오른 조국사태의 매끄러운 처리와 이준석 돌풍 대비책 마련이라는 내우외환에 내몰린 셈이다.
김준석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