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 ‘꼰머’가 뭔지 알아?” 얼마 전 대학교 3학년인 딸이 당연히 아빠는 모를 것이라는 전제하에 물어본 말이다. 순간 ‘뜬금없이 내게 왜?’라고 생각했지만, 순발력을 발휘하여 “‘꼰대’는 알겠지만 ‘꼰머’는 모르겠는데, 아마 요즘 대학생들은 ‘꼰대’를 ‘꼰머’라고 부르나보지?” 딸이 박장대소한다. 둔감한 아버지가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해하는 눈치다. 사실 순간적인 기지로 말한 건데 딸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흐뭇했다.
보통 ‘꼰대’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요즘 젊은 후배들은 ‘꼰대’라고 바로 표현하면 어른들이 눈치 채기에 ‘꼰머’라고 한다. 즉 ‘대’의 글자가 ‘ㄷㅣㅓ’라는 점을 착안해 ‘ㄷ ㅣ’를 붙여 쓰면 ‘ㅁ’ 모양과 같아서 ‘꼰머’라고 부르는 것이다. 어른들은 눈치 채기 어렵지만 자기네들끼리는 ‘꼰대’라고 이해한다.(출처 : 한국대학신문(http://news.unn.net), 2019.04.08.)
정치권에 ‘꼰대논쟁’이 한창이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해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준석 후보에 대해 “국민의힘 당내에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문화도 있고”, 운운한 것이 ‘꼰대논쟁’의 발단이다.
장유유서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어른과 어린이 또는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는 지켜야 할 차례와 질서가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유교의 가르침인 『맹자』에 나오는 오륜(五倫)중의 한 덕목인 장유유서는 송나라 때 주희가 『소학』에서 그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핵심은 윗사람에 대한 아랫사람의 공경과 순종의 의무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이러한 발언에 쾌재를 부른 이준석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제가 말하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이 이런 겁니다. 시험과목에서 ‘장유유서’를 빼자는 겁니다. 그게 시험과목에 들어 있으면 젊은 세대를 배제하고 시작하는 겁니다. 지난번에 바른미래당 대표선거 나가서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단어를 제가 유도해냈는데 이번에는 ‘장유유서’입니다.”라며, 웅덩이 속에서 아등바등 대는 미꾸라지처럼 여기저기 흙탕물을 튀겼다.
그의 말대로 장유유서는 빼고 하는 것이 맞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그런 취지로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다 싶어 우쭐대며 기고만장(氣高萬丈)하고 있는 이준석 후보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 청년정치의 앞날 또한 그리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막돼먹고 버르장머리 없는 기고만장은 ‘젊은 꼰대’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다음날 “저는 ‘이준석 현상’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를 했는데 대선 관리를 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의 입장에서 보면 보수정당이고 해서 장유유서 같은 문화를 고려하면 고민도 있을 것이라고 한 마디 덧붙인 것인데, 이 취지를 간과하고 특정 단어만을 부각을 해서 오해를 증폭시키는 상황이 허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며, 자신을 변명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발언의 맥락을 살펴보면 그가 ‘꼰대 짓’을 한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남의 실수를 자신의 이익으로 치환하는 저급한 정치현실에서 위와 같은 비난은 정치인이 숙명처럼 안고가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더 가관인 것은 같은 당내의 군소 대권후보, 일부 국회의원 등도 정세균 전 국무총리 발언의 진위도 확인하지 않은 채 비판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밀림의 왕 사자가 하이에나 무리의 맛있는 저녁식사가 될 수도 있음을 여의도발 통신원들이 제대로 알려준 것이다. 먹잇감이다 싶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숟가락 하나 얹는 정치, 이러한 정치가 여의도 정치가 돼서는 안 된다.
‘꼰대논쟁’의 최대 수혜자인 이준석 후보는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컷오프를 1위로 통과하며 ‘꼰대정치’의 진수(眞髓)를 보여줬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니들이 ‘꼰머’를 알아?”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다.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