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은 실패했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시대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의 시대적 소명이라고 생각한 적폐청산도 제대로 이루어 내지 못했으며, 미래세대를 위한 청사진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신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철회하도록 만들었으며, 아직까지도 자신을 지지하는 소위 ‘문파’라 불리는 사람들은 고작 박근혜 전 대통령과 자신을 비교함으로써 억지 만족을 하고 있다. 유감스럽지만 그것이 1년 임기를 남겨놓은 문재인 대통령의 현실이다.
굳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촛불에 의해 탄생한 정부이지만 촛불이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를 어떻게 전환하라는 명령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그 당시 ‘박근혜 탄핵’을 이야기했지만, ‘개헌’을 통한 체제전환을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그것이 혁명인 줄 그 당시의 촛불시민들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혁명은 체제전환을 동반한다. 현대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체제전환은 헌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지난 촛불혁명 당시 체제전환을 함께 이루어 내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치명적 실패였다.
그러나 체제전환이 항상 혁명과 함께 올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의 9차례 개헌은 모두 혁명과 쿠데타, 정변 등의 정치변동과 함께 이루어졌다. 4·19 혁명 후의 1960년 헌법과 6월항쟁 후의 1987년 헌법은 혁명과 여야합의라는 쾌거를 달성했지만, 그 외의 헌법은 집권세력의 장기집권을 위한 플랜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이제 혁명도 아니고 정변도 아닌 평시 헌법개정을 이루어야 할 때다. ‘87년 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체제전환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18일,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개헌론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경국대전을 고치는 일보다 우리 국민들의 구휼미 띠집이 훨씬 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다. 그가 봉건왕조 시대인 조선의 경국대전을 들먹인 것도 놀랍지만, 구휼(救恤)이라는 봉건 잔재의 용어를 쓴 것은 더더욱 놀랍다.
구휼의 사전적 의미는 ‘재난을 당한 사람이나 빈민에게 물품을 주어 구제함’이고, 한자 뜻대로 해석하면 ‘불쌍함을 구제하는 것’이 된다. 국가역할이 언제까지 불쌍한 사람을 구제하는 데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 답답하기도 하거니와, 그가 목에 힘주어 얘기하던 기본소득과도 거리가 먼 것 같아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유림의 고장 경북 안동출신임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사고방식에 봉건적 잔재가 너무 강하게 남아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국회의장 재임 시절부터 헌법개정을 되뇌어 온 사람으로 대표적인 개헌론자이고, 이낙연 의원은 지난 16일 ‘광주선언’이라 불릴만한 개헌론을 꺼내 들었다. 이에 이재명 경기지사가 ‘개헌불가’를 천명한 것이다. 대선주자 1위 후보의 조급함의 발로일 것이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의심하듯 개헌 주장은 정략적 발생에서 나온 주장이 맞다. 그럼에도 87년 헌법은 이미 그 생명을 다했고, 새로운 헌법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개헌의 방향이 옳고 개헌을 통해 더 많은 공공선을 이룩할 수 있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하며, 내년 대통령선거는 국민적 합의를 통해 개헌을 이룩할 수 있는 최적기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자리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개헌론을 회피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개헌이 블랙홀이라며 회피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이재명 지사님!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개헌의 블랙홀을 허하시오. 모르긴 해도 당신이 대통령 되는 것보다는 쉬운 일일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그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