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소)장(인)을 찾아서-25] 저렴하면서 정 넘치는 수유리 빨래골 ‘기사식당 거리’
[서울 명(소)장(인)을 찾아서-25] 저렴하면서 정 넘치는 수유리 빨래골 ‘기사식당 거리’
  • 김혜진 기자
  • 입력 2021-05-21 18:35
  • 승인 2021.05.21 19:48
  • 호수 1412
  • 1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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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리 기사식당 거리 [사진=김혜진 기자]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서울에는 다양하고 독특한 명소, 그리고 장인(匠人)들이 있다. 일요서울은 드넓은 도심 이면에 숨겨진 곳곳의 공간들과 오랜 세월 역사를 간직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수유리 빨래골의 ‘기사식당 거리’다. 

서울 강북구 수유역 앞에서 강북 03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빨래골 공원지킴터’에 도착한다. 빨래골 터 표석에는 ‘궁중무수리들이 빨래터의 휴식터로 이용하면서 빨래골이라는 명칭이 생겼으며 인근 주민들이 빨래터로 이용했던 자리’라고 소개돼 있다. 북한산 물이 흐르는 골짜기를 살펴보니 물이 흐르는 방향이 빨래하기 적절하게 기울어져 있는 형태였다. 

강북구청에 따르면 옛날 궁에 살던 무수리들은 궁 근처의 청계천에서 빨래를 했지만 궁에서 나오는 빨래가 어마어마해 수많은 빨랫감 중 속옷 등은 다른 아낙들과 섞이지 않도록 궁과 멀리 떨어진 이곳 수유리 빨래골에서 빨래를 했다. 이들은 빨래골 터에서 빨래를 하는 김에 휴식까지 취하고 가는 등 독립적 공간으로도 활용했다고 전해진다.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수유로와 교차되는 부근에 즐비하게 늘어선 기사식당 거리로 향했다. 지역 교통의 중심이 되는 오래된 거리에는 언제나 기사식당이 있듯이 이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차로 길 양쪽으로 백반부터 불백, 김치찌개, 청국장, 해장국, 돈까스, 함박스테이크 등 웬만한 기사식당 거리보다도 더 다양한 메뉴의 맛집들이 있었다. 

여러 식당들 중 어디로 들어가 볼까 고민하다가 식당 앞에 택시들이 주차돼 있던 ‘맛집! 백운식당’으로 향했다. 택시기사들이 인정하는 맛집인지 궁금했던 참에 마침 식사를 마치고 식당 앞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있던 한 택시기사에게 물었다. 그는 “차 대기가 편해서 이곳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라며 “여기 식당 밥도 맛있어 자주 온다. 들어가서 한번 먹어보라”고 권했다. 

기사식당 메뉴인 묵은지 김치찜 [사진=김혜진 기자]
기사식당 메뉴인 묵은지 김치찜 [사진=김혜진 기자]

추천사를 듣고 식당 안에 들어서니 택시기사뿐 아니라 ‘혼밥족’이나 가족 손님들도 꽤 있었다. 이들은 찌개류 혹은 오징어볶음이나 갈치구이 등의 메뉴를 시켜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손으로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메뉴들로 인해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며 고민하다 ‘고등어 묵은지 김치찜’을 시켰다. 

주문을 하자마자 몇몇 밑반찬들과 밥이 바로 제공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글보글 끓는 1~2인용 냄비에 고등어와 묵은지 김치들이 한데 어우러진 고등어 묵은지 김치찜도 등장했다. 이곳은 밑반찬도 셀프로 담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도록 놓여 있었다. 따뜻하고 수북하게 담긴 밥과 반찬들에서 기사식당 특유의 후한 인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김치찜의 국물 맛도 진했다.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고 나니 계산대 앞에는 공짜 믹스커피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식당 인근을 둘러보니 아예 문을 닫거나 다른 메뉴로 영업을 준비하는 가게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이곳을 지나던 수유리 주민은 “코로나19로 인해 장사가 잘 안 돼서 문을 닫지 않았겠나”라며 “(문을 닫은 가게) 이곳 식당도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오래 장사를 해 왔던 집인데 최근에 폐업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비싸고 좋은 음식들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저렴하면서도 푸짐하고 정을 잃지 않는 기사식당의 메뉴들이 더욱 그리워질 듯하다. 

김혜진 기자 trust@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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