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석 교수의 서울시평]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일” 누가 하는가
[정용석 교수의 서울시평]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일” 누가 하는가
  • 정용석 교수
  • 입력 2021-05-14 21:07
  • 승인 2021.05.14 21:30
  • 호수 1411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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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5월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을 통해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로서는 엄정한 법 집행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문 대통령의 5.10 “남북관계 찬물” 경고는 남북관계를 파탄 낸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훈계성 통첩은 아니었다. 지난 3월 시행에 들어간 대북전단금지법에 맞서 대북전단을 띄우는 탈북단체들에 대한 경고였다. 대북전단은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와 인권의식을 일깨워주기 위한 메시지이다. 문 대통령은 진짜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은 김정은에게는 엄정한 경고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돈 없고 의지할 곳 없으며 정치적 지원세력도 없는 탈북민들에게 대북전단을 뿌리면 “엄정한 법 집행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겁주었다.
 

물론 대북전단금지법은 전단살포를 금지 한다는 데서 전단을 북으로 날려 보내는 행위가 위법일 수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대북전단 살포를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로 몰아간 건 남북관계 교착 책임을 김정은이 아닌 탈북민들에게 전가하려는 의도로 읽힐 수 있다. “남북관계 찬물”은 이미 2년 전인 2019년 2월 김정은이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끼얹었다. 김은 이 회담에서 고철덩이 돼버린 영변의 낡은 핵시설 폐기 조건으로 대북제재를 모두 풀라고 요구했고 트럼프는 터무니없다고 거부하였다. 김은 핵무기를 그 대로 보유한 채 대북제재만 해제하라고 요구, 트럼프에게 찬물을 끼얹은 것이었다.
 

그 후 북한은 미국·남한과의 모든 대화를 끊고 “삶은 소 대가리” “뻔뻔한 사람” 등 문 대통령에 대한 막말을 퍼부었다. 연이어 중*단거리 미사일도 발사,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 이어 북한은 개성의 수백억원 남한 자산인 남북공동사무소를 폭파, 남북관계를 초긴장상태로 몰고 갔다.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은 자는 분명히 김정은이었지 탈북단체들은 아니었다.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최고 존엄’에 대한 도발이라며 거친 반응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은 그 전엔 탈북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 기간에도 남북대화를 이어 갔었다. 필자가 1980년대 남북적십자회담 한국측 대표로 서울·평양 회담에 임했을 때도 북측은 한·미군사훈련 실시 여부와 관계없이 회담에 나오곤 했었다. 그러다가도 북한은 회담이 북의 의도대로 먹혀들어가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한·미훈련 등 온갖 구실을 만들어내 회담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리곤 했었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이 탈북민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는 것도 남·북·미 대화를 결렬시키기 위한 트집에 불과할 따름이다.  
 

대북전단금지법은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의 한 마디에 복종해 서둘러 만든 “김여정 하명 법”으로 통한다. 김여정은 작년 6월4일 탈북단체들의 전단살포를 비난하며 남한 당국에게 전단살포를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통일부는 4시간30분만에 “대북전단살포 금지법안을 준비중”이라고 굽실댔고 이 법을 서둘러 관철시켰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진영 국가들은 대북전단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반대한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비판여론엔 등을 돌린 채 탈북민들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서만 엄중히 경고했다. 문 대통령의 엄중 경고는 김여정이 5월2일 대북전단 살포 책임이 “쓰레기들에 대한 통제를 바로 하지 않은 남조선 당국”에게 있다고 경고한지 8일 만에 나왔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의 탈북민들에 대한 5.10 엄중 경고는 “쓰레기들에 대해 통제”하라는 김여정의 5.2 하명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대북전단금지법이 “김여정 하명 법”이라면, 문 대통령의 탈북민들에 대한 전단살포 금지 엄중 경고는 “김여정 하명 경고”가 아닌가 싶다.

■ 본면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용석 교수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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