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는 ‘복합적 문제’ 개인마다 천차만별… 일괄적 정책만으론 해결 어려워”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수원시의 오랜 숙제로 남아 있던 ‘수원역 성매매 집결지’가 최근 폐쇄를 준비 중이다. 성매매 업주 및 건물주들은 빠른 시일 안에 자진 폐쇄하고 철수하겠다고 입장을 내놨고 수원시도 경찰·시민단체·주민들과 협력해 공간 정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소외된 ‘성매매 피해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수원시는 ‘성매매 피해자 자활지원 조례’에 따라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자활 지원 필요성을 논의했지만 전문가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지원 정책”이라며 성매매 피해자들에 대한 깊은 고민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2019년 12월 ‘수원시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활 지원 조례’가 처음 제정됐다. 당시 최영옥 수원시의회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조례는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정비함에 있어 ‘성매매 피해자 보호법’ 제3조에 따라 성매매 피해자 등에 탈(脫)성매매 및 자립·자활을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이에 따라 수원시는 지난해 초부터 성매매 피해자 자활 지원 사업을 진행 중이다. 사업은 집결지 성매매 피해자 중 탈성매매 희망자를 대상으로 최대 12개월간 생계비 월 100만 원, 주거지원비 800만 원 이내, 직업훈련비 360만 원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에는 성매매 피해자 현장 상담소를 열기도 했다. 지난달 기준으로 91명이 총 257회 상담을 받았다.
자활 지원 사업 추진 현황(지난달 말 기준)에 따르면 현재 수원시 성매매 피해자 지원 대상자 11명중 6명이 우선 지원을 받고 있다. 다만 현재 예산으로는 추가 인원 지원에 어려움이 있어 후순위 5명에 대해선 5월 말 자활지원위원회를 열고 논의 후 지원할 예정이다. 시는 올해까지 30여 명 정도가 지원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수원시 여성정책과 관계자는 “현재 성매매 집결지에 남은 성매매 피해자는 대략 100여 명 정도로 파악된다. 자활 지원 사업 신청자는 계속 늘고 있다”며 “집결지가 곧 폐쇄되기 때문에 당장 나가야 하는데 다른 일을 찾는 게 여의치 않아 신청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이들에게 정확한 사업 내용을 알리는 게 우선”이라며 “소통하는 사람이 업주와 주변 동료들뿐이라 사업 내용이 잘못 소개되면 도움을 제대로 받을 수 없어 이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책적으로 성매매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활 지원 사업이라고 하면 이들이 뭔가를 배워서 자립하겠지 하는 기대를 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이곳에서 오래 계신 분들의 경우 직업을 갖는 것보다 마음을 치유하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는 게 우선인 것 같다고 생각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매매 피해 여성은 어디로 가야 하나
수원여성인권 돋음을 비롯한 성매매 피해자 자활 지원 단체 등은 성매매 문제 해결과 성산업에 유입된 이들의 탈성매매를 위해 상담과 함께 법률 및 의료 지원, 긴급 구조, 직업 훈련 등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나 지자체가 자활 지원을 하는 건 좋지만 정형화된 틀의 일괄적인 정책만으로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는 성매매 피해자들이 유입되는 경로부터 처한 상황 등이 천차만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10대 때 유입돼 오랫동안 집결지 생활을 한 경우 사회에 발을 내딛는 것조차 어려워하기에 천천히 꾸준한 도움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선영 수원여성인권 돋음 상임대표는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성매매는 복합적인 문제가 섞여 있다. 성매매 피해자들은 자활 지원을 통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개개인마다 천차만별”이라며 “수원역 집결지는 50~60대 분들도 많은데 이들은 10대 때부터 가정 폭력, 가출 등으로 집을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랫동안 지내던 곳을 손쉽게 털어내고 사회로 나와 취업 등 당장 대안적인 삶을 마련하는 게 말처럼 쉬운일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매매를 안 하고도 지낼 수 있는 기간을 늘리든지 그 시간에 좀 더 나은 생각이나 상황을 마련할 수 있게끔 돕는 게 필요하다. 하루 한 시간이라도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며 관계를 맺거나 스스로의 권리 등을 이해하고 차근차근 확보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에 시간이 더딜 수밖에 없다”며 “정책과 제도는 한시적이고 결과 지향적이지만 단순히 얼마나 취업했는지 등의 양적인 정도만 따져선 안 된다. 그동안 성매매 방지법이 존재했음에도 국가가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방치하지 않았나. 시혜적 차원에서 지원을 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성매매 피해자들에게도 스스로 작은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밤에 몇 시간 잤는지, 오늘은 뭘 먹었는지, 버스를 타고 왔는지 등 일상적이고 사소한 부분이지만 계속 이 같은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새 눈빛들이 달라져 있곤 한다”며 “자립은 결국 스스로의 역량 강화, 힘을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한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활동가로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들어가 석·박사 논문을 쓰거나, 책을 내기도 하는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한다”며 “개인적·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치열하게 자신들의 삶을 살아낸 ‘생존자’로 이들을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대표는 “집결지에서 나오는 걸 탈성매매라고 할지, 다시 돌아가지 않는 것을 탈성매매라고 할지 생각했을 때 ‘자활’은 굉장히 애매한 개념”이라며 “일시적으로 벗어났다가 지원이 필요하면 받고 또 어려운 상황이 되면 (집결지로) 돌아갔다가 다시 나왔다가 하는 과정이 있을 텐데 이러한 과정들을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명 ‘미아리 텍사스’로 불린 서울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안에서 약국을 20여 년간 운영하며 성매매 피해자들을 곁에서 지켜본 이미선 약사는 “성매매 피해 여성들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이곳을 벗어나 밖으로 나가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특별한 사회 경험 없이 젊을 때부터 이곳에 발을 디딘 친구들은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여기서 일하는 동안 낮에 시간이 있을 때 학원을 다니며 기술을 배우거나 자격증을 따서 일을 그만두는 언니들도 가끔씩 보긴 했다”며 “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이름까지 싹 바꾸고 아예 떠나는 경우도 있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고 생각 등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 정형화된 틀에서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김혜진 기자 trust@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