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월요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1년을 남겨둔 상황에서 기자회견을 하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단호한 표정, 좌중을 압도하는 퍼포먼스에 현장이 아닌 TV 수상기 앞에서도 주눅이 들 정도였다.
기자회견의 압권은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후보자, 박준영 해양수산부장관 후보자, 노형욱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에 대해 자신이 그들을 장관으로 발탁한 이유 등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설명할 때였다. 언제나 부드럽고 강한 남자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그저 강하기만 한 마초 본성을 그의 말과 표정에 가감없이 드러냈다. 순간 ‘뭐지?’라며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자신의 저서 『대통령』에서 정치를 하려는 사람은 대통령의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치를 해보겠다고 찾아온 원희룡 제주지사에게 대통령의 꿈을 물었더니 명쾌한 대답을 하지 않아 ‘그 정도의 인물에 불과하구나!’라며 그의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권력의지가 크지 않아 정치적으로 성공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점을 떡잎부터 알아봤다는 얘기다.
DJ에게 정치를 배운 조조의 꾀를 가진 여의도 포청천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매의 눈으로 본 것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꼭 권력의지만 갖고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님을 몇몇 대한민국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다.
한 사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딸이었던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버지의 부하에게 사살당하는 현장을 목도하면서 큰 슬픔과 분노를 갖게 되었다. 더군다나 이전에는 어머니도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였고, 자신도 정치현장에서 생사의 갈림길에선 테러를 당하였으니 그 분노는 오죽하였으랴! 결국 그녀는 아버지의 명예회복이라는 불명확한 실체와 자신의 분노가 결합된 권력의지로 대통령이 되었으나 거기까지였다.
다른 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친구였던 그는 자신의 친구가 정적에게 표적 수사를 당해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죽음을 선택하자 큰 분노와 슬픔을 갖게 되었다. 친구의 주검을 통해 전달받은 메시지는 오롯이 그가 품어야 하는 것이었다. 정치를 하려는 의지가 없었던 그는 죽은 친구가 살아 있는 권력을 잡아줌으로써 대통령이 되었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얘기하는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권력의지를 처음부터 갖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의한 분노와 슬픔이 이들을 정치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이다. 이들의 권력의지는 공공선을 실현하기 위한 권력의지가 아닌 자신들의 분노를 치유하고 자신들과 가장 가까웠던 사람의 명예회복이라는 아주 사적인 동기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받지 못한 세 명의 장관 후보자에 대해 자신의 기자회견으로 납득할 만한 설명을 했다고 판단한 것일까? 국회에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했다. 당당했던 기자회견이 오만했던 기자회견으로 수식어가 바뀌는 순간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재송부 요청이 오기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함에서 나타난 결기(決起)라면 조금 두렵다. 분노는 너그러움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분노에 의한 결기는 광란을 동반한다. 광란은 또 다른 광란을 부른다. 아직 1년이나 남아 있는데 왜 이리 조급한가? 당당함이 당신의 매력임을 왜 부정하려 하는지! 오만함은 당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데... 임기 1년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취임 4주년 기자회견의 여운은 진행형이다.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