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 서울지부 전경 [뉴시스]](/news/photo/202105/451449_368701_3229.jpg)
- 무작위 입찰로 개인도 수십억대 사업 낙찰...20% 수수료 챙기고 하도급
- 조달청, 사행성 조달 시스템 대폭 개선...이달부터 ‘MAS제도’ 도입, 시행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 기획재정위원회에서는 조달청의 현행 입찰 제도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사업자등록증만 있으면 그야말로 ‘로또입찰’이 가능한 조달청 ‘운찰제(運札制)’에 대한 보완이 시급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운찰제는 운에 따라 입찰이 결정된다 해서 조달 업계 내에서 생겨난 명칭이다. 이런 입찰 방식은 실제로 업무 역량이 없어도 사업(물품) 수주가 가능하다. 때문에 사업을 낙찰 받자마자 수수료를 챙기고 사업의 경우 특히 재하도급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부실시공의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이는 오랜 기간 조달청의 입찰 시스템으로 채용되고 있다. 관련 업계의 숱한 제보와 개선 요구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조달청의 ‘중간가 입찰제’는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조달청은 현 낙찰 시스템의 폐해를 예방할 수 있는 개선안을 내놨다. 이에 본지는 조달청의 현 입찰 체계와 조달청의 대응을 알아봤다.
지난해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선 김경협 민주당 의원이 조달청의 ‘적격심사 낙찰제도’가 흔히 ‘로또입찰’이라고 불리는 운찰제로 변질되면서 부실시공과 검증되지 않은 업체들의 난립에 따른 조달 체계 혼선을 우려했다. 사업자등록증만 있으면 개인이든 업체든 조달청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에, 무작위로 업체가 선정되는 방식이다 보니 물품이나 사업에 대한 전문성이나 역량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조달청이 채택하고 있는 적격심사제는 입찰자의 계약이행 능력을 심사해 일정 수준 이상의 평점을 받은 우량업체를 낙찰자로 결정하는 제도다.
지난해 10월 22일 국정감사에서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조달청 적격심사 낙찰제에 대해 “현행 적격심사 낙찰제는 1994년 성수대교 부실공사로 인해 이듬해 도입됐다”며 “이는 투찰가로 낙찰이 좌우되기 때문에 물품과 전혀 관계없는 업체가 하도급을 주는 방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운찰제’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일례로 폭발물 탐지기를 입찰하는데 공인중개업소가 입찰을 해서 낙찰을 받아 가고, 초음파 탐색을 입찰했더니 마사지 업체가 낙찰되는 해괴한 사례가 있다”며 “이런 업체들은 대부분 1인 사업자로, 사업자 등록만 해 두고 조달청의 공고 때마다 여러 브로커를 통하여 입찰에 참여해 최대 20%를 챙기고 있다”고 문제점을 낱낱이 짚었다.
뒤이어 김 의원은 “이 때문에 로또 입찰이다 브로커 입찰이다 이런 말이 나오는 실정”이라며 조달청장에게 확실한 개선 방안을 요구했다. 이에 정무경 조달청장은 “지적된 내용을 보고 조달계약 실태를 반성하는 계기로 생각하게 됐다”며 “현행 계약입찰 시스템에 대한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실제로 조달업계에선 공공연히 ‘나랏돈으로 부자되는 법’으로 통하고 있었다.
사업자등록증에 PC 한 대면 수십 억대 사업 입찰 가능
이와 관련, 매년 조달청 입찰에 참여하고 있는 군수품 취급 업체 대표는 본지와 통화에서 “어떤 업체는 수십억 원대 건수를 잘도 올린다는 말도 있다”며 “사무실 한 칸 달랑 빌려 직원 하나 둘 정도 앉혀놓고 온종일 컴퓨터 속이나 뒤지면서 잘도 번다. 심지어는 유령회사 비슷한 입찰전문회사를 여럿 설립해서는 입찰당첨확률을 한껏 높여 포식을 하기도 한다는 얘기도 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사업자등록을 낸 개인도 적정 투찰가만 입력하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니 정작 전문성 있는 업체는 외면되고 엉뚱한 업체들이 수수료만 왕창 떼먹고 하도급 사업이 졸속으로 이뤄지는 게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군수품 업체 B사 한 관계자는 본지 취재에서 “조달청이 시행한 적격심사제의 기본 취지 자체가 사업 진행에 앞서 우량업체를 선별하고 부실시공을 막자는 것인데, 1990년대 최저가 낙찰제보다 오히려 역효과가 심하다”고 꼬집었다.
또 이 관계자는 “몇달 전에는 한 개인사업자가 야간투시경 사업을 낙찰 받아 수수료로만 수억 원을 챙겼다는 말도 있었다”며 “일반 가정집에서 컴퓨터로 입찰 돌리면서 관련 업체에 하도급을 주니 당연히 제조 단가가 낮아지게 되고 품질은 말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본래 부정 거래를 예방하고 조달 물품의 품질 개선과 부실시공을 반대한다는 기본 취지가 무색하게 사행성으로 변질돼 버린 셈이다. 정작 우수한 품질의 제품 제조 능력을 갖춘 업체도 운이 없으면 1년 내내 조달 실적을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마지못해 하청업체로 전락해 회사 경영을 이어가는 실정이다.
조달청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본청 내부적으로 현행 제도에서 사행성 요소나 품질 저하 문제가 시급하다는 데 문제의식을 갖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이달부터 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달청, 입찰 시 물품과 무관한 업체 참여 금지 조치
조달청은 지난달 공공조달 입찰 시 입찰 물품과 관련이 없는 업체의 입찰 참여를 금지하는 제도를 시행키로 했다. 이달부터 입찰물품에 전문성이 부족한 업체가 입찰에 무분별하게 참여해 낙찰 후 수수료를 챙기고 타 업체에 납품을 떠넘기는 편법 행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조달청은 입찰 중개자 참여가 우려되는 공급물품에 대해 공장과 제조설비를 갖춰야 하는 ‘제조입찰’과 업체의 자격 요건을 확인할 수 있는 ‘다수공급자계약(MAS)’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조치로 공기호흡기, 의료기기 등 군수품 176개, 일반물품 126개 등 총 302개 품명이 제조입찰로 전환되고, 피복류 등 11개 품명은 다수공급자계약(MAS)으로 바뀌게 된다.
계약이행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조달청은 납품이 완료되기 전 납품대금 채권을 양도하는 행위를 승인하지 않기로 했다. 조달청은 이번 조치의 강제를 위해 ‘물품구매(제조)계약 특수조건’에 반영, 개별 계약에서 계약 상대자와 채권 양도금지 특약을 별도로 설정했다.
또한 입찰물품과 관련 없는 개인 또는 업체가 공급입찰에 참여해 계약불이행 등으로 입찰참여제한 조치를 받을 경우 감경 없이 법령에서 정한 최대 기간을 적용해 엄중 제재한다는 방침이다.
조달청 관계자는 “이번 대책을 통해 입찰 브로커 등에 의한 무분별한 입찰 참여 문제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MAS제도 도입, 운영 후 추가적인 문제점과 개선 경과 등을 지켜보고 후속 대응 방안도 강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두현 기자 jdh20841@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