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뉴시스]](/news/photo/202104/450373_367556_5722.jpg)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정치권 안팎에선 제3지대 실패론을 외쳐왔던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영향력을 행상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이 연일 국민의힘과 각을 세우는 가운데 차기 대선주자로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새 정치세력’ 합류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김 전 위원장은 새 정치세력의 사례로 프랑스의 ‘마크롱 모델’을 거론했다. 일요서울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킹메이커’를 자처한 김 위원장의 속내를 알아봤다.
침묵 이어가는 尹... 아직은 정치권과 ‘거리두기’ 중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6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두 사람은 야권 통합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은 회동에서 제3지대 및 제3신당 등에 대한 의견이 오갔을 것이란 추측에 대해 “신당을 만드는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금 전 의원은 이날 김 전 위원장과 비공개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김 전 위원장에게) 저의 계획도 말씀드리고 좋은 말씀도 들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개인적으로 나눈 대화라 밝히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야권에선 두 사람의 회동에 대해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 맞선 제3지대 및 제3정당을 통한 새로운 야권 통합의 시동을 거는 과정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김 전 위원장이 금 전 의원의 제3지대 신당 창당에 힘을 실어주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금 전 의원은 4.7 재보선 이후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은 신당 창당에 관심 없다며 “당을 만들려는 건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정치를 안 한다고 얘기했다”고 강조했다. 금 전 위원의 신당 창당을 도와줄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잘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코멘트할 것이 없다”고 답변했다.
김 전 위원장은 ‘정치를 안 한다’는 자신의 말과 달리 거의 매일 특유의 독설을 쏟아내며 야권을 흔들고 있다. 정치권에선 김 전 위원장의 이 같은 행보가 야권재편 과정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포석과 함께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손짓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대권행보를 놓고 고민하는 윤 전 총장에게 김 전 위원장은 제3지대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국민의힘으로 가게 되면 ‘백조는 오리가 돼버린다’는 비유를 들어 입당을 사실상 만류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금까지 윤 전 총장과 한 번도 접촉한 사실이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윤 전 총장 측에서 먼저 만남을 제안해오면 긍정적으로 수락할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리고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총장이 차기 대권주자로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다시 킹메이커로 나설 의향을 내비치기도 했다.
윤석열에 ‘마크롱’ 조언한 김종인... “尹 ‘새 정치세력’ 출마 가능”
김종인 전 위원장은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성공을 모델로 제시해 윤석열 전 총장과 함께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달 19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대선과 관련 “강력한 대통령 후보자가 밖에서 새 정치 세력을 규합해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 대통령 출마를 하면 그것도 가능하다고 본다”며 “윤 전 총장이 새로운 정치 세력을 갖고 출마하면 그 자체가 대통령 후보로서 준비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에 윤 전 총장의 제3지대 출마 가능성을 전망하는 것 이냐는 질문이 나왔지만 김 전 위원장은 제3지대와는 확실히 선을 그었다. 그는 “제3지대와는 다른 개념”이라며 “예를 들어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할 때 누구도 그 사람 보고 제3지대라고 한 적이 없다. 스스로 새 정치세력을 형성해서 대선에 출마하고 당선 되니까 전통적인 두 정당이 무너지고 마크롱 대통령의 앙 마르슈가 다수 정당이 되는 형태로 갈 수도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김 전 위원장이 예로 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라 레퓌블리크 앙 마르슈’(Republique en Marche, 전진하는 공화국)는 프랑스 사회당에서 경제장관을 지낸 은행가 출신 마크롱 대통령이 2016년 4월 좌파와 우파를 아우르는 새 정치운동을 하겠다며 출범한 독자적 정치운동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의석 하나 없는 앙 마르슈에서 2017년 사실상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해 대통령 당선이라는 이변을 만들어냈다. 같은 해 진행된 프랑스 총선에서도 앙마르슈-민주운동당(Modem) 연합이 전체 577석 중 60%에 해당하는 350석을 확보하며 제1당으로 올라섰다. 기존 거대 양당이었던 공화당-민주독립연합(UDI)은 131석, 사회당-급진좌파당(PRG) 연합은 32석을 차지하며 의석수가 크게 줄었다.
김 전 위원장은 마크롱 모델을 통해 윤 전 총장이 자신의 정치세력을 구축하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가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 “제3정당, 대선 겨냥한 일회용일 듯”
하지만 내년 대선에서 ‘킹메이커’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향후 구상이 복잡해지는 모습이다. 김 전 위원장은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원을 노렸지만 큰 진전이 없자 다른 대권후보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윤 전 총장은 사퇴 이후 50여 일간 잠행을 이어가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최근 원희룡 제주 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김 전 위원장 말로는) 나를 포함해 국민의힘이나 야권 전체에 아직 후보다운 후보가 아무도 없다고 했다. 흔히들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을 얘기하지만 3개월 뒤, 6개월 뒤를 생각하면 허망할 수도 있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의 고민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김 전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 첫 내각 인사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에 대해 관심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전 부총리가 임기 후반 최저임금 인상 속도 등을 놓고 청와대·여당과 각을 세운 부분이 윤 전 총장이 가진 반문 이미지와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김 전 위원장이 대선 밑그림을 수정하는 작업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초 윤 전 총장을 중심에 올려놓고 야권 재편을 노렸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다른 인물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의도에서 만난 야권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김 전 위원장이 제3지대 제3정당과는 선을 그으면서도 새로운 정치 세력을 언급하며 기존 정치조직과는 다른 조직을 만들기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학과 교수는 지난달 28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결국 제3정당은 이번 대선을 겨냥한 일회용일 수밖에 없다”며 “김 위원장 입장에선 자신이 몸담았던 국민의힘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에 제3정당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내년 대선을 앞둔 김 위원장의 정치행보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정재호 기자 sunseoul@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