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여류 추리작가 '권경희'의 추리퀴즈-당신의 추리력은? 8] - '누드 물음표' 3편 중 3회
[연재-여류 추리작가 '권경희'의 추리퀴즈-당신의 추리력은? 8] - '누드 물음표' 3편 중 3회
  • 온라인뉴스팀
  • 입력 2021-04-30 16:43
  • 승인 2021.04.30 17:03
  • 호수 1409
  • 2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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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추병태 경감이 갑자기 전시장 안으로 들어왔다.
“반장님이 웬일이십니까?”
곽정 형사가 깜짝 놀라 물었다.

추병태 경감은 강력범 수사의 귀재로 전설적인 경찰관이다. 그런데 그림 도난 사건을 수사하러 나타날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 앞을 지나다가 감식반 조 경사를 만났는데 여기 사건 현장에 자네가 있다고 하기에⋯”

곽정 형사는 서울 시경 강력반에 있을 때 추 경감과 한 팀으로 수많은 사건을 해결한 파트너였다.
“그래 사건이 매우 묘하다고 하던데⋯”

“예. 그렇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수사는 귀신이 하는 거 아니야. 형사가 한심해서 곡하는 거야.”
곽정 형사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난 추 경감이 묘한 웃음을 흘렸다.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짓는 미소였다.

“그림이 어디로 갔는지 추리가 되십니까?”
곽정 형사가 주름이 꽤 잡힌 노병, 추 경감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범인은 두 명이야. 그리고 그림은 아직 이 방 안에 있어.”

“이 방 안에요? 샅샅이 다 찾아보았습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귀신이 울고 앉았지. 허허허”
추 경감은 곽정 형사의 어깨를 툭 쳤다.

“자 경매장에 구경이나 가지. 그림 경매하는 것 난 처음 보거든.”
“예, 제가 모시겠습니다.”
염 관장이 추 경감을 보고 말했다.
추 경감과 곽정 형사는 아래층 경매장으로 내려가 관람석으로 안내를 받고 조용히 앉았다.

위층 갤러리에서 보던 사람들이 거의 모두 여기 와 있었다.
경매가 시작되자 참석했던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변했다.
추 경감의 눈에는 욕심 가득 찬 투견처럼 보이기도 했다.

염 관장은 참으로 난처한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입술이 바싹 탔다.
모두가 오늘의 작품으로 관심을 모은 ‘누드-물음표’가 경매에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못 나오게 되었다는 설명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야? 나한테는 못 팔겠다고 하더니 뒤로 빼돌려 벌써 처분한 것 아니야?’
이런 항의가 빗발칠 것만 같았다.

그 작품을 입수하려고 모인 브로커들이 무슨 시비를 걸지 모른다.
그러나 염 관장은 경매가 시작되기 전 사고 소식을 알리고 참가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워낙 저자세로 설명을 잘하는 바람에 몇 사람이 야유를 퍼붓기는 했으나 더 소란스러운 일은 없었다.

뉴 옥션 방식으로 시작된 경매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앞 스크린에 그림이 커다랗게 비춰지고 크기와 제작 연도 등이 자막으로 나왔다.
한참 만에 ‘누드-2005’가 스크린에 떴다.

경매가 거의 후반에 이르렀으나 곽정 형사가 주목해서 보고 있는 배용구는 그때까지 전혀 경매에 참여하지 않았다.
옆에 앉아 있는 고현정도 마찬가지였다.

“배용구란 저 자는 골동품 사기로 여러 번 교도소 드나든 경험이 있습니다. 특히 보증서 위조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판사들은 저놈의 정체를 잘 모르고 미술품 감정을 가끔 의뢰하기도 하더군요.”
곽정 형사가 나직한 목소리로 추 경감에게 설명을 했다.

“그뿐 아니고 여자들을 줄줄이 달고 다닙니다. 아마 옆에 있는 저 여자도 데리고 노는 여자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곽정이 열심히 이야기를 했으나 추 경감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스크린에 등장하는 옥션 매물의 내용만 열심히 보고 있었다.

“자, 다음 그림은 ‘누드-2005’입니다. 아시다시피 오당 변하진 화백은 누드 그림이라고는 딱 세 편밖에 그리지 않았습니다. 한편은 뉴욕 메트로 미술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고 다른 작품 ‘누드-물음표’는 오늘 도난당했습니다. 지금 국내에 남아있는 누드 작품은 딱 이것 한 점뿐입니다. 그만큼 희소가치가 있는 명작입니다.”

“흠, 걸작이야.”
어디선가 감탄의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곽정 형사는 도저히 돈 주고 살 그림 같지 않았다. ‘그치’가 맞는 모양이다.
“그럼 석 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석장이란 3천만 원을 의미한다.

염동호의 내정가는 3천5백만 원이었다.
“3천5백!”
한강그룹 사모님이 먼저 불렀다.
다른 사람이 4천만 원을 불렀다. 덩달아 값이 뛰어올라 4천5백까지 갔다.
염 관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4천5백! 4천5백, 그 이상 없습니까?”
염 관장은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말을 늦추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더 이상 부르지 않았다.
“자, 그럼⋯”
“5천!”

마지막 순간에 외친 사람은 뜻밖에도 배용구였다.
“5천, 더 없습니까? 그럼 5천만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배용구 선생.”
그 모양을 보고 있던 곽정 형사가 추 경감에게 속삭였다.
“저놈이 미쳤나 봐요. 내정가보다 1천5백만 원이나 더 주고 사서 어쩌려는 것인지.”

그러나 추 경감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배용구가 ‘누드-물음표’의 도둑이야. 저놈을 경찰서로 연행하고 저 그림도 함께 가지고 가요.”

경찰서 조사실.
곽정 형사 앞에 배용구와 고현정, 그리고 책상 위에는 ‘누드-2005’의 액자가 놓였다. 곽정 형사 옆에는 옥션 갤러리 염혁중 관장이 고무장갑을 끼고 서있었다.

“관장님, 그림 뒤판을 열어 보세요. 배용구 씨 지문을 채취할 테니 조심하세요.”
곽정 형사의 말에 따라 염 관장이 그림틀 뒷 판을 열었다.
“와!”
“엇!”

모두 탄성을 질렀다.
거기에는 사라진 그림 ‘누드-물음표’가 있지 않은가. 선명한 컬러의 추상화가 눈부셨다.
“사실대로 말해 보세요.”

기가 팍 죽은 배용구를 보고 곽 형사가 물었다.
“보시는 대로입니다. 조명이 꺼진 순간 ‘누드-물음표’ 액자를 떼 내 그림 뒤판을 열고 그림만 꺼내 옆에 있는 ‘누드-2005’의 뒤판을 열고 집어넣었습니다. 아무도 그림틀 속에 그림을 감추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누드-2005’를 5백만 원이나 더 주고 낙찰 받은 것이군요.”
“이건 무슨 죄에 해당하는지요?”

“그건 검사한테 물어 보시고⋯ 그런데 이 훔친 그림은 세상 사람이 다 아는데 어디 가서 장물을 팔려고 한 것입니까?”
“외국에 가지고 가면 고가로 팔 수 있습니다. 오당 선생은 외국 화랑가에서도 알아주니까요.”

“두꺼비집을 내려 조명을 끈 고현정 씨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배용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현정이 입을 열었다.

“동업자입니다. 교도소 갔다 와서 누드모델이나 하려고 합니다.”
고현정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드는 안 돼!”
배용구가 소리를 질렀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온라인뉴스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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