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뉴시스]](/news/photo/202104/449715_366885_521.jpg)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정치권에선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해찬 전 대표의 상왕(上王) 정치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나온다. 4월 재보선에서 국민의힘에 완패한 민주당이 전대를 쇄신의 기회로 삼는 것을 이 전 대표의 상왕 정치가 도로 ‘친문’으로 회귀시키는 것 아니냐는 이유 때문이다. 최근 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된 4선의 윤호중(58·경기 구리) 의원도 이해찬계 친문으로 분류되고 있다. 친문 좌장인 이 전 대표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 평가다. 일요서울은 이 전 대표의 상왕 정치 논란을 알아봤다.
-민주당 새 원내대표에 ‘이해찬계’ 윤호중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8월 당대표 임기를 마치고 사실상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4월 재보선을 앞두고 난항을 겪는 모습을 보이자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이 전 대표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지 7개월 만이다. 이 전 대표는 지난달 17일 ‘시사타파TV’ 생방송에 출연한 데 이어, 다음날인 18일에는 KBS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와 유튜브 ‘이동형 TV’ 그리고 19일에는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잇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전 대표는 첫 방송인 ‘시사타파TV’에서 “대표를 그만두고 일체 방송 출연을 안 했는데, 요즘 시장 선거가 팽팽해져서 이걸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서 방송 출연을 시작했다”며 “이게(4.7 재보선 선거) 없었으면 대선까지 아스팔트길을 달리면 되는데, 보궐선거가 열리면서 자갈길로 들어서느냐, 포장길로 가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7 재보선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일을 이번 선거 때까지 하겠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는 선거 판도를 뒤흔들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에 대해 “LH 토지분양권 (문제)까지 생기는 바람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허탈해하는데,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선 재보선 판세에 대해 “난 선거가 아주 어려울 줄 알고 나왔는데 거의 이긴 거 같다”고 자신감까지 드러냈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이낙연 당시 대표에게 당권을 넘긴 후 2선으로 후퇴해 당 상임고문을 맡았지만 공개 활동은 자제해왔다. 그런 이 전 대표가 4월 재보선에 등판한 것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선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명운을 가를 중요한 선거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 전 대표는 재보선을 언급하며 “자꾸 문재인 대통령을 이번 선거를 계기로 해서 흔들려고 하지 않느냐”며 “이걸 막아내고 새로운 정부가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라고 강조했다.
재보선에서 수세에 몰려있던 민주당은 이 전 대표의 등판을 환영했다. 친문의 좌장인 이 전 대표의 선명한 발언이 지지층을 결집시킬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는 앞장서서 공약도 제시했다. 그는 지난 18일 코로나19에 대한 지원을 전제로 “나 같으면 축제 비용, 전시행정 비용, 불용액을 다 모아서 시민들한테 10만원씩 나눠주겠다”고 했다. 곧바로 다음날 박영선 민주당 후보는 “서울시민 모두에게 1인당 10만원씩 블록체인 기반 KS서울디지털화폐로 지급되는 보편적 재난지원금을 드리겠다”면서 호응했다.
하지만 이 전 대표의 등판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4.7 재보선에서 국민의힘에 완패하고 말았다. 여권에선 재보선 패배의 책임으로 친문 책임론이 나왔다. 반성과 혁신 없는 친문 정치인들과 그들을 떠받치는 강성 친문 당원들이 선거 패배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 선거 참패에도 정신 못차린 與... 친문만 보인다
4.7재보선에서 완패한 민주당은 다음날 8일 김태년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총사퇴를 결의했다. 이 자리에서 민주당은 차기 원내대표 경선을 5월 중순에서 지난 16일로 새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는 내달 9일에서 2일로 앞당겼다. 민주당은 원내대표선거와 전당대회를 통한 새 지도부 선출로 반성과 쇄신의 기회를 마련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16일 치러진 원내대표 선출 의원총회에서 이해찬계 친문인 4선의 윤호중(58·경기 구리)의원이 비주류 3선인 박완주 의원을 누르고 새 원내 사령탑이 됐다. 윤 의원은 1차 투표에서 169표 가운데 과반 이상인 104표를 획득하면서 결선 투표 없이 바로 당선 됐다. 상대 인 박 의원은 65표를 얻었다. 윤 의원은 이해찬 전 대표 당 대표를 역임할 당시 당내 핵심요직인 사무총장을 맡았다. 정치권에선 이 전 대표가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재보선 패배 후 민주당내 쇄신의 목소리로 나온 ‘친문책임론’ ‘친문후퇴론’이 무색해진 모습이었다.
이 전 대표의 영향력은 내달 2일 치러지는 민주당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에도 드러나고 있다. 이 전 대표가 당 대표 후보인 3명 중 2명인 홍영표, 우원식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는 전당대회 전부터 친문계 핵심인 홍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는 우 의원의 후원회장도 맡은 것이다. 우 의원은 지난 19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전 대표가 저를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전 대표의 지지를 과시하기도 했다.
- 내년 3월대선 앞두고... 이해찬 “네 번째 대통령 만들고 싶다”
정치권 안팎에선 원내대표 및 당대표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해찬 전 대표가 내년 대선에서까지 모종의 역할을 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 전 대표는 지난달 18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에 이은 네 번째 대통령을 만들고 싶다”고도 말했다. 이 전 대표는 2018년 8월 전당대회 당시 ‘20년 집권론’을 구호로 내걸었다. 그는 “조선의 제22대 왕인 정조가 세상을 떠난 1800년 이후 22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부 집권 10년을 빼고는 개혁 세력이 집권한 적이 없다. 편향성에 대한 복원을 시도하려면, 20년은 꾸준히 집권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전 대표가 언급한 20년 집권론과 내년 대선에서의 역할론이 맞닿아 있는 것이다.
일요서울과 지난 22일 여의도 모처에서 만난 정치권 관계자는 “이 전 대표는 친노·친문의 좌장으로 아직까지 그의 영향력에 기댄 민주당 의원들이 많다”며 “이번 당대표 선거 결과에 따라 이 전 대표가 내년 대선에까지 힘을 발휘할 수도 있을지 없을지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지난 23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이번 민주당 당대표 선거를 보면 여론조사에선 이해찬 전 대표가 후원회장을 맡고 있지 않는 당대표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며 “4월 재보선에서 완패한 후 민주당 내 이 전 대표의 입지는 예전과 같이 않다”고 분석했다.
이번 민주당 당대표 선거의 결과가 이 전 대표의 향후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정재호 기자 sunseoul@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