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조명] ‘천안함 논란’에 위기 온 軍사망조사위
[집중조명] ‘천안함 논란’에 위기 온 軍사망조사위
  • 조택영 기자
  • 입력 2021-04-23 19:16
  • 승인 2021.04.25 19:17
  • 호수 1408
  • 2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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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 사퇴는 ‘꼬리 자르기’···靑, 앞뒤 다른 얘기 중”
이인람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뉴시스]
이인람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천안함 재조사’ 논란으로 세간의 비판을 받았던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군사망조사위)가 위원장 사퇴라는 카드를 내놓았다. 천안함 관계자들은 위원장 사퇴를 두고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며 분개했다. 현 정부 출범 후 군 의문사를 해결하기 위해 출범한 군사망조사위는 이번 사태로 동력을 상실할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이인람 위원장 논란 끝 사퇴···청와대 개입?

군사망조사위, 동력 상실 위기···타격 피하기 어려워

이인람 군사망조사위 위원장은 지난 20일 천안함 재조사 논란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2018년 군사망조사위 출범과 함께 초대 위원장으로 일해 온 인물이다. 그는 “위원회 조사 개시 과정이 법과 규정에 따른 절차라는 이유로 유가족들의 뜻을 세밀하게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 “청와대와 국방부 모두 대처 의지가 없다”

이번 사태는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에 의해 촉발됐다. 신 전 위원은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하며 북한 어뢰에 의해 격침됐다는 정부 발표를 지속적으로 부인해 온 인물이다.

지난해 9월 군사망조사위 진정 접수기한 만료를 앞두고 신 전 위원은 천안함 장병 사망 원인을 규명해 달라며 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진상조사 기한 만료에 임박, 370여 건이 한꺼번에 접수됐고 이에 군사망조사위는 일단 조사 개시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천안함 피격 당시 함장이었던 최원일 예비역 대령과 전사자 유족, 생존 장병 등이 강하게 반발했다. 전준영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 전우회 회장은 “몸에 휘발유 뿌리고 청와대 앞에서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비판이 쏟아지자 군사망조사위는 지난 2일 긴급회의를 열고, 신 전 위원에게 진정인 자격이 없다며 사건을 각하했다. 이후에도 천안함 유족 측의 반발이 이어졌고, 이 위원장이 재조사 결정 자체에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결국 이 위원장이 스스로 물러났다.

그러나 천안함 관계자들은 이 위원장의 사퇴에 청와대가 개입했고, 단순 위원장 사퇴는 ‘꼬리 자르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안종민 천안함 생존자 전우회 사무총장은 지난 21일 일요서울에 “우리의 입장은 ‘대통령의 명확한 입장 표명’, ‘군사망조사위 위원장 사퇴 및 관련자 처벌’, ‘국방부의 세밀한 대책 수립’ 등이었다”면서 “그런데 지금은 (군사망조사위) 위원장만 ‘꼬리 자르기’로 사퇴하고 이 문제를 기획했던 고상만, 신상철 같은 사람들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애초에 발본색원해서 강력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국방부 장관도 의지가 없고, 청와대도 의지가 없고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천안함 피격 당시 가장 크게 다쳤던 신은총 예비역 하사. [사진=이창환 기자]
천안함 피격 당시 가장 크게 다쳤던 신은총 예비역 하사. [사진=이창환 기자]

- 제도적 기반 갖추고, 권한 커지면 뭐 하나

이번 사태로 군사망조사위는 타격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군사망조사위는 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중 의문이 제기된 사건의 진상을 명확하게 규명함으로써 피해와 명예회복, 군에 대한 국민 신뢰회복, 인권증진을 꾀하기 위해 3년간 한시법에 따라 운영되는 기구다.

지난해 9월까지 1787건이 접수됐다. 2월까지 649건이 종료되고, 그중 절반에 가까운 321건이 진상 규명됐다. 1138건은 조사 중이다.

조사 기간이 부족하다는 군사망조사위 요청에 따라 활동기간이 2년 연장됐다. 지난달 24일 활동기간을 늘리는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조사기간은 2023년까지 연장됐다.

또 특별법 개정으로 명예회복 요청 범위가 기존 국방부에서 법무부, 행정안전부, 소방청, 경찰청, 해양경찰청까지 확대됐다. 나아가 군인의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고 의심할만한 사유가 있을 경우 군사망조사위가 직권 조사를 할 수 있게 됐다. 고유식별정보 등 개인정보도 확보할 수 있게 된 상태다.

이같이 제도적 기반이 갖춰지고 권한도 커졌지만 이번 천안함 재조사 논란으로 진보 진영에 편향됐다는 인상이 씌워지면서 향후 군사망조사위 차원의 조사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오랜 기간 인연을 맺어 온 이 위원장이 이번 사태로 물러난 점 역시 청와대와 정부 여당에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이 위원장이 사퇴에 앞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면담한 점을 두고 사실상 청와대가 사퇴를 지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거세지고 있어, 청와대와 정부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앞서 중앙일보는 이 위원장이 지난 19일 청와대로 소환돼 사실상 경질 통보를 받았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청와대는 소환이 아니라 위원장의 면담 요청이 있어 외부에서 만나 사의를 전달 받았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천안함 관계자는 일요서울에 “우리가 행정관(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을 만났을 때(지난 6일 청와대 항의 방문 당시) 행정관은 ‘군사망조사위는 독립기관이라 청와대는 관여할 수 없다’고 말하며 ‘군사망조사위의 독립성을 보장해 준다’, ‘그게 대통령의 의지다’라고 밝혀 놓고 (청와대가 이 위원장) 사의할 때 왜 불렀나”라며 “불러 가지고 사의하라고 그런 거 아니냐. (대통령과 청와대의) 힘이 다 들어간 거 아니겠는가. (군사망조사위의) 독립성을 보장해 준다고 한 게 다 거짓말이다. 앞뒤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한편 천안함 유족과 생존자 전우회 소속 회원들은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천안함 피격사건 재조사 시도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천안함 유족 등 관계자들은 시위를 이어 나갈 예정이며, 청와대 국민청원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조택영 기자 ct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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