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지난해 국내에서 분 주식 열풍으로 인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 ‘빚투(빚내서 투자)’ 투자들이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올해는 국내 투자자들이 주식에서 암호화폐 시장으로 투자처를 바꾸면서 국내 투자시장 판도가 달라지는 모양새다. 암호화폐 시장을 꽉 잡고 있는 ‘비트코인’은 전 세계적으로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주로 거래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전 세계 흐름과 반대로 국내에서는 비트코인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있다.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알트코인(Altcoin·비트코인을 제외한 모든 암호화폐를 일컫는 용어)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알트코인 중 하나인 ‘도지코인’은 한 달 만에 541%가 뛰었고 또 다른 알트코인인 ‘비체인’의 경우 한 달 수익률은 187%를 기록했다.
도지코인, 올해 들어 6768% 뛰어… 시가총액 500억 달러 돌파
아로와나토큰, 상장 직후 1000배 넘는 상승폭… 이틀 만에 반 토막
알트코인은 대체(alternative)와 코인(coin)의 합성어로, 대표 알트코인은 ‘이더리움’과 ‘리플’, ‘라이트코인’ 등이 꼽히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런 뜻으로 알트코인 외 ‘잡(雜)코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알트코인은 블록체인 송금 시스템을 완전히 갖춘 기존 암호화폐에 일부 기능을 덧붙여 다른 이름으로 내놓는 것으로, 한 전문가는 “요즘은 프로그램 코드 몇 줄이면 바로 발행이 가능하다”며 “인터넷 카페 개설하듯이 쉽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암호화폐 시장이 다시 들끓기 시작하면서 하루 거래 금액은 24조 원을 넘어섰다. 이는 코스피, 코스닥 거래 금액을 웃도는 수준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3시면 문을 닫는 주식시장과 달리 암호화폐 거래소는 휴장도 없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동안 거래가 계속 진행되는 것이다. 장중 급등세에 따른 브레이크도 없고 주식처럼 상·하한 제한폭도 없다 보니 짧은 시간에 가격은 2~4배 오르다 다시 10분의 1로 줄어들기도 한다. 고점에 물린 투자자들도 존재하는 한편 저점에 매수해 10배가 넘는 수익률을 보는 투자자도 있다. 24시간 내내 시세가 출렁이는 구조인 만큼 주머니 가벼운 개미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해 보인다.
- 비트코인 거래량 6%
알트코인 94% 차지
알트코인은 해외시장보다 국내에서 더 열띤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세계 암호화폐 거래에서 비트코인의 시가총액 비율은 약 51%이며 거래량은 30%를 차지한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비트코인의 거래량 비율은 6%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94%는 알트코인 투자인 것이다. 특히 이러한 코인들 가운데 3분의 1은 국내에서만 거래되는 암호화폐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 암호화폐 투자예탁금은 약 4조6200억 원(2월 말 기준)으로 1년 전보다 6배 불어났다. 이와 함께 수익률이 높은 알트코인일수록 원화 거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알트코인 ‘비체인’의 경우 한 달 수익률이 187%를 기록했고 전체 거래량 3조4417억 원 가운데 41.7%(1조4381억 원)가 4대 거래소에서 발생했다. 수익률 169%를 기록한 ‘퀀텀’은 전체 거래량의 39.6%, 수익률 170%를 기록한 ‘리플’은 전체 거래량의 21%가 국내 거래소에서 이뤄졌다.
반면 현존하는 수백 가지 알트코인 중에서도 ‘도지코인’ 만큼은 예외인 듯하다. 도지코인은 인터넷에서 유행한 일본 시바견 밈(Doge meme)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화폐로, 당초 개발자들은 암호화폐 열풍을 풍자하는 목적으로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도지코인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암호화폐 시장에서 비주류 알트코인에 속했지만, 올해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며 투자자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있다. 지난 1월 초 국내 도지코인 가격은 코인 1개당 0.012달러(한화 약 14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 19일 도지코인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인 업비트를 기준으로 575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도지코인은 올해 들어서만 6768% 이상 뛰어오르면서 시가총액은 500억 달러(약 56조 원)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도지코인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다섯 번째로 비싼 암호화폐가 됐다. 지난 20일 미국의 암호화폐 사이트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오후 11시 기준 도지코인은 개당 38.78센트에 거래됐고 이날 오후 2시에는 개당 42센트를 웃돌기도 했다.

- 도지코인 사태
대표적 투자 과열 상징
도지코인의 가치가 급상승 한 데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영향도 있다. 도지코인은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언급할 때마다 가격 변동성을 심하게 겪어 왔 다. 지난달 13일에는 머스크가 자신의 트위터에 “도지데이 오후의 기원”이라는 글을 남기며 도지코인 기원이 고대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농담을 덧붙이기도 했다. 일부 개인 투자자들은 머스크의 글에 흥미를 느꼈는지 “도지데이까지 가격을 끌어올리자”라며 도지코인 매수에 나서기도 했다. 도지데이는 머스크가 트위터 언급 이후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격 폭등을 예측한 날을 의미한다. 이들이 도지데이에 도지코인이 69센트(약 772원)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도지데이가 4월20일로 예정됐다는 이미지가 떠돌았다. 그러나 정작 머스크는 직접적으로 4월20일을 도지데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결국 도지데이에는 코인의 가격이 28센트(약 310원)까지 하락하는 등 적잖은 투자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태를 두고 ‘도지코인 사태’라고 일컫으며, 암호화폐 투자 과열을 상징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기도 했다.
암호화폐에 대한 전문가들의 주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뜨겁다. ‘도지코인 사태’가 발생한 당일만 하더라도 투자자들은 또 다른 알트코인인 ‘아로와나토큰’에 시선을 옮겼기 때문이다. 아로와나토큰은 한글과컴퓨터 계열사인 한컴위드가 지분을 투자한 암호화폐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사이트인 ‘빗썸’에 상장된 아로와나토큰은 상장 후 50원에 거래를 시작해 지난 20일 5만3800원까지 치솟으며 상장 직후 1000배 넘는 상승폭을 기록했다. 하지만 화려한 상장 데뷔식을 치른 아로와나토큰 역시 이틀 만에 가격이 반 토막 났고,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경고에 나서기도 했다.
알트코인 투자가 전 세계 뜨거운 이슈로 급부상한 상황과 관련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2030세대가 좀 더 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건 사실”이라며 “가격 변동성 때문에 뛰어드는 것인데, 위험성을 감내할 수 없는 투자자가 뛰어드는 게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암호화폐로 통칭하는 디지털 가상자산 이슈들이 공식적인 시스템 내에 들어와 있지 않은데, 가격 급락 위험 요소가 있어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유진 기자 yjshin@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