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뉴시스]](/news/photo/202104/447750_364871_1013.jpg)
[일요서울]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7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공로명 전 외교부장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OECD 가입
이탈리아 외상 초청 방문
- OECD 가입과 동시에 한 가지 더 이슈가 있나? 77그룹 관련해서다.
▲ 맞다. OECD는 아시다시피 선진국 클럽이기 때문에 가입을 하게 되면 77그룹에서 탈퇴해야 했다. 다만 개발도상국으로서 77그룹에서 상당히 활발히 활동해왔기 때문에 OECD에 가서도 개도국과 성진국 사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었다. 그래서 77그룹과는 유대를 가지기로 했다. 그래서 사실은 다음에 남아프리카에서 열리는 UNCTAD 총회 77그룹 회의에 참석하게 됩니다. 거기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하겠다.
- 그래서 1996년 10월에 장관님과 존스턴 OECD 사무총장이 가입 초청 협정에 서명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인상에 남는 일화가 있나.
▲ OECD 가입을 하고 나서 IMF 사태가 일어났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언론에서 일부 논평하는 사람들은 “OECD에 가입해서 외환위기가 왔다” 하는 식의 글도 썼다. 그러나 그건 옳지 않은 이야기다. 오히려 그때 OECD 가입을 했기 때문에 그 혜택을 많이 받았다. OECD에 가입하려고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지지를 요청하며 애쓸 때 핀란드 외상이 “핀란드는 OECD 가입으로 굉장히 도움을 받았다. 핀란드 같은 약소국은 인적 자원이 많이 않은데, OECD의 여러 리서치 결과에 도움을 받고 있다. 한국도 OECD에 가입하게 되면 여러 가지 부수적인 이득이 많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오늘날 OECD의 여러 가지 리서치가 우리나라 경제금융 관계를 연구하는 분들에게 어느 정도로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 1996년 1월에 팔레스타인 원조 국제회의 참석 차 프랑스를 방문하시는데 이때 이탈리아를 방문해서 외무장관회담에 참여하셨고, 이후 KEDO 참여 문제 등을 논의했다. 어떤 회의였나.
▲ 1991년 1월9일부터 파리에서 팔레스타인 원조 공여국 국제회의가 열린다고 해서 참석하게 됐는데, 그 길에 이탈리아 외상이 공식방문을 요청했다. 그래서 그 초청을 수락하기로 결정하고, 팔레스타인 원조 국제회의에 참석하게 됐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5억 5,000만 달러를 팔레스타인에 원조하기로 하고, 실무 조사단을 보내는 안을 성안해서, 이 국제회의에서 제가 하는 기조연설 속에서 발표하기로 하고 회의에 임하게 됐다. 우리가 왜 팔레스타인 원조에 대해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의사를 밝혔냐 하면, 우리나라 원유 도입의 80%가 중동에서 온다. 그래서 중동 지역에 대한 우리의 이익은 대단히 심대하고, 특히 중동의 평화 정책을 위한 노력에 참여함으로써 한국과 중동 국가들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우리 대중동 외교의 목표의 하나였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을 했다.
이러한 협력강화를 통해 팔레스타인·레바논의 전후 복구 계획에 우리 기업들이 활발히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고 회의에 참석을 했다. 그래서 기부자 회의는 그 후에도 계속 열리고 있다. 제가 갈 당시만 해도 미국·일본 등 38개국 대표들과 세계은행·IMF·UNDP 등 국제기구 대표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이 회의에 참석하고 바로 9일 저녁에 로마로 향했다. 그래서 로마에 밤 10시에 도착을 했는데, 로마 도착한 후 다음 날 12시 반에서 2시 사이 오찬을 겸해서 이탈리아 외상과 회담을 외상 관저에서 가졌다. 당시 신두병 주이탈리아대사, 추규호 참사관, 김재근 참사관도 있었다. 신각수 대사가 제 보좌관으로 있었고, 김병호 서구 2과장. 이탈리아 측에서는 니지도 경제총국장, 귀도 마르티니 주한대사, 외무성 대변인, 장관 보좌관, 정무총국 참사관들이 있었다.
한국 측의 관심사는 주로 한국과 EU 간의 기본협정과 정치공동선언 두 가지 문서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탈리아 정부가 EU 의장국인 1996년도 상반기 중에 이 문서 작성을 완성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이탈리아 측에 지지를 요청했다. 이탈리아 외상과는 그 전해 9월26일 뉴욕에서 열린 한·이탈리아 외무장관회담에서 만났고, 그때 이탈리아 방문을 초청받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원경 외무부장관이 1984년에 간 후 14년 만의 외무부장관 방문이었다. 이탈리아 측에서도 상당히 반갑게 생각하고 있고, 우리도 EU와의 관계를 업그레이드하려는 단계에 있어서 이탈리아가 의장국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았던 것이다.
그다음에 EU의 KEDO 참여가 있다. 그때 KEDO 참여를 원했느냐 하면, 미국이 북한에 증유를 공급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의회가 예산을 잘라서 3분의 2밖에 확보를 못해서 나머지 재원을 EU라던가 다른 나라, 특히 일본에 가장 큰 몫을 바라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대북 증유 제공에 EU가 한몫하기를 바라고 동시에 이탈리아로도 기여를 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 이탈리아 측에서는 상업적인 참여에 그런 조건이 선행해야 하지 않느냐, 무턱대고 이탈리아에서 돈 내는 것보다 이탈리아 기업으로서도 기여하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EU 외의 이탈리아로서도 참여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이탈리아 기업의 KEDO 프로젝트 참여는 우리가 KEDO 헌장 고치기 전에는 어렵고 가령 KEDO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한국 기업의 서브 컨트랙으로서는 이탈리아 기업이 들어올 수는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렵겠다고 말해서 완곡히 이해를 바랐다.
그때 이탈리아 측의 관심은 바로 있을 2차 ASEM 회의였다. 그때 ASEM 회의에 외무부장관이 참여한다는 이야기가 없어서 유럽 측에서는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헌법상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정상이 국제회의 등에 참여할 때는 반드시 외무부장관이 동행해야 하는데, 그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해서 상당히 난관을 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문제 대해서는 사실 아시아 국가 일부에서 반대가 있다고 했다. 일본과 말레이시아가 반대를 했다. 일본은 아시다시피 외무장관이 참석하게 되면 통상장관이 반드시, 경제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전통적으로 있었고, 말레이시아는 마하티르 모하마드 수상이 굉장히 개성이 강한 분이라서 “수상으로서 하면 그만이지 외상이 왜” 하는 생각으로 갈려서 말레이시아도 ASEM에 유럽 외상들이 오는 것에 대해서 처음에 달가워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 후에 ASEM 외상회담에서 논의가 될 테니까 그때 이 문제를 아시아 안에서 해결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ASEM 전에 외상회담이 열리면서 이 문제는 해결됐다. 그다음에 한국·이탈리아 양자관계가 논의됐다. 한국의 OECD 가입에 대한 이탈리아 지원, 2002년 월드컵 유치가 우리 의제였는데 이탈리아 FIFA 집행위원의 원조를 바란다고 했고, 이탈리아 측에서는 한국이 이탈리아제 경전투 헬기를 구입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측은 국방 당국에 이야기를 전하겠다고 했고, 그해 우리가 경전투 헬기를 구입을 했는데 어디서 구입했는지는 지금 기억이 없다.
온라인뉴스팀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