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 vs 친박’ 갈등과 위기는 기회다

한나라당 강재섭 전 대표가 복귀 행보를 펼치면서 그의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복귀로 인해 친이 친박간의 대립이 극에 치달을 전망이어서 중도성향의 강 전 대표 역할론이 힘을 받는 분위기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당의 분열 분위기에 중도성향의 의원들이 목소리를 낼 곳이 없다. 강 전 대표의 경우 대표적인 중도성향의 의원으로서 이들의 목소리를 한 곳으로 끌어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강 전 대표의 행보가 차기대권을 향해 있다는 시각도 있어 향후 한나라당의 계파간 힘겨루기는 본격화할 조짐이다.
지난해 7월, 2년간의 당 대표 임기를 마치며 모든 직함을 버리고 자유인으로 돌아간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
자유인으로 돌아간 강 대표는 당시 “6개월 동안 강태공처럼 살고 싶다”고 밝혔다. 지인들과 함께 낚시를 즐기던 강 전 대표는 지난 해 말 한나라당 의원들과 함께 골프를 치며 회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정진섭 의원 측 관계자는 “강 전 대표와 몇몇 의원들이 만나 라운딩을 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강 전 대표의 움직임에 당내에서는 4월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었다.
이에 대해 강 전 대표 측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설령 당에서 그런 요구가 와도 강 전 대표가 들어줄리 만무하다”며 일축했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강 전 대표의 경우 보궐선거 출마보다는 더 큰 것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 차기 내각에 합류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최근 강 전 대표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강 전 대표는 친강재섭계 의원들과 중도성향 의원들을 모아 최근 ‘동행’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사회 각 분야 전문가 100여명도 조만간 동참할 예정이어서 향후 강 전 대표의 정책 수립에 일조할 싱크탱크로 활동할 전망이다.
이종구 의원 측 관계자는 “‘동행’은 선진화를 위해서 사회 전 분야에 걸친 연구를 하는 모임으로 중립성향의 의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강 전 대표의 개인적인 모임 성격에 대해 “말도 안된다. 단지 공부를 하기 위한 모임이다. 모두 강 전 대표와의 친분 때문에 모임에 참석한 것으로 안다. 다른 뜻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치권이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한나라당 친박 친이 갈등이 본격화 되고 당내 불협화음이 거세지면 자연스레 중도성향 의원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을 것이다.
차기대권 전초기지?
그렇다면 강 전 대표의 새로운 역할론이 부상할 수 있다.
친이계와 친박계를 어우르는 모습을 보이면서 당내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친박계로 시작한 강 전 대표가 이제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두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정치의 생리인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친박 친이 갈등에 당이 흔들리면 강 전 대표의 역할론이 급부상할 수 있다. 만약의 경우 친박의 분당으로 이어진다면 강 전 대표는 어부지리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 된다면 강 전 대표는 더 큰 그림도 그릴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차기대권에도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모임에 참가한 36명의 면면을 살펴보면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친강재섭계로 분류되는 나경원, 이종구, 이명규, 김성조, 배영식, 박보환, 박종희, 정양석, 정진섭 의원 등과 중립성향의 황우여, 권영세, 권영진 의원, 여기에 주호영, 이사철, 윤석용, 신지호, 김옥이 의원 등 친이, 친박계 의원들까지 포함돼 있다.
기존의 계파를 넘나드는 구성원들이 모여 친강재섭으로의 헤쳐모여식 모임이라는 것이다. 특히 거의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강 전 대표와 개인적 인연이 깊은 인사들이어서 정치적 성격의 모임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모임의 참석자들은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친강재섭계 의원 관계자는 “그런 해석에 대해 인정을 한다. 하지만 ‘동행’은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연구모임이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차기대권을 향한 전초기지라는 설명은 너무 앞서가는 말”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모임 참가의원 관계자도 “정책개발이나 연구를 위한 세미나 모임이다. 강 전 대표 개인의 모임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의 모임이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3월이면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귀국하고 당내 계파간 갈등이 본격화 될 미묘한 시점에서 강 전 대표의 복귀는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당이 시끄러울수록 강 전 대표의 역할론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정통한 소식통은 “이제 이 전 최고위원이 귀국 후 어떤 행보를 펼치느냐에 따라 정치판세의 지각변동을 가져 올 수 있다. 이는 강 전 대표에게는 새로운 기회로 찾아올 전망”이라고 말했다.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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