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화합 위해 박근혜 밀 수도” 극비토로
“영호남 화합 위해 박근혜 밀 수도” 극비토로
  • 이금미 
  • 입력 2006-04-26 09:00
  • 승인 2006.04.2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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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발(發) 차기 후계구도인가.”최근 김대중(DJ) 전대통령이 가까운 측근인사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영·호남 화합 대통령’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차기 후계구도와 관련된 DJ의 복심(腹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물론, 이 자리에서 영·호남을 아우를 수 있는 대통령감이 누구인가에 대한 실명은 거론되지 않았으나, 참석한 인사들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아니겠느냐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야 차기 대권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박근혜 체제 이후 한나라당이 지속적으로 서진정책을 펴고 있어 당장 한나라당 대선구도에 격랑을 예고하고 있다. 벌써부터 이명박 서울시장측에선 ‘영·호남 화합 대통령=박근혜’라는 등식을 놓고 손익계산에 분주한 모습이다. 오랫동안 ‘지역감정과 지역분열’의 피해자이자 수혜자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DJ의 진정성을 지적하는 인사도 있다. 동서화합이라는 대명제를 두고 DJ의 일반적인 언급이었다는 해석이다.

DJ 정중동 뒤에 숨은 계산

그러나 발언의 배경을 두고 박 대표의 강력한 라이벌인 이 시장측이 손익계산에 들어간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현직 대통령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DJ의 정치적 무게감 때문이다. 게다가 정권의 ‘후계구도’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DJ의 복심과 관련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차기 대선, 정권창출, 전직 대통령과의 차별화 등 복잡한 권력의 흐름과 속성이 후계자가 누구인가에서부터 점화되기 때문이다. 우선 현직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도 남아있지 않다는 시기적 우연이다. 현재 여권에선 후계를 노리는 정권 실세들의 막후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찌감치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해야 대선 후보 경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역대 정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당연한 수순이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차기 후계자와 관련, 경쟁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어 여권 대선주자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는 현정권 들어 임기 반환점을 도는 시점 청와대 주변에서 ‘정보보고’와 관련 무성한 소문이 등장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대통령에게 올라간 보고서가 다른 루트를 통해 정동영·김근태 등 유력 대권주자로 흘러들어간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정치권 주변의 정객들이 줄서기를 하는 모습이 대통령 참모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후계자’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인물은 역시 현직 대통령 자신이다. 정책의 연속성 차원 외에도 누구를 후계자로 지목하느냐에 따라 퇴임 후 자신의 신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식대로라면 DJ는 정답을 알고 있는 산증인이기도 하다. 이는 영·호남 화합 대통령 발언이 정치권에 던져주는 파장과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참여정부에 섭섭함 비쳐

노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DJ에 예우를 다하고 있지만, 참여정부 출범부터 ‘DJ 차별화’로 승부를 걸었다. 대북송금 특검을 통해 DJ의 오른팔인 박지원 전비서실장 등을 구속시켰으며, ‘햇볕정책’을 계승한다면서도 ‘평화번영정책’으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특히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과정에서 시작해 노무현 대통령 당선까지 정치권 주변에 전해지는 야사를 더듬어 보면, DJ가 노무현 후보를 막후 지원한 것은 정황상 분명한 사실이다. 당시 민주당 인사들은 청와대의 개입 없이 경선 판도를 뒤집은 광주 승리를 낚을 수 없었다고 입을 모으곤 했다. 때문에 DJ의 영·호남 화합 대통령 발언이 현 정권을 겨냥한 복심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이는 이 시장측이 경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DJ가 비록 현직 대통령은 아니지만, 호남의 정신적 지주임은 명백한 사실이다. DJ가 박 대표를 두고 영·호남 화합 대통령을 언급했다면, 이미 박 대표는 전직 대통령이 부여한 ‘영·호남 화합’이라는 명분도 얻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일찌감치 DJ와 박 대표는 함께 있는 그림을 연출함으로써, 영·호남 지역화합을 자연스럽게 국민의 뇌리 속에 각인시킨 바 있다. 지난해 연말 박 대표가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을 찾아 DJ를 면담했을 당시, 한나라당은 “‘정적(政敵)’ 간 시대적 화해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한껏 부풀리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박 대표를 정점으로 영·호남을 아우르는 움직임이 한나라당내에서도 감지된다는 것은 이 시장측 뿐만 아니라 여권 대권주자들에게도 부담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현재진행중이라는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박대표 잇단 ‘서진행보’

DJ의 발언과 맞물려 박 대표의 최측근 인사로 꼽히는 김무성 의원의 최근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연말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공동회장에 취임한 김 의원이 자청해 DJ와 YS의 화해를 주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김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민주화를 이끌어낸 주역인 상도동과 동교동이 더 이상 분열의 모습을 보이지 말고 화해해야 한다는 것이 민추협 동지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라며 “민주화 운동 동지인 DJ와 YS 회동을 추진해 왔다”고 전했다. 물론 DJ·YS 화해는 정치권의 오랜 바람이지만, 너무 오래 기다린 탓에 현실성이 없다는 관측도 많은 게 사실이다. YS는 최근까지 DJ의 대북관에 쓴 소리를 퍼붓기도 했다.

지난 19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민주주의 이념연구회 창립대회에서 YS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이후 이 나라는 친북좌익 세력이 큰 소리 치는 정체불명의 이상한 나라가 됐다”면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정책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두 대통령의 역할은 동서간의 화합과 갈등의 골을 메우는 데 있다”면서 “향후 지속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김 의원은 덧붙여 “민추협 공동회장인 박광태 광주시장과 함께 꾸준히 진행해 왔으나, 김덕룡 의원의 ‘공천비리’ 사건이 터져 조금 늦춰질 것”이라고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의 주력부대를 이끌고 있는 김 의원은 지난 연말부터 ‘호남 연대론’을 주장해왔던 인사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이다.

이 부분에선 DJ가 언급한 영·호남 화합 대통령과 접근 각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나라당 독자세력만으로 대선승리를 거두기가 힘들다는 판단인 것이다. 친박근혜 인사인 맹형규 전의원의 정책위의장 시절의 주장인 ‘빅텐트 정치연합’도 되짚어볼만하다. 그는 “호남과의 연대를 골자로 하는 빅텐트 정치연합의 시발점은 바로 영·호남 화합”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나라당은 아직도 광주 시민들에게 ‘5·18 광주 민주항쟁의 원죄’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 때문에 그 틀을 벗기 위해 당명도 바꾸고 당을 깨서라도 광주 시민들로부터 한나라당이 변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해 왔다.

반 DJ정서는 ‘걸림돌’

DJ의 영·호남 화합 대통령 발언과 관련, 여권 대권진영은 물론 이 시장측의 복잡한 셈법은 이 부분에서 멈춘다. DJ가 박 대표에게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찌감치 낙점된 후계자의 정치 진로가 순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같은 판단엔 한나라당에 여전히 반DJ 정서가 남아있다는 이유도 한몫하고 있다. 15대 대선을 앞두고 일찌감치 YS의 후계자로 거론됐던 이인제 경기도지사가 그 주인공이다. 당시 YS는 실명을 밝히지 않은 채 ‘깜짝 놀랄 젊은 후보’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이는 당시 야권의 영원한 대통령 후보 김대중·김종필 거물 정치인은 물론 신한국당 내 김윤환·최형우·이한동 등의 중진의원들 입장에서 이인제 지사에 미운털이 박히게 한 단초가 됐다는 게 정설이다. 물론, 당시 YS 주변에선 ‘특정인물을 염두에 둔 게 아니다’는 해명이 이어졌음에도 말이다.


# DJ 측근 K씨 미니 인터뷰“DJ 본심, 박근혜에 기울고 있다”


김대중(DJ) 전대통령의 ‘영·호남 화합 대통령’ 발언을 두고 향후 발전 가능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중인 곳은 한나라당이다. 동교동측의 공식적인 입장은 “그런 일 없다”이지만, ‘호남민심’은 한나라당 대선구도에 핵심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의 정치적 고향이 영남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어, DJ의 의중은 향후 전개될 당내 대권경쟁의 분수령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섣부른 추측도 나오고 있다.

다음은 DJ의 핵심측근 K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최근 DJ가 측근인사들과의 대화에서 ‘영·호남 화합 대통령’에 대해 언급했다고 알려지고 있는데.
▲동교동 비서출신 인사들도 지난 생신 때 방문한 이후 동교동을 찾지 않았다. 또한 DJ는 오래 전부터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면 어떠한 정치적 언급도 피해왔다. 본질에서 벗어난 정치적 해석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언급이 있었다 하더라도 지극히 일반적인 범위에서 받아들일 문제이다.

-지난 연말 박근혜 대표의 동교동 방문 당시, DJ는 박 대표에게 “박 대표가 동서화합의 제일 적임자”, “잘못된 지역감정은 사라질 것”, “큰 포부를 갖고 잘해보시라”고 했다. 이번 언급은 당시의 덕담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DJ는 집권여당 대표이든 예비 정치인이든 동교동을 방문한 손님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박 대표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당시 자리에서 박정희 전대통령을 언급했던 만큼, 박 대표에 대한 남다른 감정을 드러낸 것은 사실이다.

-DJ의 ‘동서화합’에 대한 집념은 익히 알려진 바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해석해도 되는가.
▲방북이 성사된다면, 전직 대통령으로서 DJ의 다음 역할은 동서화합이 될 것이다.

이금미  nick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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