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정당사에 주요정당으로서 민주당이 등장한 것은 1955년 9월 18일의 일이다. 사사오입(四捨五入)개헌으로 독재체제를 구축하려는 이승만대통령에 맞서 제1야당이던 민국당과 호헌세력 등이 결합하여 신익희를 대표최고위원으로 출범한 정당이 민주당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이승만 독재체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1956년 신익희, 1960년 조병옥을 대통령 후보로 하여 이승만에 맞섰지만, 두 사람 모두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불의(不意)의 서거로 정권교체를 이루지는 못했다.
정당정치로는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했지만, 1960년 4·19 시민혁명의 결과 탄생한 제2공화국에서 민주당은 압도적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정당정치를 꽃 피워보기도 전에 민주당 정권은 이듬해 군사쿠데타 세력에게 정권을 내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런 민주당을 전신(前身)정당이라고 생각하는 정당이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015년 문재인 대표가 ‘창당6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민주당의 법통을 잇겠다며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추진했다. 그 기념사업의 마지막 피날레는 2016년 1월 28일에 있었던 ‘더민주 60년사 출판기념회’였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을 대표하여 인사말을 한 사람은 현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인 김종인이었고, 원내대표였던 이종걸은 21대 총선에서 공천탈락 후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도 패하면서 체면을 구겼으며, 창당60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이었던 전병헌은 지난주 ‘뇌물수수·횡령’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확정판결을 받았다. 불과 6년 전의 상황이 상전벽해(桑田碧海)인데, 60년 전 민주당 법통을 잇겠다고 하는 더불어민주당을 보면 그 고집이 가상하다 아니할 수 없다.
단순한 이름으로서가 아닌 정당정치의 맥락에서 본다면 더불어민주당의 역사는 1987년 야권분열과정에서 탄생한 김대중의 평화민주당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지만,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세력분포를 보면 1995년 창당한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에 노무현, 김원기 등의 꼬마민주당 일부세력이 합류하는 1997년 11월을 당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다.
1987년을 기준으로 하든 1997년을 기준으로 하든 더불어민주당의 역사는 한 세대가 지났다. 정치학의 세대이론(generation theory)에 의하면 특정정당이 의미 있는 정치적 역할을 하는 데는 한 세대가 한계라고 한다. 그 특정정당을 지지했던 여러 요인들이 한 세대가 지나면 한계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정당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환골탈태(換骨奪胎)가 필수불가결하다. 아니면 도태(淘汰)되기 때문이다. 환골탈태 혹은 도태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다음달 7일에 실시되는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후보의 문제도 정책의 문제도 아닌 구도의 문제가 이미 승패를 갈랐기 때문이다. 선거후 더불어민주당은 격랑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이다. 5월에 당대표 선거가 예정되어 있지만 격랑의 소용돌이에 빠진 더불어민주당을 구해내는 것은 당대표가 아닌 내년 대선주자다.
더불어민주당의 유력대선후보 3인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장점을 극대화하는 사람이 대선후보가 되고 더불어민주당을 환골탈태 시킬 수 있다. 이낙연 전 대표는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발탁되어 노무현 대통령을 만드는데 공을 세웠으나 호남지역주의에 스스로를 가두는 우를 범했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노무현과 정치를 시작해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더불어민주당의 적장자라고 할 수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더불어민주당의 서얼에도 못 끼지만 자수성가했다. 그의 롤 모델은 노무현이 되어야 전망이 보일 것이다. 좌충우돌만으로는 안 되고 노무현과 같은 일관된 논리와 행동, 그리고 자기희생으로 당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노무현의 발뒤꿈치만이라도 쫒아갈 수 있다면 그에게 길이 열릴 것이다.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