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기업의 분사는 여러 자회사 중 하나를 독립시키는 것이다. 기존 여러 사업 중 하나의 사업만을 우선시 할 수없었던 데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집중 성장하려는 의도다. 그에 따라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일부 기업 분사는 숨겨진 계획이 예측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모 기업의 덩치를 줄이거나 법적 책임에서 빠져나오거나 규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로 기업 분사가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
구본준 독립경영 첫발…상사·실리콘웍스·하우시스 분사
경영자원 집중ㆍ재무구조 건실화ㆍ효율적 자산이용 등 순기능
㈜LG는 지난해 11월 이사회를 열고 LG상사, LG하우시스, LG MMA, 실리콘웍스 4개사 출자 지분을 인적분할해 새 지주사인 ‘㈜LG신설지주(가칭)’를 설립하기로 했다. 신설 지주사가 이들 4개 회사를 자회사로, LG상사 산하의 판토스를 손자회사로 편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오는 3월26일 정기 주주총회를 거친 후 5월 두 회사를 분리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구광모 LG그룹 회장 삼촌인 구본준 LG 고문이 이끄는 이른바 ‘구본준그룹’이 탄생한다. 사명도 'lx'로 정했다.
전통 따른 LG…'숙부 구본준 독립' 결단
이번 신설지주 설립은 구광모 LG회장 체제의 사업구조 재편 작업이 일단락됨과 동시에 '형제 독립 경영' 체제의 전통을 잇는 계열 분리 작업의 일환이다. LG그룹은 선대 회장이 별세하면 장남이 그룹 경영을 이어받고, 동생들이 계열사를 분리해 나가는 ‘형제 독립 경영’ 체제 관행을 지켜왔다.
고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들을 주축으로 1999년 LG화재와 LG정밀을 중심으로 한 LIG그룹을, 2003년 LG산전·LG전선 등을 분리시킨 LS그룹 등이 계열분리됐다. 또 2세대에서는 고 구자경 명예회장의 동생들이 LG패션을 분사해 LF를 설립하고, LG유통 식품 서비스 부문을 독립시켜 아워홈으로 키우는 등 독자적인 길을 찾아갔다.
이와 함께 구 창업회장의 동업자였던 고 허만정 LG그룹 공동창업주의 손자인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 등도 LG건설, LG칼텍스정유 및 LG유통 등을 주축으로 GS그룹을 세웠다. 구본무 선대회장이 그룹의 수장에 오르기 3년 전인 1992년에는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현)이 당시 희성금속을 분리해 독자적인 사업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이번 계열 분리가 주주가치 창출보다는 창업주 가족인 구본준 LG 고문이 사업을 시작하도록 돕는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스’는 최근 ㈜LG에 서한을 보내 “명백히 더 좋은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회는 가족 승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액주주를 희생시키는 계획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며 "LG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다는 이유로 주주들에게 반하는 행동을 그만두라”고 주장했다. 이어 “가장 훌륭한 기업 지배구조로 평판이 난 LG가 소액주주보다 가족을 우선시하는 계획을 제안한 것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지속되는 이유”라고 꼬집기도 했다. 총 55억달러를 운용하는 헤지펀드 화이트박스는 ㈜LG 지분을 0.6%가량 보유하고 있다.
앞서도 (주)LG의 계열사 LG화학은 이사회를 열어 전지사업부 분사를 최종 결정했다.
LG화학측은 “연간 3조 원 이상의 시설 투자가 필요한 상황인 만큼, 대규모 투자 자금을 적기에 확보하기 위해 분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신설 법인은 물적 분할 방식을 선택한 만큼 LG화학이 발행 주식을 모두 소유했다.
LG화학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의 기업가치가 LG화학의 기업가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고, 전지 재료 사업 등 양사의 연관성이 크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분할은 모든 주주에게 호재로 작용하지 않았다. LG화학의 배터리사업을 보고 투자했지만, 신설되는 (배터리)회사 주식을 한 주도 못 갖게 된 것에 대해 개인투자자들이 반발했다.
인적분할과 달리 물적분할을 하면 기존 주주에게는 신설 회사 주식을 한 주도 주지 않는다. 당황한 일부 투자자는 주식을 내던졌다. 투자자들은 주가 하락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인터넷 커뮤니티 곳곳에 LG 성토 글을 올렸다. 청와대 게시판에도 “LG화학 물적분할로 인한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를 막아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증시에 뛰어든 2030세대는 더 본격적이었다. 직장인 익명 게시판앱 블라인드와 각종 주식 커뮤니티에는 “LG 불매 운동에 나서겠다”는 게시글이 도배됐다.
반발이 확산하자 회사도 대응에 나섰다. 애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긴급 콘퍼런스콜을 열어 “자회사를 상장하더라도 LG화학 지분을 70~80%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튿날에는 이례적으로 콘퍼런스콜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주주들의 불만을 가라앉힐 다양한 대책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후 주가는 다시 안정을 찾았다.
구조조정이 아닌 지배력 강화 수단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 중 사업분할 공시를 한 곳은 24곳이다. 일부 기업은 분사로 해법을 모색하기도 했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기업구조조정과 MBO의 활용방안' 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대기업이 분사를 통해 군살빼기를 하면 핵심역량의 ▲경영자원 집중 ▲재무구조 건실화 ▲및 기업가치 상승 ▲효율적 자산이용 등의 효과를 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 분사를 진행한 회사들은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삼았다. 애초부터 기업분할제도는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분할을 통해 가장 득을 보는 세력은 늘 최대주주(오너 일가)란 반론도 만만찮다. 오너 일가가 기업 분할을 통해 부실사업을 정리하기보단 알짜사업에서의 지배력을 높였고, 그 결과 주주가치가 훼손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 적도 있다.
특히 분할의 목적이 다른 데 있다면 기업의 내부 사정을 모르는 일반주주의 이해는 철저히 배제될 수밖에 없다. 분할의 비율부터 최대주주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해질 게 뻔해서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이 논란이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