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이재오 귀국…박근혜 선택은?

박근혜 전 대표가 9개월만에 이명박 대통령을 만났다. 박 전 대표 생일날에 맞춰 청와대는 오찬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박 전 대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보였다. 그러나 오찬 전후로 단독회동 무산이나 박 전 대표의 현안에 대한 ‘침묵’으로 양 진영의 입장차만 재삼 확인하는 자리였다. ‘억지춘향식’으로 끌려나온 박 전 대표나 ‘단독 회동’을 마련하지 않은 청와대를 보면 당연한 결과라 볼 수 있다. 그동안 ‘박근혜 총리설’, ‘대북 특사설’, ‘친박 입각설’ 등이 난무했지만 무위로 끝난 상황이다. 국정의 동반자라는 말이 무색한 1년이었다. 무엇보다 친박 진영에서는 박 전 대표에 대한 ‘홀대’가 계속되자 ‘당을 따로 만들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박 전 대표와 ‘각’을 세워 온 이재오 전 의원이 귀국하는 3월이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이명박 집권 2기 체제의 특징은 한 마디로 ‘왕의 남자 복귀-직할통치’로 친정체제의 강화로 볼 수 있다. 철저하게 정치인은 배제하고 실무형 전문가나 이 대통령의 ‘속도전’ 정책에 부응할 수 있는 충성맨들을 전진 배치한 셈이다. 이에 친이계 의원들뿐만 아니라 친박계 의원들까지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로 이 대통령 다음으로 지목되는 박근혜 전 대표의 진영은 폭발직전이다. 차기 대권에 유력한 주자이기도 한 박 전 대표를 전혀 1년이 지나도록 예우를 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다.
MB 정부, ‘위기’때마다 박근혜 카드 흘려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강부자 내각’, ‘촛불 시위’, ‘남북관계 경색’ 등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박근혜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지난 박근혜 총리설이나 대북 특사설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카더라식’ 소문만 무성했을 뿐 실제로 공식적인 제안을 받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이명박 정부 위기때나 선거때 박근혜 카드를 통해 일시적으로 모면하기위한 당근책에 불과했다.
이명박 집권 2년차를 맞이해 개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나라당 지도부뿐만 아니라 친이 진영조차 ‘탕평 인사’, ‘화합형 인사’ 등 친박 인사 중용을 강조했다. 그 대상으로 최경환, 유승민, 김무성, 허태열 의원 등이 하마평으로 올랐다. 친박 입각설이 바로 그것이었다.
당 일각에서는 청와대 오찬 자리가 친박 인사들의 입각이 현실화되는 자리가 아니겠느냐는 추측까지 나왔다. 그러나 청와대에서는 30일 기자 브리핑을 통해 “정치인 입각은 없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이동관 대변인은 “정치인 입각 문제를 놓고 혼선이 있는 것 같고 자천타천형으로 보도가 난무하고 있으나 이번에는 정치인 입각은 없다”고 못박았다. 또 이 대변인은 “지난 번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만났을 때 개각폭이 적고 경제부처 중심으로 개각을 해서 현실적으로 (정치인 입각이) 어렵다는 뜻을 전했다”면서 “행안부 장관 인사가 유턴해서 의견 개진이 있었던 것 같으나 현재로선 그 원칙과 방침에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에 하마평에 올랐던 친박 인사들은 얻은 것도 없이 박 전 대표와 관계만 서먹서먹해진 꼴이 됐다. 친박 진영에서는 “탕평책이나 화합형 인사니 말만 그럴싸하고 진정성이 없다”며 “오히려 친박 진영만 분열시키는 형국”이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지난 청와대 오찬 초청 당시 박 전 대표의 참석이 이뤄지기전부터 친박 진영은 부글부글 끓었던 게 사실이다. 친박 의원실의 한 인사는 이미 “박 전 대표는 아무 말을 안한다”면서 “얘기를 한다면 참석한 친박 중진 의원들이 ‘쓴소리’를 할 수 있다”고 예견한 바 있다.
그는 오히려 “친이명박 언론사들이 박 전 대표 생일날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환하게 웃는 장면이나 건배하는 사진을 도배할 공산이 높다”면서 “박 전 대표 역시 청와대가 그리는 그림만 좋게 하는 데 일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08년 총선직후 친박 1차 ‘분당 시나리오’ 무산
또 다른 친박 인사는 “하루 정도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환하게 웃는다고 화해를 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면서 “실제로 화해를 했느냐 안했느냐가 중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일부 언론에서 요란하게 ‘화해 무드’ 조성해도 ‘평행선’은 계속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친박 진영 일각에서는 ‘당을 뛰쳐 나가 새롭게 당을 만들자’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실제로 총선 이후 친박 인사들의 복당이 지지부진할 당시 ‘분당 시나리오’가 잠시 나돌기도 했다.
총선직후 검찰 수사로 인해 곤경에 처한 친박 연대의 해산설이 흘러나오면서 박 전 대표 측이 탈당한 뒤 이들과 연대설이 그것이다. 당시 검찰 수사로 진퇴양난에 처했던 친박연대가 당을 해산하고 서청원, 양정례 의원 등 일부 인사들을 분리한 뒤 친박 무소속 연대와 별도의 교섭단체를 구성, 박 전 대표와 친박 당선자들이 한나라당에서 나와 합류해 70~80석의 당을 만들자는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당내 친박 인사들조차 ‘탈당’에 부정적인데다 박 전 대표 역시 한번 당을 뛰쳐나간 원죄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못해 유야무야됐다. 또한 한나라당 지도부가 친박 인사들의 선별 복당을 허용함으로써 최악의 상황을 면했다.
그러나 친박 진영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계속되는 박 전 대표 홀대와 친박 진영 분열 조장이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다시 나오고 있다. 특히 박 전 대표를 ‘독재자의 딸’로 명명한 이재오 전 의원의 3월 귀국으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 전 의원은 현재 ‘4월 재보선 출마설’, ‘당 대표 출마설’ 등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입각설이나 대통령 직속 위원장으로 올 것이라는 관측이 높았지만 멀어진 상황이다. 친박 진영에서는 이 전 의원이 오는 4월 국회의원으로 생환하거나 한나라당 재보선 참패 후 있을지 모를 조기전당대회에 도전하거나 어떤 경우든 원치 않는 시나리오다.
이 전 의원 귀국 자체가 이명박 정부의 권력 2인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기 전당대회에서 박 전 대표와 이재오 전 의원간 당 대표를 두고 일합을 벌일 경우 당 조직이 주류와 비주류가 바뀐 이상 승리를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박 전 대표가 그렇다고 전당대회에 수수방관할 수도 없다. 내년 있을 지방선거 공천권을 쥘 차기 당 대표 자리를 친이 진영 그것도 이재오 전 의원에게 준 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직접 나서 패할 경우에는 당내 입지뿐만아니라 차기 대권 가도에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공산이 높다.
박근혜發 정계개편시 제1야당 발돋움할 수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박 전 대표가 준비할 또 다른 카드는 당밖에서 친박 신당을 만들어 지방선거에 임하는 경우다.
실제로 박 전 대표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이 크게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박 전 대표의 경우 차기 대권 후보군에서 커다란 격차로 경쟁자들에 비해 앞서고 있다. 인물 중심의 한국 정치 특성상 이는 박 전 대표에 커다란 장점이자 친박 진영의 중요한 자산이다. 대표적인 게 민주당이다. 청와대와 집권여당이 지지부진함에도 불구하고 반사이익조차 누리지 못하는 배경 역시 ‘대표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당 밖 상황도 나쁘지 않다. 박근혜 당을 표방한 친박 연대가 건재하고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이회창 총재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 역시 박 전 대표가 ‘선봉’에 서서 정계개편을 주도한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시기상의 문제일 뿐이다. 내부적으로도 이 진영이 친박 전 대표를 홀대하면서 친박 인사들의 응집력이 매우 높아졌다. 당내 친박 인사로 지목되는 인사만 50명이 넘는 상황에다 중립지대 의원들 30여명까지 가세할 경우 제 1야당으로 발돋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발 정계개편은 넘어야 할 산이 적잖다. 우선 정계개편 키를 같고 있는 인사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다. 단초는 이재오 전 의원이 제공할 공산이 높다.
우선 이 대통령의 경우 탈 여의도 정치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느냐는 문제다. 이번 1.19 조각을 보면 당장은 국회나 정치인 중심의 국정운영을 할 뜻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지난 연말 입법 전쟁에서 쟁점 법안들이 연기되면서 국정운영에 찬물을 끼얹는 사태를 무시할 수도 없다. MB식 국정 운영에서 정치인에 대한 기대감이 적을수록 한나라당발 정계개편 가능성은 높다.
권력 2인자 이재오 귀국, 박근혜 선택은…
반면 박 전 대표의 경우에는 원죄설을 넘을 수 있느냐는 것이 관건이다 ‘과연 한나라당을 탈당해 새로운 당을 만들 것인가’, ‘한나라당 밖에서 박근혜의 힘은 여전할 것인가’, ‘탈당할 경우 과연 몇 명의 친박 인사들이 따라 올 것인가’ 등 불안요소가 존재한다. 박 전 대표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다. 자칫하면 제2의 손학규가 될 수 있다. 이용만 당하고 팽당할 수 있다는 우려감이 존재한다.
바야흐로 이재오 귀국까지 남은 날은 30일 정도다. 박 전 대표에게 길수도 짧을 수도 있는 기간이다. 그러나 ‘왕의 남자’ 이재오 귀국은 초읽기 들어갔다. ‘따뜻한 봄’을 국내에서 보내려는 이 전 의원과 ‘봄이 왔지만 봄을 느낄 수 없는’ 박 전 대표의 만남이 정계 개편의 단초로 작용할지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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