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윤사랑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전격적으로 총장직을 벗어던지면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윤 전 총장의 사퇴는 곧 정계 진출, 대선 출마로 여겨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윤 전 총장이 4월 재보궐선거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 행보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의 대선 등판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대선주자들도 셈법이 복잡하다. 윤 전 총장의 등판은 여야 대선주자들에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위협적 요소가 될까 아니면 긍정적 요소가 될까. 윤석열의 등판 예고로 여야 대선주자들의 생존 게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 尹 사퇴 ‘이재명-윤석열’ 양강구도로 재편, 여당 대권구도 요동
- 여론조사 지지율 치솟으면서 야권 주자들 존재감은 더욱 ‘희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 3일 보수의 성지인 대구를 찾아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늦깎이 검사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초임지다. 여기서 특수부장도 했다”라며 “고향에 온 기분”이라며 대구 방문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정치할 의향이 있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이 자리에서 드릴 말씀은 아닌 것 같다”며 확답을 피했다.
정치권에선 이를 사실상 윤 전 총장의 정치 참여 선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의 대선 출마 선언은 이제 시간 문제가 됐다. 이 때문에 ‘윤풍(尹風)’, ‘윤석열 바람’은 여권은 물론이고 야권 대선구도까지 흔들고 있다.
우선 윤 전 총장의 등판은 여권 대선 경쟁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경쟁구도는 여러 번의 변화 과정을 거쳤다. 지난해 4.15 총선 직후까지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의 1강 독주가 지속되다가 ‘이낙연 대 이재명’ 양강 구도로 재편됐고, 이후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이재명 경기도지사 1강 체제로 재편됐다.
윤석열 부상, 이재명에겐 독일까 약일까...

윤 전 총장이 등판할 경우 문재인 정부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일부 보수와 중도의 지지를 받던 이재명 지사가 가장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윤 전 총장이 전격적으로 사퇴하자 이재명 지사 1강 체제는 무너졌다.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이 지사는 1위 자리에서 밀려났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 5일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를 조사한 결과, 윤 전 총장이 32.4%를 얻어 1위를 기록했다. 2위와 3위는 이재명 경기지사(24.1%)와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14.9%)이 각각 차지했다. 뒤이어 무소속 홍준표 의원(7.6%), 정세균 국무총리(2.6%),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2.5%) 순으로 나타났다.
윤 전 총장은 1월 22일 실시된 KSOI 여론조사에서는 14.6%를 기록했고, 이재명 지사는 23.4%,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은 16.8%였었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무려 17.8%포인트 치솟으면서 이 지사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윤 전 총장과 이 지사가 동률을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9∼11일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를 물은 결과, 이재명 지사의 지지율은 전달보다 3%포인트 하락한 24%로 나타났다.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은 15%포인트 치솟은 24%로 집계돼 이 지사와 동률을 기록했다.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은 11%로 전달보다 1%포인트 상승했지만 순위는 3위에 그쳤다. 뒤이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3%), 무소속 홍준표 의원(2%) 순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이재명 지사 1강 체제가 무너지고 ‘이재명-윤석열’ 양강 체제로 재편됐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윤석열 전 총장의 존재는 이재명 지사의 본선 경쟁력을 돋보이게 할 수도 있다. ‘윤석열 바람’으로 위기감에 휩싸인 민주당 지지층이 ‘윤석열 대항마’로 본선 경쟁력이 있는 이재명 지사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이 지사의 최대 과제는 친문과의 관계 회복 문제였다. 이 지사는 지난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과 2018년 경기도지사 경선 과정에서 친문과 앙숙 관계가 된 바 있다. 이 지사는 친문의 마음을 잡아야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런데 윤석열이라는 존재가 이 지사에게는 친문 지지를 끌어올 수 있는 호재가 될 수도 있다.
이낙연 위기이자 기회, 제3후보 공간 넓어질 수도

윤 전 총장이 ‘반문 정서’를 등에 업고 바람을 일으키게 된다면 민주당 친문 세력이 자신들을 대변할 수 있는 후보를 내세워 윤 전 총장에게 대항하려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친문의 거부감이 약한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의 정치적 공간이 더욱 넓어질 수 있다. 그러나 4월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한다면 이 상임선대위원장에게 기회도 사라지게 된다. 이 상임선대위원장의 대권 가도는 ‘윤석열 변수’ 만큼이나 ‘재보선 변수’가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전 총장이 부상하면 할수록 위기감을 느낀 친문 핵심 세력들이 앙숙 관계인 이재명 지사도, 본선 경쟁력이 약화된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도 아닌 제3의 후보 찾기에 더욱 속도를 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세균 국무총리,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 제3의 후보에게 기회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제3의 후보들도 모두 대선주자 지지율이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문제다.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윤석열 전 총장을 대항하기에는 본선 경쟁력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약점이다.
윤태곤 의제와분석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지난 9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윤석열, 이재명 두 사람은 약간 서로서로 괜찮은 느낌이 있다. 서로 상호 보완적”이라며 “이재명 대 이낙연 양강 구도가 아니라, 윤석열 대 이재명 양강 구도가 형성이 되면 이재명 지사 같은 경우 약점은 친문 지지층이 ‘나를 지지할 거냐 말거냐’ 이런 거지 않나. 밖에 강한 사람이 있으면 내부에서 흔들기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윤 실장은 “양강 구도 형성이 대통령 후보 되기에는 제일 좋은 거다”며 “그래서 이재명 지사 입장에서는 윤석열 총장이 뜨기 때문에 지지율이 조금 빠진다, 이런 것도 있는데 (민주당 경선) 구도 형성에서 보면 저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러나 양강 구도(윤석열 대 이재명)가 형성이 되면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에게는) 안 좋은 것, 그리고 윤석열이 되면 아예 뉴페이스로 가야 되는 것 아니냐, 두 가지의 흐름이 나타날 것”이라며 “이낙연 위원장 입장에서는 무조건 4월 재보궐선거를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권 잠룡들에겐 최대 위기… “국민의힘에는 재앙”
야권 대선주자들에게는 총체적 위기다. 윤석열 전 총장이 등판할 경우 그들은 더욱 생존 위협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 전 총장이 지지율 30%대를 넘나들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지만 야권 잠룡들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이 실제로 대선판에 뛰어들게 되면 모든 관심이 윤 전 총장에게 쏠리면서 야권 잠룡들은 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위기 의식을 느낀 야권 잠룡들도 최근 윤석열 전 총장 문제,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 구상 등 정치 현안에 대해 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존재감 부각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도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블로킹 효과로 국민의힘 대선주자는 페이드 아웃됐다”며 “국민의힘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후보를 못 낼 가능성이 많은데 대선을 1년 앞둔 지금 시점에서도, 대선 경선에 들어갈 시점에서도 5%를 넘는 후보가 없을 가능성이 농후해졌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민의힘 최악의 시나리오는 윤석열이 당분간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을 도토리로 만들다가 반기문처럼 사라지거나 제3지대 외곽에 머물며 안철수처럼 국민의힘을 괴롭히는 일”이라며 “윤석열의 정치권 등장이 국민의힘에게는 재앙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도 최근 TBS 라디오에 출연해 “(윤 전 총장이) 신당을 만들고, 우리 당 후보는 계속 5% 이하대로 가게 되면 우리 당은 없어진다”면서 “우리 당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 당에서도 이제 꽤 지지를 받는 후보를 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지난 9일 TBS에 출연해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운 상징성을 이미 윤석열 전 총장이 획득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른 보수 주자들 같은 경우 의미 있는 지지율을 보이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윤사랑 기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