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고민, YS-DJ 투트랙 전략 부심

이명박 대통령의 연초 개각에는 한나라당도 박근혜도 없었다. 오히려 친정체제 강화를 통해 비정치인을 중용하거나 ‘왕의 남자’들이 대거 복귀했다. 한때 인사전횡으로 친이간 권력다툼의 희생자였던 박영준 전 기획조정비서관이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복귀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정치인 중용 요구’나 ‘친박 인사 입각설’은 한쪽의 바램으로 끝이 났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 이명박 정부로부터 ‘홀대’는 계속되어지고 있다. 박 전 대표가 대권 가도를 가기위해서는 이명박 정부를 밟고 일어설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당장 이 대통령과 날을 세우고 싸울 수도 없다. 오히려 친박 진영에서는 YS-DJ의 지지를 받기위한 물밑작업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와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당내가 아닌 당 밖에서 MB 역포위 작전을 벌이겠다는 심산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YS)의 화해를 위한 작업은 꾸준하게 있어왔다. 특히 동교동계 대표주자인 김상현 전 의원과 상도동계 출신인 김덕룡 전 의원이 있는 민주화추진협의회가 앞장섰다.
지난 2006년 대선을 한해 앞둔 시기에 친박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이 총대를 멨다. 김 의원은 평소 영호남 통합을 위해 DJ와 YS의 화해를 적극적으로 나섰다. 민추협 회장을 맡고 있는 김 의원은 당시 5·18 행사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광주 망월동 묘역 공동 참배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친박-민추협 회원, YS-DJ 묶기 시도
나아가 민추협 회장단 모임에서도 두 전직 대통령의 화해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추협 모임에는 공동 회장인 박광태 광주시장, 공동이사장인 김상현 전 의원과 한나라당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특보, 안경률 사무총장 의원 등이 참석했으며 이들도 두 전직 대통령의 화해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나타냈다.
그러나 정작 두 인사의 화해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DJ-YS 화해 제안이나 연대설이 나올때마다 앙금은 더 깊어지는 형국이었다. 물론 두 인사를 막후에서 이어줄 측근은 존재했지만 매개체가 약했다. 김 의원이 제안한 광주 망월동 묘역 공동 참배 역시 성사되지 못했다.
이전 2002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도 두 인사의 연대설이 흘러나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반독재투쟁 출신 영호남세력들을 규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언론은 연일 노 후보가 내놓은 신민주대연합론을 크게 실었다.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와 YS가 사이가 좋지 않은 점도 한몫했다. 이 후보가 YS를 사실상 출당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에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노무현 후보는 호남과 PK를 아우르는 차원에서 신민주대연합론을 주창했다.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민주계의 재통합을 꾀한 것이고, 그 일환으로 노 후보는 김영삼의 자택을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YS는 노 후보를 문전 박대했다.
당시 YS 사저를 방문한 한 사정기관 인사는 “언론에서 신민주대연합론이 나와 진상을 알기위해 YS를 찾았다”며 “그러나 YS는 ‘DJ는 사기꾼이다’, ‘입만 열면 거짓말 한다’며 혹평을 했다”고 회고했다.
또한 YS는 이 자리에서 “내가 대통령 만들어줬는데 측근들 100명을 뒷조사해 콩밥을 먹인 인사”라며 “절대 신민주대연합은 없다”고 일축했다고 전했다. 이후 그는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YS-DJ 연대설’이나 ‘화해설’이 흘러나와도 상부에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YS, “생전에 DJ와 연대는 없다” 엄포
YS의 DJ에 대한 골은 여전히 깊은 상황이다. 지난 2008년 10월 YS는 부친인 김홍조옹이 별세해 상을 당했을 때 특유의 입심으로 DJ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YS는 이 자리에서 한 참석자가 DJ가 젊은 시절 기자 생활을 잠시 했을 것이라고 하자 “무신 기자를 해. (안 다닌) 건국대나 다녔다고 하고 (그 사람이 얘기하는) 나이는 도대체 믿을 수가 없어. 나와 경쟁자는 무슨...나한테 항상 졌어. 나 때문에 원내총무는 한번도 못했쟎아”라고 반박했다.
YS가 DJ에게 독설을 퍼부은 이후 DJ로부터 조문 인사겸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나 YS는 “예, 예” 몇 마디만 하고는 20초를 채 안 넘기고 끊었다. 이후에도 YS는 권영해 전 안기부장을 보고는 “제일 고생한 사람 오네. 저 사람은 김대중.노무현 두 사람한테 철저히 보복 당했다. 참 나쁜 사람들”이라고 일갈했다. 문민정부가 끝난 뒤 권 전 안기부장이 북풍사건 등으로 몇 차례 옥고를 치른 사실을 거론한 것이다.
이처럼 YS와 DJ의 골은 정치권에서 보는 것보다 매우 깊다. 하지만 친박 진영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실패한 영호남 대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즉 YS-DJ를 잇는 신민주대연합을 주창한 노 후보 때와 달리 호남과 PK를 포함한 TK 연대를 통해 진정한 영호남 통합후보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친박 진영과 민추협 회원들의 희망이 현실화된다면 차기 대권에서 필승 카드인 셈이다. 그러나 걸림돌이 있다. 바로 YS다.
박 전 대표와 YS는 외형상 소원한 관계다. 지난 한나라당 경선에서 YS는 박 전 대표를 포기하고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YS 부친상에서 드러났다. 친박 의원 10여 명을 대동한 박 전 대표와의 대화는 10여분간 이뤄졌지만 분위기는 어색했다. 그러나 YS는 박 전 대표가 돌아간 뒤 “내가 박 의원 왔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쿠데타니 독재자니 하는 얘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고 배려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YS는 박근혜 역할론 관련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경제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이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와 힘을 합해야 한다”며 “어려울 때 자기 당 사람과 힘을 모으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 언론사에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나아가 YS는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자주 만나야 한다”며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서 아주 가깝다고 할 수는 없다”고 이명박-박근혜 회동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이처럼 YS는 차기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권 후보인 박 전 대표에 대해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박근혜 동서화합 후보는 필승카드
반면 박 전 대표와 DJ는 진작 화해 무드로 돌아섰다. 지난 2004년과 2005년 당 대표 시절 2번씩이나 DJ를 찾은 박 전 대표는 부친의 유신 관련 사과를 했고 당시 DJ는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고 기쁨을 숨기질 않았다. 박 전 대표는 이전 DJ 국민의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과 6.15남북공동선언문 역시 지지를 보내고 있다. DJ 역시 박정희 기념관을 임기중 추진하는 등 박 전 대표와 친밀감을 유지하기위해 노력했다.
사실상 DJ의 지지는 박 전 대표로서 동서화합의 진정한 통합 후보로 거듭나기 위한 최대의 우군이다. 이처럼 박 전 대표와 DJ의 친밀감은 지난 한나라당 경선때 YS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는 배경이 됐다는 후문까지 나왔다.
박 전 대표로서는 YS 마음을 얻는 게 관건인 셈이다. 이명박 정부가 보수 정권이자 영남정권이지만 TK가 득세하면서 PK 홀대론이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박 전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PK는 YS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박 전 대표와 불통관계는 아니다. 만약 친박 진영의 계산처럼 YS의 마음을 얻고 DJ와 함께 동서 화합 후보로 우뚝선다면 박 전 대표로서는 차기 대권 가시권에 매우 근접한 인사가 될 전망이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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