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정보 제공했다”

민주당 일부 의원의 태국 골프 파문이 알려지면서 민주당 전체가 여론으로부터 따가운 뭇매를 맞고 있다. 임시 국회 회기 중에 외유성 골프를 쳤다는 점에서 ‘부적절한 처사였다’는 게 대다수 의견이다. 골프를 친 민주당 국회의원 역시 이 점을 인정하면서도 ‘억울하다’는 입장을 숨기질 않고 있다. 오히려 당 일각에서는 ‘국정원 개입설’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국정원법 통과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한 민주당과 선봉에 나선 박영선 의원이 국정원측에 ‘괘씸죄’로 걸렸다는 소문이다. 한편으로는 골프 모임을 가진 의원들 다수가 ‘10인회’로 정동영계보라는 점에서 당내 권력 다툼설도 나오고 있다. 당내 반정동영 진영이 정동영계를 죽이기 위한 카드로 고의로 흘렸다는 음모론마저 돌고 있다.
지난 9일 태국으로 떠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총 9명이다. 이강래, 노영민, 박기춘, 양승조, 전병헌, 주승용, 최규식 의원 등이다. 이강래 의원을 제외하고는 당내 재선그룹으로 진난 총선뒤 구성된 ‘10인회’ 멤버들이다. 또한 정동영 전 의원이 당 대표를 맡을 당시 당직을 맡았던 인사들이 다수로 정동영계보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민주당, ‘국정원이 항공사. 숙박 주인에게 명단 문의
이 인사들이 골프를 친 장면은 KBS 한국방송이 촬영해 보도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골프를 친 당사자들은 금요일 저녁에 가족동반으로 자비를 들여 저렴한 가격으로 숙식과 골프를 쳤다는 점을 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임시 국회 회기중이지만 국회 일정이 없는 주말을 활용했다는 해명이다.
특히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정원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다. 국정원이 사전에 해외로 나가는 사실을 알고 언론에 고의로 흘렸다는 게 요지다. 민주당 한 핵심 인사는 “국정원 소속 조정관이 아시아나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인원을 확인했다는 말부터 태국의 박기춘 의원 동생이 운영하는 숙박시설에 전화를 해 최종 참석자를 문의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국정원이 사전에 언론에 흘려 골프를 친 장면이 방송에 나가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나아가 그는 “김성호 국정원장 교체설이 나오고 있는데다 민주당이 국정원법에 강력한 반대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보기 차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무엇보다 박영선 의원이 앞장서 국정원법 반대에 선봉을 섰다는 점에서 박 의원이 주 타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국정원은 국정원법 통과를 위해 국회와 언론에 로비 활동을 치열하게 진행했다. 그러나 박 의원은 국정원 담당 위원회인 정보위원회에 민주당 간사역할을 맡아 국정원법 통과에 강력히 반대했다. 지난 12월 22일에는 국정원 직원과 국정원법 비교표를 놓고 언쟁을 벌였고 이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국정원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와 관련 정보위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한 인사는 “국정원 직원은 법무부 컴퓨터에 접속할 수 있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가지고 있어 수시로 해외로 나가는 정치인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며 “사전에 정보를 알 수 있었겠지만 국정원 속성상 국회의원이 외유중 골프를 치고 있는 중에 정보를 언론에 흘리지는 않는다”고 국정원 음모론을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오히려 그는 “국정원이 그동안 정보를 언론에 흘리는 경우를 살펴보면 사건이 벌어진 2~3일 후에 터진 경우가 대다수”라며 “국정원 음모론 보다 민주당내 내부 인사가 언론에 흘렸을 공산이 높다”고 내다 봤다.
국정원 한 관계자 역시 본지와 통화에서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정보를 흘리겠느냐”며 “KBS가 자체적으로 기획해서 보도한 것”이라고 국정원 보고설을 일축했다. 그는 “하루에 수천명이 넘게 해외로 나가는 데 일일이 검색해 명단을 확인할 수 없고 인력도 없다”며 “오히려 민주당에서 나간 게 아니냐”고 권력 다툼설에 힘을 실었다.
국정원측,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일축
골프를 치기위해 태국으로 떠난 인사들 다수가 10인회 회원에다 정동영계가 다수 포함됐다는 점에서 ‘정동영계 죽이기 아니냐’는 역음모론 주장이다. 현재 정동영 전 의장은 미국에 머물러 있지만 귀국설이 나오고 있는데다 오는 4월 재보선 출마설 역시 폭넓게 퍼져 있다. 무엇보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정세균 당 대표 진영으로서는 같은 호남 출신이자 정치권 복귀를 노리는 정 전 의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실제 당내 분위기는 정 전 의장과 정 대표가 당장 차기 대권 후보를 두고 경선을 벌일 경우 정 대표가 쉽게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올 정도로 정동영 세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내 일각에서는 10인회 소속 회원들이 태국으로 가족 여행을 간다는 사실에 긴장한 정 대표가 만류했다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부정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10인회는 태국으로 출국하자 반정동영 진영에서 ‘정동영계 죽이기’를 위해 언론에 고의로 흘렸을 공산이 높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회의원이 외유를 떠날 경우 당 대표실에 어디서, 누구와 어떤 일정으로 몇 일간 머무는지는 보고가 된다”며 “골프를 친다는 사실 역시 당에서 가장 먼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내부자가 흘렸을 공산이 크다”고 전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정원 개입설’에 ‘정동영 죽이기’ 음모론 주장은 급기야 ‘국정원-청와대 합작품’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배경으로 지난해 민주당이 집권여당인 한나라당과 입법 전쟁을 무사히 치루면서 당 지지율이 근소하게나마 상승했다. 한나라당은 172석이라는 여대야소 상황에서 한미 FTA 비준 동의안, 방송법 등 쟁점 법안을 올해로 넘기면서 지지층으로부터 ‘무력한 여당’이라는 질타를 받아야 했다.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한 청와대가 국정원의 민주당 국회의원 해외동향을 담은 보고서를 접하고 언론에 고의로 흘렸다는 얘기다. 민주당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고 정국 주도권을 청와대와 정부 여당으로 다시 가져오기 위한 국면 전환용 카드라는 그럴듯한 해석이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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