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수혜자 박근혜…거침없는 하이킥으로 여야 정치권 울려

민족의 명절 설이 다가왔다. 그러나 사람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해결의 묘수없이 갈수록 숨 막히는 경제난 때문에 그렇고, 그 근심에 한켜 더 쌓은 무거운 돌덩어리가 돼버린 한심한 정치 때문에 그렇다. 해마다 마지막 정기국회는 대개가 무력충돌이었다. 국회가 농성장이 되고 폭력 난투장이 되고 시정잡배들의 욕설에 활극까지 벌이면서 한해를 보내고 한해를 맞이하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렸다. 올해도 여지없이 그랬다.
전쟁국회의 원인제공자는 한나라당이며, 거기에 장단을 맞추며 업그레이드 시킨 것은 민주당이다. 한나라당은 올해 아예 드러내놓고 전쟁국회를 하겠다고 했다. 이른바 '입법전쟁'이다. 민주주의의 장인 국회가 폭력을 정당화, 합법화하는 전쟁터로 만들겠다고 만천하에 선언했다.
상임위에서도 통과되지 않은 85개 법안을 단 한번에 통과시키겠다는 목표는 의정사상 전무후무한 폭거였다. 폭력은 폭력으로 맞선다고 민주당은 몸으로 막아세웠다. 말로 따질 시간도, 능력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해머로 뒤엉키고, 주먹질로 뒤엉키고, 욕설로 뒤엉키며 누가 잘한 건지, 누가 진짜 잘못한 것인지 모두 뒤엉키고 말았다.
문제는 국민은 도대체 뭐냐는 것이다. 국민들은 국회운영비를 세금으로 내놓고도 오히려 국회로부터 느닷없이 린치당한 꼴이다. 정치폭거와 다름없는 상황이다.
입법전쟁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모두 패자
과연 우리에게 의회민주주의라는 것은 무엇일까. 정치는 또 무엇일까. 끝없는 회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들은 여야 모두를 매섭게 질타하고 있다. 여야 정치인들에게 의회정치를 지키라고, 타협의 정치 원칙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시사 1번지 <폴리뉴스>(www. polinews.co.kr) 창간 8주년을 맞아 지난 10-11일에 한길리서치에 의뢰한 2차 조사에 의하면, 입법전쟁 후 한나라당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경제살리기 위한 국민통합의 거국내각 실시'가 50.2%, '박근혜 총리등 친박인사 내각기용으로 여권통합의 정치'가 37.5%에 이른다. 무려 90% 가까이가 통합의 정치를 펼 것을 여권에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MB 집권세력 의지대로 밀어붙이기 정치를 펴야한다'는 응답은 겨우 3.4%에 불과하다.
또 입법전쟁 후 민주당의 향배에 대한 질문에서도 '여당과 타협과 협력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무려 79.1%나 된데 반해, '양보하지 않고 끝까지 법안저지에 나서야 한다'는 응답은 겨우 13.2%밖에 안되었다.
이 두 조사만 보더라도 국민들은 여야의 대치정치, 전쟁정치가 아니라 '타협의 의회정치'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판 국회 한가운데서 한편으로 국민들의 관심 중 하나가 싸움을 했으니 과연 승자와 패자가 누구일까하는 것이다. 정당은 어느 쪽이며 정치인은 누구인가다.
정치적으로는 민주당이 승자인 것처럼 되었지만 그러나 민심은 민주당도, 한나라당도 아니었다. 두 당은 모두 정당의 존립자체가 위태로울 정도로 국민들은 등을 돌렸다.
물론 이번 입법전쟁 책임을 묻는 질문에는 한나라당 30.7%, 청와대 15.5%로 여권이 절반에 육박하는 46.2%이고 민주당이 15.6%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지지도는 또 다르다. 여당도 야당도 싫다는 결론이 나왔다.
집권여당 한나라당은 20%대마저 붕괴된 19.4%로 그야말로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지난해 12월19-21일 조사 당시 24.2%보다 무려 4.8%p나 급락한 결과였다.
집권여당이 집권 1년만에 19.4%로 바닥을 친 것은 YS집권 말기인 1996년 노동법 파동으로 인한 17%를 기록했던 것과 같은 최악의 상황이다.
특히 한나라당 기반인 영남으로부터 한나라당이 크게 외면당했다. 대구/경북 지역은 40.5%→36.3%로 4.2%p 하락했고, 부산/경남 지역 또한 33.1%→24.0%로 9.1%p가 하락했다.
무당층 폭발적 급증 진보개혁층 ‘와르르’
50대층에서는 이번에 무려 10.5%p나 하락해 33.0%를 기록, 전연령층에서 가장 하락폭이 컸다. 정치적 승리를 했다고 자신하는 민주당 역시 참담하다. 민주당은 10%대도 안되는 9.5%로 폭락했다. 12월 <폴리뉴스,한길리서치> 1차조사때는 12.7%로 한자리수대 바닥세를 치고 상승기류를 보였던 것이 한달만에 3.2%p가 빠져 도로 한자리수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민주당은 전 연령대에서 하락했고, 호남만 27.8%였고 서울과 인천경기만 10% 수준이고 다른 지역은 1-4%로 지지가 거의 없다.
집권여당이 10%대, 제1야당이 한자리수라는 것은 결국 국민들에게 있어서 '정당은 없다'. 남은 것은 극단적인 정당혐오증뿐이다. 그만큼의 무당층 급증을 불러왔다. 1월 조사에서 무당층이 64.9%로 12월 53.9%보다 11%p나 급증,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극단적인 정당혐오증이 무당층의 무서운 급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무당층의 급증은 보수층 이탈이 아니라 중도와 진보층 이탈이라는 점이다. 중도, 진보성향의 무당층은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70%대를 웃돈다. 민주당 우호층들이 대거 이탈한 것이다.
성향별로 볼 때, 보수성향층의 무당층은 47.1%로 평균보다 훨씬 낮고 12월 45.7%와 비교해도 별 변화가 없다. 그러나 중도성향층은 무려 75.7%로 80%에 육박하며 12월 64.3%보다 11.2%p 급증했고, 진보성향층은 70.6%로 12월 47.2%보다 23.4%p나 급증, 무당층으로 폭발적인 이탈현상을 보인다.
이처럼 진보층의 무당층화는 민노당과 진보신당 지지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두 당이 분당한 후 치른 입법전쟁 이후 민노당은 2.1%, 진보신당은 1.6%다. 이는 지금 국민들에게는 진보정당은 '없다'는 것을 대변한다.
이른바 진보개혁세력층이 보수층보다 더 강하고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편, 지역별로 보면 대구경북과 호남은 각각 한나라당과 민주당 이탈이 비교적 약한 반면,중도성향이 강한 서울, 충청, 강원은 모두 70%가 넘어 각각 70.3, 78.2, 79.6%로 전 달보다 10%p 안팎으로 무당층으로 이탈했고, 특히 부산은 12월 48.1%에서 68.1%로 급증, 무려 20%p나 폭발적으로 늘어나 부산이 정치적 무주공산이 되어가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입법전쟁 후 정치인들에 대한 인물평가는 어떠할까.
입법전쟁 최대 수혜자는 박근혜... 왜?
이번 2차 여론조사 결과로 보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최후 승자라고 들어났다.
박근혜 전 대표의 'MB입법 비판 발언'에 대해 잘했다가 53.2%로 절반이 넘는다. 잘못했다는 22.0%에 그쳤다. 또 이번 입법전쟁에서 가장 돋보인 정치인으로 박 전 대표가 18.9%로 여타 정치인에 비해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다.
박 전 대표 역시 지난 5일 6개월만에 나타난 당 중진회의에서 한나라당이 목숨걸고 통과시키려는 MB법안에 대해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안겨준 법안' '다수당이라는 이유로 밀어붙이고 강행처리는 안타까운 일'이라며 한나라당에 정면으로 화살을 날려, 당안팎에서 비난의 화살을 한몸에 받았었다. 한나라당 친이핵심들은 '배신자' '뒤통수친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었고, 보수언론 조중동도 총출동해 박 전 대표에 날카로운 공격을 퍼부었었다.
박 전 대표 다음으로 높은 점수를 받은 정치인은 '국회의장실 양발 걷어차기'로 '폭력의원'이라며 국민적 비판을 받고 결국 사과까지 했던 강기갑 민노당 대표다.
그 다음은 한나라당에서 '기회주의자'라는 맹렬한 비난을 받았던 김형오 국회의장이 9.0% 순이다. 김 의장은 지난해 29일 부산 기자회견에서 양비론 입장을 취하며 한나라당 강경파들의 민주당 농성자들의 무력진압과 직권상정 압박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민주당과 물밑 타협을 지속적으로 해 결국 민주당과 타협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차가운 눈총이 여전하다.
이처럼 국민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은 1, 2, 3위는 모두 정치권에서는 비난의 폭격에 시달려야 했던 인물들이다. 반면에 이번 입법전쟁에서 목숨걸고 앞장서서 투쟁을 지휘했던 여야 지도부들은 낭패를 보았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홍반장'이라고 불리웠던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6.4%를 기록했고, 입법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3.6%에 머물러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 4.5% 보다도 낮게 나왔다.
이들 여야 지도부들은 각 당에서는 지금 신뢰도가 매우 높다. '패장'이 된 홍 원내대표도 초반에는 책임론이 거론되다가 물밑으로 잠복될 정도로 당에서는 입지를 오히려 굳힌 상태고, 민주당은 흔들렸던 정세균 체제가 이번 한번의 싸움으로 확고하게 굳혔다.
이처럼 국민들은 정치권과 정 반대의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국민들의 평가기준은 국민이 원하는 방식. 즉 진정한 '의회민주정치'를 실천하는 정치인들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여야 타협의 정치'를 주장했고, 강 대표는 국민을 속이는 '밀실야합 정치'에 분개했으며, 김 의장은 끝까지 인내하며 '여야 타협'을 이끌어낸 때문일 것이다. 입법전쟁을 치루면서 국민들은 정당에 완전히 등을 돌렸지만, 의회정치를 지키려는 정치인들에게는 아직 그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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