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전두환 신군부에 대항 "누가 내게 총을 겨누겠는가"

“나라가 어려울 때는 몸을 던져 헤쳐 나가라”
고(故) 최규하 전 대통령과 부인 홍기 여사에 대한 일화를 묶은 책이 출간됐다. 저자인 권영민(62) 전 독일대사가 최 전 대통령을 40년간 곁에서 지켜본 모습들을 일화로 엮어낸 것이다.
‘자네, 출세했네-내가 보아온 최규하 대통령과 홍기 여사’라는 책 제목처럼 회고록 등 기록이 드물어 잘 알려지지 않은 최 전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인 면모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첫 문구는 최 전 대통령이 외교관으로서 저자에게 남긴 부훈이다. 저자는 최 전 대통령에 대해 “정말로 나라사랑이 무엇이며 정열과 에너지가 넘쳤으나 이를 자제하는 어려움이 무엇이라는 것으로 몸소 보여준 분”이라고 책 첫 페이지에 적고 있다. 책의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1976년 1월, 최규하 대통령께서 국무총리로 임명된지 한 달 가량 지났을 때였다. 조간신문을 펼쳐보니 머리기사로 최 총리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최 총리가 어제 회의 석상에서 “부인조심, 비서조심, 자녀조심”이라는 말로 공직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켰다는 것이었다. 날이 갈수록 공직사회가 혼탁하게 변해가자 최 총리가 이 세 마디로 공직자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신군부와 첨예한 대립을 했던 모습도 생생하게 소개됐다.
장관시절 남긴 최 전 대통령의 3가지 외교 업적
1979년 12월12일 밤, 삼청동 공관에서는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체포 서명문제와 관련하여 최규하 대통령과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 세력 사이에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신군부 세력이 정승화의 체포 동의서에 서명을 해달라고 위협했으나 최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을 불러오라”는 말로 맞섰다.
신군부는 어쩔 수 없이 12월13일 새벽 4시45분에 노재현 국방부 장관을 삼청동 공관으로 오게 했다. 그런데도 최 대통령은 즉시 서명하지 않았고 그 자리에 배석한 신현확 국무총리와 이희성 중앙정보부장서리, 최광수 비서실장 등에게 동건의 서류를 돌리고 자신은 일시를 적어 새벽5시에 재가했다는 것이다.
최 전 대통령은 ‘최주사’로 불리기도 했다.
1980년 4월12일, 청와대 경내에서 최 대통령이 권 비서관(저자)에게 물었다. “권군, 국민들이 나를 뭐라고 하나.” 머뭇거리던 권 비서관 입에서 “모두들 각하를 최 주사라고 부릅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당시 국민들은 최 전 대통령을 지나치게 신중하고 우유부단해 6급 공무원 정도 밖에 안되는 것 아니냐는 의미로 ‘최 주사’라고 불렀다. 평소 온화하기 그지없던 최 대통령은 “뭐야, 최 주사?”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경호 문제’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경내를 돌면서 권 비서관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바쁠텐데 경호실장은 그만 가서 일 보세요” “……” 경호실장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이런 일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최 대통령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박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헌법에 따라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래서 항상 “나같은 사람에게 누가 총을 겨누겠는가”라며 경호를 귀찮게 생각했다.
최 대통령이 외교부장관 시절, 외교사에 남긴 3가지 뛰어난 업적도 소개됐다.
1968년에는 북한 공작원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침투기도 사건과 푸에블로호 납북사건이 있었다. 미국은 푸에블로호 납북사건에만 집중했고 한국이 이에 반발해 보복공격을 추진하자 한미간 회담이 열렸다. 서울 타워호텔에서 최규하 외무부 장관과 밴스 특사간 철야회담이 열렸다. 최 장관은 20여잔의 커피를 마시고 여섯 차례나 재떨이를 교체하면서 뚝심과 끈기로 회담을 이끌었고 1억 달러 규모의 군사 원조를 이끌어냈다.
1968년 6월28일 핵확산 금지조약 가입문제를 놓고 한미 회담이 열렸다. ‘백사’라는 별명의 포터 대사는 “한국 정부가 핵확산금지조약 가입을 질질 끌다가 불쾌한 그룹(Unpleasant Group)에 끼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한국을 무시하는 태도로 말하자, 최 장관은 “귀하가 가장 맹방인 한국도 설득시키지 못하면서 무슨 대한 외교를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맞받아쳤다. 이 회담으로 ‘한미 국방각료 연례회의’가 성사됐다.
최 대통령은 1973~1975년까지 대통령 외교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남북대화와 오일쇼크 대처를 주도했다. 최 보좌관은 사우디 국왕을 만나 “한국 노동자들이 사우디의 발전을 위해 밤을 새워가며 횃불을 밝혀 놓고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석유가 없어서 난리가 났습니다. 국왕께서 선처해 주십시오”라고 말했고, 비교적 만족할만한 수준의 원유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최 전 대통령의 선행 사례도 소개됐다. 소아마비 시계 수리공에게 사랑의 집을 마련해 준 이야기, 독립군 후손 집안에 금일봉을 전달한 일화 등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권 전 대사는 한마디 거들었다.
청렴한 삶, 선행사례, 부부애 등 최 전 대통령 인간적 면모 눈길
최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기자들에게 일절 알리지 않아서 선행이 신문에 보도된 적은 없었다. 혹자들은 나에게 “최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에 좋은 일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묻는데 그럴 때면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최 대통령은 1년도 안되는 재임기간에 5년 임기의 어느 대통령보다 더 많은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또 최 전 대통령이 즐겨피던 담배가 ‘한산도’라는 것, 최 전 대통령 부부의 청렴결백한 삶의 자취와 상세한 선행사례들, 깊은 부부애 등을 소개하고 있다.
선태규 기자 august@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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