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뉴시스]](/news/photo/202101/440421_357395_2914.jpg)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북한인권법’ 폐지를 향후 과제에 포함시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북한 인권단체에선 정부와 여당이 지난해 12월 통과시킨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이어 ‘북한인권법’ 폐지를 공론화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도 나온다. 북한인권법은 2016년 10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후에도 유명무실한 상태다.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에 관해 날로 목소리를 높이고 북한인권법이 사문화된 상태임에도 인권위가 북한인권법 활성화가 아닌 되려 북한인권법 폐지를 계획한 이유가 궁금하다. 일요서울이 이를 추적해봤다.
-인권위 관계자 “北인권법 폐지 인권위 계획 아니다” 되풀이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5일 인권위 홈페이지에 게재한 인권증진행동전략(2021~2025) 보고서에서 유엔인권이사회 UPR(보편적 정례인권검토) ‘주요 권고 향후 과제’ 중 하나로 ‘북한인권법 폐지’를 꼽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심의된 유엔 인권이사회의 한국 인권 UPR에서 북한인권법을 폐지하라고 권고했다는 것이다. 보고서엔 한국 정부가 유엔이 북한인권법을 폐지하라는 권고에도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며 북한인권법 폐지를 ‘향후 과제’로 명시했다.
보고서는 또 “국제인권규범의 국내 이행을 위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며 “국제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는 인권국가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북한인권 활동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보고서는 “최근 (서해상 해수부)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 등이 사회적 분노를 야기했다”면서 “북한 인권 개선 활동이 북한 주민 인권의 보호·증진 목적이 아닌 북한정권에 대한 공격으로 활용될 우려도 제기된다”고 명시했다. 국제인권규범의 국내 이행을 위해 인권위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그 일환으로 북한인권법 폐지가 포함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말 그럴까?
하지만 인권위의 보고서 내용과 달리 2017년 한국에 대한 UPR에서 북한인권법 폐지를 요구한 국가는 인권탄압 당사국인 북한뿐이었다. 당시 심의에 유엔 회원국 99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95개국이 218개의 권고를 내놓았다. 99개국 중 북한만 유일하게 북한인권법이 ‘반(反)인권적’이라며 폐지를 권고했다. 그런데도 인권위는 보고서에 북한인권법에 대한 북한의 일방적 반발을 유엔차원 권고인 양 밝힌 것이다.
국가인권위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언론 보도 이후 인권증진행동전략 보고서의 북한인권법 폐지와 관련된 조항은 삭제했다”고 밝혔다. 조항 삭제가 향후 북한인권법 폐지를 다시 검토사항으로 두는 건지에 대해선 “애초 (북한인권법 폐지는)인권위의 계획이 아니었다. UPR의 여러 권고 사안 중 하나였다”며 “북한인권법 폐지가 인권위의 공식입장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인권위의 계획이 아님에도 공식적 문서에 담긴 이유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담당자는 “인권위의 계획이 아니다”라는 입장만 재차 반복했다.
- 北인권단체, 北인권법 이행 촉구에도 ‘유명무실(有名無實)’
북한인권단체들은 정부에 대한 인권위의 북한인권법 폐지 권고가 지난해 12월 통과시킨 대북전단금지법에 이은 또 하나의 ‘북한눈치보기’식 계획의 일환이 아닐까 우려하는 상황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이 거의 실종된데 따른 것이기도 했다.
문 정부 출범 이후 북한주민의 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하여 만들어진 북한인권법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위해 만들어진 북한인권재단은 정부·여당이 이사 추천 절차를 미루며 여전히 출범하지 못한 상태다. 재단기금도 2018년 108억 원에서 지난해 8억 원으로 삭감됐다. 또한 북한인권의 국제적 협력을 위한 북한인권대사의 자리도 2017년 이후 공백상태다. 지난해 정부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을 비롯해 파견했던 검사의 자리를 없애고 일반직 공무원으로 대체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기관의 몸집을 축소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편 북한인권 상황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사)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발간한 ‘2019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생명권과 피의자‧구금자 권리 침해 사례가 이전보다 증가했다. 백서에 따르면 생명권에 대한 침해는 2018년 대비 2.8%, 불법구금은 5.4% 각각 증가했다. 이는 북한이 정권 안정을 위해 사회질서와 치안 유지를 강화해 처벌 강도를 높였기 때문이라고 단체는 분석했다.
- 정부, 北인권법 파행 이어 지난해 유엔 결의안 ‘불참’
2016년 북한인권법이 시행되고 외교부는 북인권국제협대사에 이정훈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를 추천했지만 2017년 정부가 바뀐 이후 2년 이상 임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18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발표한 미국무부도 한국 정부가 북한인권증진의 국제협력을 담당하는 자리가 공석인 점을 지적할 정도다. 북한인권법 제9조에 따르면 대사의 임무자격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해야 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임명 가능함에도 아직까지 명확한 이유 없이 임명이 밀어지고 있다. 인적교류정보교환등과 관련하여 국제기구 국제단체 및 외국 정부 등과 협력하며 북한인권증진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외교부에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를 두도록 되어있다.
북한인권재단 설립도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다. 통일부는 2016년 서울 마포구에 재단 사무실을 설립했다. 그러나 국회의 이사진 추천 갈등으로 인해서 제대로 구성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하여 21개월간 파행적으로 외형만 유지했다. 총 12억원 규모의 임대료를 사용, 추가적인 재정 손실을 막기 위해 결국 계약을 종료하고 철수를 결정하였다. 북한인권법 제10조에는 북한연구재단의 설립에 관한 법률이 명시돼있다. 1항에 의하면 정부는 북한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남북인권대화와 인도적 지원 등 북한인권 증진과 관련된 연구와 정책개발 등을 수행하기 위하여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한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정부‧여당에서는 이사진 추천의 논의도 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재단에 대한 예산을 삭감했다.
정부는 통일부 산하에 북한인권기록센터를 설립했다. 지성호 의원에 따르면 2017~2018년 북한인권 침해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고도 이를 3급 기밀로 분류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정부 눈치를 보는데 급급해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러한 지적이 나오자 2019년 결과 보고서는 공개용과 비공개용을 나눠 펴낼 방침으로 대응했다.
한편 정부는 재작년과 지난해 북한 인권결의안의 공동 제안국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외교부는 “북한 주민들의 실질적인 인권 증진에는 변화가 없으며 한반도 평화 번영을 통한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소명했다. 북한의 인권침해 규탄과 책임자 처벌 등이 담긴 북한인권결의안은 지난 2003년 유엔에서 처음 채택됐다. 유엔인권이사회는 지난해 6월22일(현지시간) 제네바에서 열린 제43차 회의에서 결의안을 채택했는데, 정작 직접적인 당사국인 대한민국 정부가 포기한 것이다.
인권위가 추후 조항을 삭제하긴 했지만 정부·여당의 대북전단금지법 통과 이후 언급된 북한인권법폐지 계획은 우려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재호 기자 sunseoul@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