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반 MB연대’ 주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진보진영의 ‘헤쳐모여’를 주문했다. 막강한 여권 앞에 민주당, 민주노동당, 시민단체 등이 결합하는 ‘반 MB연대’를 주문한 것이다. 야권은 일단 현 정권을 ‘공공의 적’으로 표방하며 뭉치는 모양새다. 공조 범위도 넓어지고, 분위기도 급속도로 무르익는 모습이다. 조금 이르지만, 선거 공조까지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야권 공조의 한계론도 나오고 있다. 모인 멤버들의 지향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공공의 적이 더 이상 적이 아닐 때 ‘자중지란’에 빠질 수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제안한 소위 ‘민주연합’의 추진 상황과 실현 가능성을 짚어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가 의도적으로 파탄내려고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 정책도 부시 정부의 실패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김 전 대통령은 “현 정부 출범 이후의 상황은 10년 전의 시대로 전체 흐름이 역전되는 과정”이라며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민주주의 위기, 경제위기와 서민고통, 남북관계 문제 등 3가지”라고 지적했다. 김 전 대통령은 특히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시민사회단체 등과 손을 잡고 광범위한 민주연합을 결성해 역주행을 저지하는 투쟁을 한다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민주연합체’의 결성을 주문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전면적인 대정부 비판은 방북을 마친 민노당 의원들이 김 전 대통령을 대면한 자리에서 쏟아졌다.
이 발언들은 야권에 즉각적인 동조 움직임을 불러 일으켰다.
야권 연대 움직임 가속화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다음 날인 28일 민주노총을 방문해 적극적인 연대를 제의했고, 민주노총도 ‘반 이명박 전선’에 함께 나서자고 화답했다. 최재성 대변인은 이와 관련, “상시적 논의 틀을 만들어 공동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30일에는 민주당 정세균, 민노당 강기갑,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가 모여 ‘남북관계 위기 타개를 위한 비상대책회의’를 개최했다. ‘남북관계’라는 현안에 야3당이 뜻을 모은 것이다.
야권 공조범위는 확대됐다. 4일 야3당을 포함해 제야 정당과 각계 시민단체 등이 합류한 것이다. 민주당, 민노당 등과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전국 400여 시민단체가 이날 ‘민생민주국민회의’라는 이름으로 비상시국회의를 가졌다. 이들은 “현 정권의 민생파탄에 맞서겠다”며 공동 대응을 선언했다.
야권의 발빠른 움직임에도 불구, 연대 결속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향후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최초 주문자인 김 전 대통령의 추진력이 약하고, 각 당도 내부문제에 시달리고 있고, 결정적으로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 등에 따르면 민주당의 경우 ‘김민석 구속 거부투쟁’으로 결정적 타격을 입은 당 지도부가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반MB 연대’를 활용하고 있다. 민노당, 창조한국당도 대표가 선거재판에 연루돼 있고, 국회의원 뺏지가 떨어질 개연성이 높다.
시민단체 등도 사정정국과 무관치 않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 등이 대표적 사례다. 정치권 관계자는 “사정정국이 4월에서 8월까지는 끝날 것으로 보는데, 그 때가 되면 야권 연대는 뿔뿔히 흩어질 것”이라며 “현 시민단체 대부분 노무현 정부시절에 만들어진 것들로 수사 타겟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당 관계자는 “반MB 연대가 힘을 얻으려면 김 전 대통령이 밀고 나가야 하는데, 당내에 그런 힘이 없다”면서 “그 사실은 DJ 비자금 사건이 터졌을 때 이미 증명됐다”고 밝혔다.
야권 공조, 불투명
민노당이나 창조한국당도 연대에 다소 소극적인 반응이다.
민노당 관계자는 “남북관계와 경제문제를 두고 민주당과 공동기구를 구성키로 했고, 남북문제의 경우 법안 발의 등 실무작업이 진행 중”이라며 “그러나 그 이상 논의되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창조한국당 관계자는 “민주연합에 참여하고 있지만 투쟁대열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사안별로 공조하는 것”이라며 “일상적으로 공조할 사안이 있으면 하는 정도의 수준”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지도부 측도 “야권 연대는 쌀 직불금, 법안, 예산 등 현안별로 공조하는 수준이고, 현안별 공조 이상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반MB 연대’는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지원 의원이 말했듯이 ‘국가 원로이자 현직 대통령으로서 충정으로 갖고 한 말씀’ 정도로 보인다. 또 김 전 대통령 한 측근의 “김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평화에 관심이 많은 데 요즘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전언처럼, 그런 고충이 표출된 일시적 현상 정도로 해석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선거 공조’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지만, 좀 이르고 다소 불투명해 보인다. 그러나 현재 여권이 강세를 보이는만큼 ‘반MB 연대’를 표방한 야권의 결속 움직임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선태규 기자 august@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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