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강경파 ‘박근혜 역할론’ 포기 확산

한나라당이 이명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현재권력과 박근혜 전 대표를 위시한 미래권력을 두고 권력 다툼이 한창이다. 청와대에서는 ‘계파는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울림이 없다. ‘이재오 복귀론’이나 ‘박근혜 역할론’을 두고 벌어지는 친박, 중립에 친이 진영의 원로파와 소장파가 맞붙딪히는 상황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은 친이 강경파의 입장과 맞닿아 있는 듯 하다. ‘박근혜 없이 친정 체제 강화’하자는 것이다. 총리직이나 대북 특사 등 ‘박근혜 역할론’이 탄력을 받지 못하는 배경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박 전 대표 진영은 이 대통령과 무관한 ‘개헌론’을 통해 세 불리기를 할 태세다. 공교롭게도 개헌의 화두는 중립 성향의 홍준표 원내대표가 불을 지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 1일 한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에서 친이, 친박 계파 갈등에 쓴소리를 보내며 “헌법이 어떻게 개정되느냐에 따라서 대권 구도, 내각 통치 구도가 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경선을 미리 하는 듯 한 모습은 보기가 않좋다”고 양계파를 비판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개헌도 될 것이고 정치구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느 한 진영에 기대 가지고 다시 국회의원을 더 하겠다는 것은 국회 의원 답지 않은 생각”이라며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할 것을 주장했다. 홍 원내 대표는 차기 대권 구도의 핵은 계파가 아닌 정치권에서 권력 구조를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른 결과에 달려 있다는 주장이다.
이회창 대권 노림수 박근혜 ‘끌어안기’
당 일각에서는 갑작스럽게 홍 원내대표가 소강 상태를 보여온 개헌론 주장을 한 배경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 개헌론이 부상하는 것을 내심 바라고 있는 세력은 외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권력구조 개편이건 정계개편은 집권 여당에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화두다. 특히 개헌론의 경우 친박, 친이 양 진영이 첨예하게 부딪힐 수 있는 현안으로 자칫 분당론이 대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야권발 정계개편은 여권발 정계개편에 비하면 파급효과가 적다는 점 역시 한몫하고 있다. 그래서 홍 원내대표의 개헌론 언급에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는 사람이 바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다.
한나라당이 개헌론을 통해 사분오열되고 분당까지 이른다면 이 총재로서는 차기 대권에 더할 나위없는 호재로 작용할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4년 중임제’를 주장하고 있는 박 전 대표가 60~70명 되는 친박 인사들을 이끌고 탈당할 경우 보수 성향인 이 전 총재는 연대를 제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5년 단임제’를 선호하는 이 총재는 대권 4수 도전 욕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게 주변 측근들의 평이다. 한 마디로 DJ 학습효과에 따른 대권욕을 버리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치 현실은 이 전 총재에게 녹록치 않다. 충청권 맹주로 이 총재가 자리를 잡은 모습이지만 이인제, 심대평 의원이 여전히 건재하고 한나라당의 충청권 지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35년생인 이 총재의 나이 역시 걸림돌이다. 차기 대권이 있는 4년 후에는 77세에 이른다. 4년 중임제로 되건 현행 유지가 된다 해도 80세 넘게 대통령직을 유지해야 한다.
박 전 대표 역시 정치적 상황이 쉽지 않다. 내년 2월 취임 1주년을 맞는 이 대통령의 조각에 친박 진영이 ‘왕따’를 당할 공산이 높다는 게 친이, 친박의 공통된 견해다. 이 대통령이 ‘코드 인사’에다 친정 체제 강화쪽으로 집착할 공산이 높다는 관측이다. 최근 ‘이재오 조기 복귀론’이 탄력 받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상황은 내년부터 시작될 개헌론 논의와 맞물려 정치권은 복잡한 대권 방정식에 빠질 공산이 높다. 두 인사 모두 대통령제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이원집정부제, 즉 분권형 대통령제에 합의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외치를 담당하는 대통령과 내치를 담당하는 총리가 권력을 분점 하는 프랑식 권력구조 형태로 ‘딜’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여기에 박 전 대표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인물이 있다.
박-창 연대 오 시장 연대 ‘촉각’
바로 오세훈 서울 시장이다. 당 일각에서는 오 시장이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의원에게 ‘충성 맹세’를 통해 차기 서울시장을 보장받았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오 시장뿐만 아니라 서울시 공무원들은 ‘무소속이나 다름없다’며 당.청으로부터 홀대를 사석에서 토로하고 있다. 친이 진영에서 차기 서울시장직을 노리는 인사들 때문에 오 시장이 경선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괴담도 나오고 있다.
이에 오 시장 역시 박-창 연대에 참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오 시장은 전제 조건으로 차기 서울시장직 보장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단 정치권에서는 ‘경제 위기’가 변수로 작용할 공산이 높다고 전제하면서도 최소한 개헌론 논쟁은 내년 7~8월에는 시작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벌써부터 정치권은 개헌을 연결고리로 박-창-오 연대가 이뤄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