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는 없다 33화
빙의는 없다 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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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10-17 14:50
  • 승인 2011.10.17 14:50
  • 호수 911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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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들어가지 못하는 ‘금돈禁豚의 땅’

“법사님, 아주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같이 가시죠? 산신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하루는 모 신문에서 미스터리 특급 코너를 연재하고 있던 K기자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K기자의 말을 정리하면 살아 있는 돼지는 들어가지 못하는 금돈의 땅이 있다고 한다.

돼지를 끌고 일정한 지역으로 들어서면 돼지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죽어 가던 돼지가 그 지역을 벗어나면 언제 그랬나 싶게 정상으로 회복한다는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보이는 현장은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에서 춘천시 북산면에 걸쳐 있는 가리산이다.

‘가리’는 곡식 따위를 쌓아둔 큰 더미를 뜻하는 것으로, 산봉우리가 노적가리처럼 생겼기 때문에 가리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 골짜기에 가면 돼지마다 멱 따는 소리로 ‘발작’

금돈의 땅을 좀 더 압축하면 가리산 산신당 근처. 가리산 자락 주민들은 매년 음력 3월 3일이면 산신제를 올린다. 산신제에는 어김없이 돼지가 제물로 올라가는데, 그 돼지는 산신당 근처에 가기도 전에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절골이라는 골짜기 근처에 가면 돼지가 사색이 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올라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억지로 끌고 올라가면 급기야 입에 흰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이렇게 죽은 돼지는 제물로 올릴 수 없다.

산신당을 관리하고 있는 박모씨는 “예로부터 돼지가 절골을 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전해 왔다. 몇 해 전 TV에서 직접 실험을 해본 결과 사실로 확인됐다”고 말한다.

당시 TV 촬영 팀은 산신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1주일을 잠복했으나 실패하자 산신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러자 방송장비를 넣은 배낭이 갑자기 찢어지면서 필름 등이 쏟아져 내렸고, 카메라는 작동을 멈춰 버렸다. 깜작 놀란 촬영 팀은 산신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돼지를 바치기로 하고 이 같은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2002년 2월 K기자와 함께 돼지를 동원, 직접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먼저 돼지를 차량에 싣고 절골로 향했다. 절골이 가까워지자 가만히 누워 있던 돼지가 발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뭔가 공포에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이쯤이겠구나 싶은 생각에 돼지를 끌어내려 걸리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돼지는 한 발자국도 내디디려 하지 않았다. 네 명의 장정이 달라붙어 끌어 보았으나 돼지는 완강하게 버텼다. 돼지 꼬리를 들고 밀면 순순히 간다는 이장님의 조언에 따라 그대로 해보았으나 역시 허사였다.

강제로 끌고 가자 돼지는 아예 누워 버렸다. 돼지는 절골이 가까워지자 괴성을 지르며 거세게 몸부림쳤다. 결국 돼지는 절골을 넘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산신이 살생 원치 않아

그런데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 것인가. 산신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만약 산신이 존재한다면 산신이 돼지를 싫어하는 것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박 씨에 따르면 산신이 자신의 영역에서 살생을 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제물로 쓸 돼지를 산신당 근처에서 살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산신제에 올릴 돼지를 마을에서 처리해 올라갈 경우에는 아무 일이 없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산신당 근처에서는 동물은 물론 사람도 죽지 않는다고 한다. 6·25 한국전쟁 때도 이곳에서는 한 명도 죽지 않았다고 한다. 박 씨는 “절골에서는 송장 하나 치우지 못했다. 미군은 물론 중공군도 한 명도 죽지 않았다. 극심한 부상을 입어도 죽지 않고 있다가 이상하게도 절골을 벗어나면 죽었다”고 말한다. 당시 가리산은 전쟁의 격전지였다. 1951년 3월 미 제9군단과 중공군 제13사단, 제6사단이 충돌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주민들의 말대로 이곳 산신께서는 살생을 싫어하고 청정함을 좋아하신다. 돼지가 절골을 넘지 못하는 것은 산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산신이 데리고 있는 호랑이가 길을 막기 때문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돼지가 가까이 가자 산신 호랑이가 길목까지 나와 있었다. 물론 호랑이의 영혼이었다. 인간은 느끼지 못하지만 돼지는 본능적으로 호랑이의 기운을 느끼고 사색이 되었던 것이다.

가리산의 돼지 실험은 고PD에 의해 촬영되어 인터넷에 공개되었다. 그런데 그 방송을 본 한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라했다. 뿐만 아니라 필자가 말한 내용을 흉내내어 무당을 동원해 ‘가리산에 호랑이 귀신이 있다. 그래서 돼지가 들어오는 것을 방해한다’는 내용을 담은 방송을 내보내 네티즌들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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