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봉산 삼부인의 전설

팔봉산의 삼부인
강원도 홍천의 마녀바위를 찾는 과정에서 무당들을 통해 흥미로운 사실을 접하게 됐다.
‘어떤 바위가 있는데 그 밑으로 물이 흐르고,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그런데 한 해에 10여 명이 물에 빠져 죽는다. 바위에 제를 올리면 물에 빠져 죽는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줄어든다.’
마녀바위 찾기에 혈안이 된 우리 일행은 그곳이 마녀바위가 아닌가 싶어 허겁지겁 달려갔다.
가서 보니 그곳은 우리가 찾는 마녀바위가 아니었다. 강원도 홍천에서 유명한 팔봉산이었고, 그 밑으로 피서객들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에서 해마다 사고가 잇따르는 것은 사실이었다.
팔봉산 정상에는 기원을 알 수 없는 사당이 있는데 이곳에 제를 소홀히 했을 때는 어김없이 경고가 내려왔고, 정성을 들여 제를 올렸을 때는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삼부인의 신벌은 어김없이 사고로 나타난다. 팔봉산 유원지는 익사 사고로 악명이 높다. 이곳에서는 한 해 20여 명 가량이 익사했다.
그런데 1993년 그들을 달래 주는 제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4명(2001년)정도로 줄었다.
삼부인은 어린이를 데려가거나 노인들을 산에서 헤매게 하는 식으로도 자신을 과시했다. 팔봉리 노인회장 이모씨의 조카딸 이모(50세) 씨도 세 살 때 산에서 사라져 마을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이씨는 이렇게 말한다.
“저녁때 애가 갑자기 없어졌어요. 해는 지고, 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난감했죠. 온 동네 주민들이 밤이 새도록 찾아봤지만 허사였어요. 그런데 다음날 팔봉산에서 발견됐어요.”
세 살이던 조카딸은 상처 하나 없는 멀쩡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밤이면 기온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산골짜기에서 얼어 죽지 않은 것이 참 신기한 일이었다.
세 살짜리 어린이는 풀로 만들어진 보금자리에서 밤새 따뜻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 후로 마을 주민들은 삼부인 제사에 더욱 정성을 들였다고 한다.
양반가 부인들의 한풀이
삼부인당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4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삼부인당은 팔봉산의 마지막 봉우리 8봉에 있었다. 지금도 산 정상에서는 기왓장을 발견할 수 있다. 8봉에 있던 삼부인당이 언제 2봉으로 옮겨졌는지는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세인들의 기억에서 잊혀질 즈음, 삼부인당의 당주를 맡고 있는 조모(69세·여) 씨에 의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조씨는 39살 때 논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산에 집을 지어라”는 삼부인의 명령을 들었다. 그녀는 “아니, 산에 어떻게 집을 지어요?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지요”라고 말한다.
삼부인의 명령을 거부한 조 씨는 그 길로 쓰러졌고, 깨어나 보니 사흘이나 지나 있었다. 산에 신당이 완성될 때까지 그녀는 피를 토하기도 하고,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마을의 힘을 모아 삼부인당을 재건하고, 칠성당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모셔진 삼부인이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조 씨에 따르면 이씨, 홍씨, 김씨 등 세 부인이 모셔졌다고 한다. 어느 시대 누구인지에 대한 기록도 전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400년 동안이나 이어져 오는 당굿이 문화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삼부인당을 영시해 보니 삼부인은 양반가의 젊은 부인들이었다. 이들은 임진왜란 때 왜군들의 손에 살해되었다. 그 한을 풀어주기 위해 당시 사람들이 이곳에 신당을 지어 모시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의 기록을 한 번 뒤져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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