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이 죽어서 신 노릇을?
신 노릇에 익숙한 종교령인간을 괴롭히는 악령들은 전생에 맺은 원한관계로 인한 경우가 많다. 원한령만큼이나 지독한 것이 종교령이다. 살아생전에 종교에 심취했던 사람이 죽어서도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들 종교령들은 때로는 신 노릇을 하기도 한다. 종교령들은 생전에 쌓아 온 공력이 있기 때문에 그 힘 또한 만만치 않다. 죽어서도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은 놈들은 더욱 강한 힘과 신통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인간에게 사고를 저지르는 등 못된 짓도 서슴지 않는다.
“제발 마구니들을 없애 주이소”
종교령에 온 집안이 풍비박산난 경우도 적지 않다. 2003년 6월 초 부산 연산동에서 김모 씨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 왔다.
“내 몸에 수 천이 넘는 마구니들이 들어와 있십니더. 제발 마구니들을 없애 주이소.”
말을 듣는 척하면서 신령의 능력 가운데 하나인 영시 능력을 발휘하기로 했다. 상대의 말에 대꾸를 할 정도의 엷은 의식력만 남기고, 트랜스 상태에 들어갔다. 못된 종교령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직접 부산으로 가야만 해결될 것 같았다.
며칠 뒤 김씨의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온 집안에 핏빛 고춧가루와 팥이 뿌려져 있었고, 복숭아 나뭇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2층 양옥은 부적들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털모자를 뒤집어쓴 김씨의 모습도 가관이었다. 털모자를 벗겨 보니 자석, 가위, 복숭아 씨, 부적 등 온갖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왜 이렇게 해 놓았습니까?”
“귀신이 집에 못 들어오게 할라꼬 그랬다 아입니꺼.”
그녀는 귀신을 쫓는다고 알려진 물건들을 이용해 나름대로 방어책을 마련한 것이었다.
“그럼, 지금 이 집에 귀신이 없습니까?”
“분명히 있십니더.”
“그럼 이런 것들이 효험이 없는 것 아닙니까?”
김씨에게 목욕을 시키고, 가족들에게 집안을 정리하도록 했다. 본격적인 싸움을 위해 주변 정리가 필요했다. 귀신들은 음습하고 난잡한 것을 더욱 좋아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조상령 불러들여 악령 내쫓아
집안이 깨끗해지자 본격적인 퇴마의식을 진행했다. 먼저 항마염불을 외우며 김씨의 몸에 자리한 종교령에게 일격을 날렸다. 승복을 입고 삭발한 악령들이 즉시 공격해 왔다. 날카로운 공격으로 볼 때 절집에서 오랫동안 수행한 흔적이 역력했다.
지루한 공방전만 계속될 것 같았다. 응원군이 필요했다. 김씨 집안에서 힘 있는 조상령들을 불러들여 힘을 합쳐 악령을 김씨의 몸에서 분리해 내기로 했다. 후손들이 걱정스러웠지만 어찌할 수 없었던 조상령들도 기회를 만났다 싶었는지 힘을 모아 주어 악령을 퇴치하는 데 성공했다.
악령 가운데 일부는 김씨의 몸에서 튕겨져 나가 벽장, 천장 등으로 숨어들었다. 숨은 놈들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다시 날뛸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뒤 놈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불시에 습격, 법망으로 묶어 지옥으로 보내 버렸다.
지옥으로 떨어진 악령들도 생전에는 신실한 믿음을 갖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다 보니 죽어서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신보다는 남을 더 행복하게 해준다는 마음가짐으로 종교생활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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