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사김영기의 빙의는 없다
퇴마사김영기의 빙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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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06-07 14:31
  • 승인 2011.06.07 14:31
  • 호수 892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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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은 왜 전부 여자일까?
여자 귀신이 더 무섭다

사방을 짓누르는 거대한 어둠. 철문이 힘겹게 닫히는 소리가 서서히 들려 온다.
‘끼이이이~ 끼익~ 끼이익~ 쿵!’

고막을 불쾌하게 자극하는 기분 나쁜 쇳소리, 굳게 닫힌 교문. 큰비가 한 차례 쏟아진 듯, 운동장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패여 있다. 물웅덩이 위에 떨어지는 빗물이 작은 파문을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다. 느닷없이 누군가의 맨발이 화면으로 들어와 그 물웅덩이를 덥석 밟고 선다. 치마를 입은 하얀 맨발. 어둠 속에 스산하게 서 있는 학교 건물. 군데군데 설치된 보안등만이 칠흑같이 어두운 교정을 밝힐 뿐이다. 누군가의 시선이 불켜진 1층 교무실을 주목한다. 천천히 학교 건물을 향해 나아간다.

물 괴인 운동장을 저벅저벅 걷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박기숙의 모습을 누군가 보고 있다. 순간 이상한 기운을 느낀 듯 수화기를 내려놓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는 박기숙.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지는 박기숙의 눈. 안경에 흰 반팔 교복차림의 소녀가 언뜻 비친다. 입술이 달싹거리는 박기숙. ‘진주’라고 말하다 갑자기 목을 감싸쥔다. 바닥에 떨어지는 앨범.

목을 옥죄는 올가미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박기숙. 자신의 손목을 보며 더욱 놀란다. 마치 자살하기 위해 자신의 팔목을 예리한 칼로 그은 듯 어느 새 동맥이 끊어져 있다. 눈이 커지다 못해 이제 아예 허옇게 뒤집어지는 박기숙. 어느 순간, 손에 힘이 빠져 툭 떨어져 내리고…. 손목에서 쏟아져 나온 붉은 피가 졸업앨범의 흑백사진 위로 후드득 떨어져 내린다(시나리오 인용).

박기형 감독의 데뷔작인 영화 ‘여고괴담’의 첫 장면이다.
‘여고괴담’이 인기몰이를 하고 4편까지 나오면서 남학생들 사이에는 “왜 ‘여고괴담’은 있는데, ‘남고괴담’은 없는가”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왜 귀신은 다 여자들일까?

귀신들은 살아 있을 때처럼 행동

전설 속에서도 왜 하필 여자 귀신은 한결같이 젊고 멋진 선비를 노리는 것일까? 왜 여자 귀신들은 ‘사또’를 괴롭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그 모습은 한결같이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 헤친 모습을 하고 있을까? 실제로 그럴까?

우리나라에서는 여자, 특히 나이 어린 여자는 가장 낮은 지위에 있으며, 억압받는 구성원이 흔히 귀신으로 표현된다는 계급론적인 주장이 있다. 여성들은 반(反)세계의 모든 부정적인 의미를 짊어지고, 세계를 대표하는 ‘남성’에 의해 추악한 귀신의 모습을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몽골의 귀신도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치렁치렁한 몽골 전통의상을 입고 머리를 풀어 헤친 사악한 마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숄르마스’라 불리는 이 여자 귀신은 지옥 악마 같은 성격을 지녔다.)

필자는 계급론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말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다. ‘여자 귀신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에 대해 그렇게 풀이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어쨌든 필자는 귀신 그 자체에 대해서만 알 뿐이다. 귀신의 상징적 의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귀신은 여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모습도 모두 머리를 풀어 헤친 소복 여인은 아니다. 남녀노소, 인간계와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일치한다. 일가족을 이루고 있는 경우도 많고,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행동한다.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계층의 귀신들이 존재한다. 그 모습도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이다. 학생이면 캐주얼 복장이나 교복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고, 과거에 죽은 사람이면 대부분 한복을 입고 있다. 귀신이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만 잘 살펴봐도 어느 시대 인물인지 알 수 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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