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을 믿습니까?

자연에도 영혼이 있다는데…
죽은 후에 영계로 가지 못하고 유계에서 떠도는 영혼을 귀신이라고 한다. 이들 귀신이 인간 가까이 있는 것은 인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세상에는 인간의 영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혼들 가운데는 인간령이 아닌 동물령이나 자연령도 적지 않다. 동물령이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 힘이 인간에게 피해를 줄 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령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인간령보다 훨씬 강력하다. 몇 해 전 경남 통영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안정면 안정국가공단 조성 공사장의 당산나무 귀신 얘기가 입에서 입으로 퍼진 적이 있었다. 얘기의 진원지는 공사장 한가운데 벌거숭이로 우뚝 솟은 달골산(해발 90m) 정상에 위치한 두 그루의 당산나무.
수령이 150여 년이나 되고 둘레가 2m 가량 되는 이 나무들에 손을 대려는 사람이 없었다.
“나무를 베려는 사람들의 꿈속에 매일 밤 귀신이 나타나 곤욕을 치르고 있다”, “공사 현장 인부들이 나무 베기를 꺼리는 바람에 현상금 200만~300만 원이 걸려 있다”, 심지어 “나무를 베려는 사람이 잠을 자다 갑자기 피를 토하며 죽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이 나무는 당산나무로, 160여 가구에 이르는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이자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동티’는 자연귀신의 장난질?
나무나 바위, 땅 등을 잘못 건드려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흔히 ‘동티났다’고 한다. 한자로는 ‘動土(동토)’라고 한다. 신을 상징하는 물체나 귀신이 머무는 물체를 훼손하거나 침범하는 경우 갑자기 질병에 걸리거나 죽게 되는 일이 있는데, 이것이 신벌을 받거나 사악한 악령의 침범으로 동티가 나는 것이다.
예로부터 동티를 예방하기 위해 그날의 일진을 잘 살펴서 손(損: 날짜에 따라 사방으로 옮겨 다니며 사람의 일을 방해하는 귀신)이 없는 방향으로 나무를 자르거나 땅을 파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또 묏자리를 쓰거나 이장을 할 때, 집을 수리할 때에는 먼저 산신이나 지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오늘날 큰일을 앞두고 고사를 지내거나 하는 것도 모두 동티를 방지하기 위한 전통에서 전해 오는 것들이다.
지난 1996년 11월 중순경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잇따르는 대형사고로 경남 남해의 조그마한 어촌 마을 미조가 몸살을 겪었다. 각종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만도 13명. 주민들은 이 마을에서 신성시했던 용머리에 도로를 내면서 사고가 줄을 잇고 있다고 주장했다. 용머리는 자연에 깃든 영적 에너지로 대표적인 자연령이라고 볼 수 있다.
용머리를 잘라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는 주민들의 주장을 미신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적지 않았다. 용머리 도로공사를 하기 한 달 전 마을의 80대 할머니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도로공사를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공사는 진행되었고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마을의 흉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첫 흉사는 11월 중순경 제주선적의 복어 어선이 사고를 당하면서 시작된다. 미조에서 일어난 이 사고로 두 명의 선원 중 한 명이 중태로 입원하기도 했다. 뒤이어 12월 초 남창호가 제주도 근해에서 좌초되어 두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남창호 사건으로 마을이 술렁이기 시작하던 그 즈음, 장어통발 어선 목화호가 제주 남방 해상에서 돌풍에 휩쓸려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목화호 선원 열 명은 모두 사망했고 그 중 여덟 구의 시신이 일본 해상에서 발견되어 싸늘한 주검으로 미조를 다시 찾았다. 목화호 실종사건의 악몽이 채 잊혀지기도 전에 경남 통영 해상에서 이 마을 선박 정진호가 갑자기 침몰되는 사건이 뒤따랐다. 11월 중순에는 자라목 공사의 현장소장 최모 씨가 사망했다. 최모 씨는 노래방 2층 계단에서 떨어져 목뼈가 부러져 사망했다.
서양에선 ‘자연령’을 요정이라 불러
서양에서는 자연령을 요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도나 명상을 할 때 자연령들의 장난에 속아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인간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오랫동안 기도를 하거나 그 상태를 염원하고 있으면 지상에 떠돌고 있던 자연령들이 그들에게 접근해 그들의 상념이 바라는 형상을 취하게 된다. 보통 인간들이 자신이 기도의 대상을 정해 놓고 기도를 하면 그 자연령들이 그들의 상념을 읽고서는 그들이 원하는 대상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이 자연령들은 수백만 년 동안이나 존재해 왔기 때문에 인간의 개인 생활을 비롯해 그 조상과 먼 과거까지도 속속들이 알고 있다. 자연령들은 인간의 욕망을 이용해 신인 양 행세하며 인간들을 속이는 것이다.
수행자들이 자연령이나 빙의령에 이용당하지 않는 길은 한 가지이다. 사물과 자신을 바로 보아야 한다. 신은 외부에 있지 않다. 외부에서 답을 찾고자 할 때 결국 공허함을 얻게 된다. 자기 자신이 바로 신이다.
개체의 신이 갖고 있는 신성을 닮아 가는 것이 수행이다. 인간은 수행을 통해 신을 닮아 가고, 신의 화신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바로 보고, 자기 성찰 기도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 최고의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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