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 문 앞까지 갔다 돌아와
임사체험자들은 자신이 저승까지 들어갔다가 돌아왔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저승은 들어가지 못하고 그 입구까지 갔다가 돌아올 뿐이다. 저승까지 들어갔다면 돌아올 수 없다. 그것이 영계의 법칙이므로.
서양에서는 임사체험에 대해 많은 연구가 있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의『죽는 순간(1962년)』, 의학박사이자 철학박사인 레이먼드 무디의『살짝 훔쳐본 사후의 세계(1975년)』가 임사체험에 대한 의학적인 연구의 효시이다.
스위스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미국 맨해튼 주립병원에서 일한 여성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1976년)의『사후생On Life After Death』은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2만여 근사近死체험자들의 사례를 탐구한 그가 다채로운 경험담을 유려한 문체로 생생하게 죽음에 대해 증언한다.
그는 죽음을 나비가 고치를 벗어 던지는 데 비유한다. “마치 봄에 겨울 코트를 벗는 것과 같다. 죽는 순간 다시 나비처럼 자유롭게 된다”며 ‘죽음을 통해 유일하게 잃어버리는 건 육체뿐’이라고 말한다.
엘리자베스의 저서에 자극받은 케네스 링은 국제임사연구협회를 설립하고,『임종 때 보는 죽음의 세계(1980년)』를 펴내기도 했다.
많은 연구자들이 정리한 임사체험은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전개된다.
육체와 분리되어 자신의 모습을 천장이나 옆에서 바라보고 있다. 저승사자 또는 천사의 인도에 따라, 혹은 스스로 컴컴한 터널을 지나간다. 끝도 없는 동굴처럼 느끼지만 순식간에 지난다. 터널을 지나면 밝은 빛이 나타난다. 그 빛이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영화 보듯이 보여 준다. 순간과 같은 시간 동안 자신의 인생에 대해 뼈아픈 반성을 하고 높은 가치관을 자각한다. 그리고 다시 살아난다.
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에서 들어왔던 황천길 전설과 비슷한 내용이다. 죽음 이후의 비밀을 담고 있어서 수천 년 동안 비밀에 부쳐졌다가 최근 공개된 티베트 불교의『사자의 서』도 표현만 다를 뿐 이야기 구조는 다르지 않다.
동양에서는 죽으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의 신화에서는 타르타로스라는 가혹한 무간지옥이 있고, 타르타로스의 주변을 흐르는 아케론 강에는 카론이라는 뱃사공이 있는데, 그에게 한 닢의 삯을 못 치르면 이 강을 건널 수 없다 하여 죽은 사람의 입에 동전을 한 개씩 넣어두어야 된다고 한다. 이 동전을 장만하지 못하고 객사를 했거나 가난하게 죽은 영혼들은 이 강을 건너지 못해서 영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며 흐느껴 우는 것이다.
사후 세계는 뇌의 착각?
사후 세계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사후 세계 경험자들 사이에 공통점이 없다고 주장한다. 나이나 국적, 종교, 민족 등에 상관없이 뭔가 공통된 묘사가 나와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즉 조상신, 염라대왕, 부처님, 예수님이라는 식으로 그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내용의 환상으로 한정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 임사체험에 대해 ‘뇌의 장난’이라고 몰아붙인다. 즉 교통사고나 병으로 죽음이 임박하면 뇌에 산소 공급이 줄어든다. 뇌 속이 저산소 상태가 되면 뇌는 뇌세포 간 신경전달 물질을 최대한 방출하여 산소가 덜 필요한 상태로 전환한다. 기존의 뇌활동은 정지되고, 해마·시상하부 등 인간진화 초기의 본능과 과거의 기억이 있는 변연계가 활성화된다. 이러한 근거를 뒷받침으로 현대과학은 ‘사후 세계는 없으며 뇌 속의 현상만이 있을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저산소 상태에서 뇌가 빚어내는 현상과 임사체험 시 느끼는 현상이 유사하다고 해서 두 상황이 동일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마치 유사한 외모와 성격, 목소리, 습관 등을 가진 쌍둥이가 있다고 할 때, 그 두 사람이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임사체험이 단지 뇌 속의 현상이라면 ‘뇌가 정지된 상태에서의 기억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엘리자베스의 조사 결과 교통사고로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은 죽은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모두 기억했다. 그녀는 또 선천성 시각 장애 환자들의 사례를 든다. 근사체험을 했던 장애자들은 자신을 치료한 의사의 얼굴형이나 옷, 넥타이 색깔 등을 얘기하며 과학이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그렇다고 해도 사후의 세계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후의 세계에 대해 누구나 100% 인정할 수 있도록 증명하는 일은 이 세상에 부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 한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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