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원 예비역 장군

6·25전쟁과 5·16혁명을 몸으로 겪은 참전 국인은 영원한 현역처럼 살아간다. 특히 군 요직을 거친 장성 출신은 노후에도 성우회 등을 통해 국가 안보를 걱정하는 장군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지난 1980년 중반 이후 산수 빼어난 경기도 가평균 외서면에서 은퇴생활을 하고 있는 박경원 예비역 장군(소장)이 늘 걱정하는 것도 국가관의 혼란과 국가안보의 불감증이다. 박 장군은 깨끗한 자연수에서 양식되는 송어와 함께 한가로운 노후를 보내는 것 같지만 실상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의 요체가 영원한 군인의 길이다.
‘장군은 은퇴가 없다’는 말이 사실이다. 박 장군에게서 현역이건 예비역이건 ‘장군은 장군이다’라는 말이 너무나 실감난다.
서울서 북한강 줄기를 따라 청평에 이르러 양수리 쪽으로 굽어 들면 화야산 기슭 널따란 초원에 ‘우미리 송어 양식장’ 간판이 보인다. 양어장 옆에는 당연히 송어 전문 음식점이 성업 중이다.
국가 안보 생각하면 늘 조마조마
왕년의 야전 장군 박경원 전 강원지사가 이곳에 터전을 잡고 전원생활을 누린다는 사실이 뜻밖이다.
박 장군은 바쁜 공직을 끝내고 군에서 전역한 후 지금까지 국방과 안보와 관련된 크고 작은 모임이나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는 물론 군사평론가협회장, 전우신문사 회장으로 안보여론을 이끌고 직접 칼럼도 집필하고 종종 특강도 한다.
한때 자신이 도정을 지휘했던 강원도청 초청으로 안보강연에 나가 나라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한다.
박 장군은 뜻밖에 시와 소설을 집필하는 문장 솜씨도 자랑한다. 김좌진 장군을 소재로 한 장편 소설 ‘묵시의 땅’, 김홍일 장군의 일생을 묘사한 ‘별’과 ‘오성장군 김홍일’ 등이 그의 작품이다.
이토록 열정과 집념의 우국지사형 장군이 송어양식장을 경영하고 있으니 다소 의외이다. 그러나 박 장군은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간직할 수 있는 천혜의 터를 잡아 이곳에 정착 했노라고 밝힌다.
“샘물 맛이 좋고 공기도 맑고 밭농사도 마음대로 지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여기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다보면 건강은 절로 지켜지니 더 이상 모자람이 없답니다.”
박 장군은 평생 몸에 익힌 대로 지금도 아침 6시 기상, 저녁 10시 취침의 규칙적인 생활습성을 철저하게 지킨다. 우미리 양어장 주변 2000평 대지는 찔레꽃, 해당화 등 무려 300종의 꽃밭이다. 박 장군이 매일 같이 지극정성으로 가꿔 새와 나비가 쉴 새 없이 날아든다. 인근 학생들도 자연학습관으로 여기고 자주 찾는다.
박 장군은 “꽃에는 우리 국민의 정서가 담겨 있어 이를 보존하는 마음으로 가꾼다”고 밝힌다.
지난 1984년 이곳에 터를 잡았으니 벌써 20여년 간 전원 속에서 생활하며 자신을 돌보고 나라를 생각하는 여유를 누리는 셈이다.
박 장군은 6·25전쟁 때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휴전 뒤에는 야전 지휘관으로 적의 침략기도를 분쇄했고 5·16 후에는 강원도지사로 국가 경제 건설에 매진했던 열혈 군인이었다. 1961년 강원지사를 맡았을 때는 ‘전쟁을 겪고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넘긴 목숨’이라 아무런 두려움 없이 열심히 노력하면 도민들이 따라 주리라 믿었다고 한다.
실제 관용차에 간단한 침식도구를 싣고 다니며 농민들 가까이로 밤낮없이 동분서주하니 1년 만에 모두가 따르고 믿어줬다. 그래서 스스로는 도백으로서 할 일도 다했노라고 자부한다.
그렇지만 경기도 가평으로 은퇴 이후 송어와 함께 세월을 보내면서도 걱정과 불안을 놓지 못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보고 느끼고 주변에서 듣는 세상 돌아가는 일이 노병을 편안하게 놔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특히 목숨을 걸고 지킨 나라이기에 남북 관계나 안보정세가 잘못돼 가는 꼴을 보면 ‘이러다가 크게 잘못되지 않을까’ 늘 조마조마하다는 소감이다.
박 장군은 최근 들어 국론 분열이 거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이라며 걱정이 태산인 것 같다고 한숨짓는다.
“도대체 북의 핵무기 등 대량 살상무기에 대해 그들이 동맹국이던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해 전 세계가 비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위정자들이 태평스럽게 보고 있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북의 핵무기가 무엇을 목적하고 누구를 겨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좌파가 뭘 믿고 행동할까
막연하게 평화를 부르짖는 이들은 북한도 우리 동포니까 그들의 핵을 두려워 할 것이 없다고 한다. 북핵은 미국과 일본을 겨냥하고 있으니 우리가 걱정할 것이 아니라 그 핵이야말로 우리민족의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박 장군은 이 같은 세태에 대해 ‘참으로 놀라운 환각’이라고 일깨워 준다. 북을 모르고 김정일의 실체를 너무나 모르는 철부지 소견이라고 탄식한다.
박 장군은 자신이 현역으로 물러난 후 멀리서 지켜본 오늘의 국정이 좌파적 시각에 매우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한다.
반미운동이 미 성조기를 불태우고 전투 훈련 중인 미군 탱크를 짓밟아도 별 탈이 없다. 반면에 인공기 소각 사태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즉각 유감을 표명하고 우익단체 기자회견장에서 북한기자들이 횡포를 부렸는데도 문광부 장관이 사과하는 시절이다.
박 장군은 좌파 운동권이 어디에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라고 혀를 친다.
“그들에게 옳은 말로 지적하면 냉전주의자, 민족반역자, 반동수구세력이라 반격합니다. 그리고 여론이나 언론도 그들 좌파 세력의 목소리를 그대로 대변할 뿐 보수계의 목소리를 용감하게 대변하는 데는 인색합니다. 이 때문에 마치 좌파가 제 세상인양 두려움 없이 행동하지 않을까 싶어 불안한 것입니다.”
박 장군은 세상모르고 행동하는 좌파에 대해서는 경험이 많은 세대들이 서로 힘을 모아 민족애로 깨우쳐 줘야 할 대상이라고 규정한다. 역사적으로도 민족과 주권을 명분으로 호전적이고 비이성적으로 행동한 집단은 “친구보다 더 많은 적을 만들어 스스로 화를 좌초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결국 과격한 민족주의는 실천가능성이 없을뿐더러 현실적인 국익외교에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미군이 왜 한국을 구해 줬겠는가
박 장군은 친북성향의 좌파 행동대원들이 진정으로 민족을 사랑한다면 북으로 들어가 무모한 선군정치와 대량 살상무기 개발을 나무라고 강압 받고 굶주리는 동포들을 돕고 살려내는 활동을 벌이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박 장군은 오늘의 세태가 이 지경인데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뭘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정부가 확고한 이념과 의지를 가지고 “국가의 목표는 좌유민주주의이며 이를 바탕으로 국가를 보위하고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겠다”고 분명히 해야 국민이 안도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박 장군은 국가질서가 혼돈되고 민생이 불안한 시기에 동북아 경제중심이나 국민 소득 2만 달러를 이야기하면 누가 곧이듣겠느냐고 지적한다. 경제란 세상 분위기와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받기가 마련이니 정부가 허황된 꿈을 앞세우기보다 우선 정치권의 파벌싸움이나 거리의 투쟁 등에 확고부동한 정책의지로 대처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냐는 말이다.
박 장군은 군 고위 장성 출신으로 반미감정이나 확산과 이에 소극적인 국민의 무분별한 사고를 가장 우려되는 점이라고 말한다.
“미군이 없으면 우리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이 아직 우리에게 없습니다. 미국은 우리의 힘입니다. 이를 잘 이용해서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런 간단한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니 얼마나 불안하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31세 때 소령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박 장군은 당시 미군이 우리에게 큰 힘을 줬었다고 회고한다. “전투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북한의 전차군단이었습니다. 이 때 미군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미군이 한국전에서 전사하자 미국 내에선 '왜 우리의 아들들을 그곳에 보내 죽게 하느냐'며 반전의 목소리를 높이는 여론이 강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군은 끝까지 떠나지 않았다. “전쟁 당시 미군을 지켜봤던 저는 그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약한 자를 돕겠다는 정의감으로 싸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기나라도 아닌데 수 만 명이 목숨을 던지며 싸워 한국을 구했습니다.”
박 장군은 아직 우리나라를 돕다가 전사한 수많은 미군들에 대한 보상과 재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를 해결하기는커녕 반미 감정이 확산되고 있으니 미국의 보수 계층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개탄한다.
박 장군은 걱정만하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국민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 할 일을 다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박 장군은 퇴역 후 악의 축을 물리적 힘으로 타파하기보다는 민간외교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초대 총재를 역임했던 국제민간외교협회인 PTP(People To People)라는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한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여겼다.
“우리가 세계에서 사랑받는 국민이 되도록 하려면 남을 우선 도와줘야 한다”며 박 장군은 한국이 유엔회원국으로 가입하기도 전인 65년 강원도지사로 재임 중 일때 춘천클럽을 발족한 후 72년 사단법인체로 발전시켰다.
,b>PTP로 평화적 ‘악의 축’ 퇴치운동
PTP는 2년마다 국제 대회가 열리며 학생교환 교류, 문화소개 등의 민간외교 활동이 활발하다. 최근에는 국내에 있는 동남아 등의 외국 근로자를 돕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PTP는 1956년 미국 아이젠아워 대통령에 의해 창시돼 현재 세계 35개국이 회원국으로 있는 세계적인 시민단체다.
세계 회원국 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성장과 발전을 인정받아 72년 박 장군에게 아이젠아워 평화상이 수여됐고 제1차 세계민간외교PTP대회가 74년 한국본부 주최로 서울에서 개최됐다.
처음 PTP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우리를 도와줬던 주한미군 어린 사병들을 도와보자는 취지였다. 63년에 소장으로 전역하고 도지사로 활동하면서 소양댐, 이양댐 건설 등 큰일들을 치러내던 중 PTP를 알게 됐다.
“58년 춘천에 2군단 참모장으로 가서 장군이 됐는데 거기에 캠프페이지 미군 유도탄 사령부가 진주해 있었습니다. 몇 년 후 도지사로 강원도에 가서 부대를 다시 만나게 됐어요.”
팔순이 넘는 나이에도 충심으로 나라를 걱정하며 수많은 일에 열정으로 매진하고 있는 박 장군에게서 혼돈의 세월을 이겨낸 용기와 지혜가 절로 느껴진다. 다만 혼자만이 아닌 되도록 많은 이들에게 그의 체험적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감이다.
언론인 배병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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