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휴의 재계 원로 탐험 <28> 표용은 목사

표용은 목사는 칠순이 넘어 은퇴했지만 여전히 ‘무서운 감독님’으로 통한다. 무섭다는 말은 규율에 엄격하고 기독교 정신에 투철하다는 의미다. 올해 일흔 다섯으로 5년 전에 화려한 현역으로부터 물러났지만 요즘도 교회 일 뿐만 아니라 세상만사 고충면담을 위해 ‘배알을 청하는 귀빈들’ 때문에 바쁘다. 마포 가든 호텔 커피숍으로 찾아 뵀지만 오찬 후의 면담객 마저 대기하고 있어 서둘러 질문하고 대강 메모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감리회 감독회장과 대한감리회 유지재단 이사장직의 명예와 권위가 얼마나 중량감이 있는지는 귀동냥하고 갔었다.
기독교에 문외한이지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활동과 기독교 방송국 이사장 등으로 국가와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명성도 들은 바 있었다.
친북에 경악하는 학병 출신
그러나 표 목사는 감리교 거목이 아니라 고목이라면서 무슨 인터뷰냐고 사양한다.
그렇지만 작년의 사학법 재개정 투쟁운동과 관련, 표 회장의 촌평이라도 듣고 싶었다.
온양한올여중고를 설립한 성화학원 이사장과 모교인 공주영명학원 이사장직을 겸하고 있으니 사학법에 관심이 높을 것으로 짐작됐다.
“악법이라 단정합니다. 성경도 가르치지 못하게 간섭하면 악법입니다.
건학이념의 훼손을 참을 수 없습니다. 사학과 아무런 인연도 없는 개방형 이사가 들어오게 되면 사학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표 목사는 사학법에 대한 위헌 제정과 법률 불복종운동 등을 거론하면서 “정치적 개악을 막지 못한 것은 나도 책임이 있고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책임도 크다”고 강력 지적한다. JP가 DJ와 잘못 연합해 국민의 정부를 발족시켰고 다시 노무현 정부가 뒤를 승계해 끝내 개악을 강행했다고 한탄한다. 표 목사는 “JP를 좋아했지만 사학법 문제를 생각하니 최고의 책임을 묻고 싶은 심정”이라고 서슴없이 지적한다.
표 목사는 전교조 활동에 대해서도 직격으로 비판한다. 전교조가 진실로 6·25를 모르고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야욕을 몰라서 친북형태를 보이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김일성이 기독교인 얼마나 박해하고 애국지사 어떻게 탄압했는지를 생각하면 도저히 참을 수 없지요. 그런데 전교조가 6·25 남침을 민족해방 전쟁이라 미화하고 선군정치를 찬양하니 순수한 운동 단체라고 볼 수 없지요. 전교조가 참교육을 들고 나와 교육개혁은 고사하고 국
가 백년대계를 위한 국가교육을 거의 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표 목사는 학병으로 6·25때 참전해 전쟁의 참상을 목격했다. 국군 8사단 21연대 1대대 화기중대 박격포반에 근무했지만 용케 살아남았다.
전선이 수시로 이동하던 막바지 전투 때 인제, 원통, 서화 등 고지를 헤매고 김일성 고지 탈환작전에도 참전했다. 그 뒤 부대 교대로 춘천을 거쳐 남원으로 내려가 지리산 공비 토벌에 참전했다가 제대했다.
그러니까 6.25 참전용사의 눈에 김일성의 반민족적 죄악이 너무나 분명한데 교육 개혁을 부르짖는 전교조가 남침전쟁을 미화하니 기가 막일 수밖에 없다.
표 목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의 6·15선언을 순수하게 믿지 않는다. 그 자신은 북한을 방문할 기회가 많았지만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단 몇 푼이라도 도와주면 총알이 돼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 김일성 집단의 속성이라고 핀잔한다.
“DJ가 6·15선언으로 전쟁위험이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김정일의 서울 답방은 이뤄지기 어렵다고 봤어요. 서울을 방문하자면 애비가 저지른 동족을 죽인 민족적 죄악을 사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표 목사는 기독교 방송을 맡고 있을 때 금강산 관광이나 평양 방문을 요청하는 주장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가는 것은 좋지만 단체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비싼 돈 주고 개 끌려 다니듯 지정된 코스만 구경하고 오는 것이 무슨 관광이냐는 생각이다.
반미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격
DJ의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단연코 부정적인 입장이다. 김정일 체제 유지용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온갖 물자와 달러 퍼주고 돌아온 것은 미사일 발사뿐이다.
납북 어부나 국군포로 송환은 꺼내지도 못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협박당하는 것이 햇볕정책의 진상 아니고 무엇인가.
표 목사는 과거 KNCC 운동 때 신뢰해 온 인물들이 친북 좌경행동을 보이는 것이 경악할 노릇이라고 개탄한다.
간첩 이선실 보내주고 장기수 이인모를 극진한 예우로 보내준 인물들이 그들 아니냐고 지적한다.
표 목사는 친북 좌경운동권이 반미에 앞장서고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를 노리는 것은 예상했던 일이라고 해석한다.
그렇지만 멋모르고 정신 빠진 짓거리를 하면서도 제 죽을 꼴을 미처 생각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UN이나 미군의 참전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존재할 수 없을 것 아니요. 누구 덕에 번영했는지 모르고 반미 운동하면 결과적으로 누굴 이롭게 하는 겁니까. 기독교 정신으로 보면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 틀림없습니다.”
표 목사는 온갖 시민단체나 범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진실을 위장해 이적행위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과연 무슨 돈으로 조직을 강화해 대규모 평택투쟁이나 광화문 시위를 감행하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들이 근로소득을 털어 운동하고 사람들을 동원할 리는 없다.
노조에게도 할 말 해야 한다
갖가지 명목으로 정부 지원금 받아 반미, 친북운동을 당당히 벌이고 있으니 말이 되느냐고 분개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미 은퇴했으니 젊고 박력 있는 후진들이 절대로 밀리지 말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 목사는 지금도 자꾸만 ‘감독님’이라 호칭하며 나서기를 권유 받지만 교계 지도급 거목이 아닌 고목이 앞장 설 때가 아니라고 사양한다.
그렇지만 이 땅에 뿌리내린 기독교 사상이 살아있는 한 대한민국의 국운은 우리를 지켜 주리라고 굳게 믿는다.
표 목사는 지난 2006년 국민이 불안하게 지켜본 포항 건설노조의 포스코 본사 점거 사태와 현대자동차 노조의 장기파업에 관해 ‘배부른 투정’이라고 했다.
요즘 민생경제가 얼마나 어렵고 일자리가 없어 전전긍긍하는 실업자가 얼마인데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불법 행태를 보였느냐는 말이다.
표 목사는 CBS시절 노조의 행태를 체험하고 나쁜 짓들이라고 꾸짖었다고 소개한다.
“왜 노조가 경영을 간섭하려 드나. 안방을 차지하겠다는 말이냐. 노조운동하면 어른도 물라보느냐. 함부로 언행 했다가 나중에 책임을 질 수 있겠느냐.”
이렇게 호통 치면서 기세를 꺾었다면서 노조가 순수성을 버리게 되면 노동운동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당시 MBC노조위원장이 자신과의 면담을 요청해 왔기에 “왜 당신이 대신 나서려 하느냐”고 야단쳤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표 목사는 “기업이 망하면 노조가 어디에 설 땅이 있느냐”며 요즘 강성 노조들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함부로 기업을 흔들며 파업하는 것은 정부와 사업주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정면승부로 돌파하는 방식
현대자동차가 노조의 파업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고도 그들의 위세에 눌려 온갖 격려금으로 달랜 처사가 못 마땅하다는 뜻이다.
표 목사는 세상만사를 떳떳하고 당당하게 처리하게 되면 노조나 전교조도 무서울 것이 없어진다고 내다본다.
5공화국이 CBS의 뉴스 보도를 금지 시켰을 때 표 목사는 정권과 정면으로 부딪혀 이를 해결했다.
“6·29 선언으로 민주화 약속했으면 종교 방송 뉴스 보도도 허용해야지 이를 금지시켜 두고 노태우 후보 당선시키려 하느냐.”
이 같은 정면 승부로 돌파한 것이 표 목사의 업무처리 방식이었다.
당시 문공부 이웅희 장관에게 뉴스 보도 재개를 요청했더니 청와대와 안기부에 손을 써보라고 권유했다. 때마침 영명중고 후배인 이상재씨가 보안사 출신으로 힘깨나 쓴다고 들었다. 그에게 “청와대에 연락 좀 해달라”고 부탁해 김윤환 비서실장을 찾아가 “민주화하기로 했으니 뉴스보도 허용하는 것이죠”라고 아예 다짐을 받아냈다.
이어 안기부 이상연 차장을 만나 똑같은 다짐을 받아냈다.
오래지 않아 노태우 후보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확실한 약속을 받고 곧 해결됐다.
표 목사는 떳떳하고 당당하면 정권과 부딪혀도 깨지지 않고 돌파할 수 있는 법이라고 자신한다.
표 목사는 1954년 영명고 35회 졸업생으로 감리교 신학대를 졸업하고 1960년 서대문 중앙감리교회 목사로 평생을 보냈다. 2003년 4월 공식 은퇴식을 갖기까지 43년간 큰 탈 없이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해 온 것을 감사히 여긴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모교인 영명교가 길을 열어줬다. 영명교의 설립정신으로부터 자신이 태어나고 축복을 받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모교 사랑에 남은 열정을 바치려 한다.
개교 100주년의 영명고 정신
화려하면서도 보람 넘치는 43년 현역을 되돌아보면 영명학원으 설립정신으로부터 표 목사가 탄생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KNCC실행위원, 부회장, CBS재단이사장, 서울YMCA이사장, 대한YMCA연맹이사장, 감리회 감독회장, 감리회 유지재단 이사장, 감리교 신학원 이사장, CBS방송 이사장 등등.
더 이상 욕심이나 미련이 남아 있지 않다. 은퇴의 축복을 받았으면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역할만 남았다.
그런데도 나랏일이 잘 안되고 민생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코드인사 난동이 사회를 어지럽히니 말을 꺼내니 시작하면 이런저런 소견을 털어 놓게 되더라고 했다.
표 목사는 아들이 목사로 대를 잇고 딸이 교수 부인이 됐으니 가정적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래서 나라와 세월에 감사하면서 은퇴의 삶을 한가로이 보내고 싶은데도 그렇지 못한다고 혀를 찬다.
은혜를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느니 마음이 불편하다는 뜻이다.
배병휴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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