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에 시민은없고 탐욕만 있어서야…
시민운동에 시민은없고 탐욕만 있어서야…
  • 배병휴 언론인 기자
  • 입력 2008-01-08 10:41
  • 승인 2008.01.08 10:41
  • 호수 39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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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원로 송월주 스님
1997년 조계종 총무원장 시절모습(오른쪽)

송월주 스님이 지난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시민운동에서 차지해 온 역할과 비중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다.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차례 역임한 스님은 인도의 간디옹과 닮은 꼬장꼬장한 인상으로 정치, 사회, 문화 등 각계 중요 현안에 관한 시민운동의 대표역을 수없이 맡아왔다. 시민운동단체들의 재정난을 덜어주기 위한 시민운동지원기금에도 초기부터 참여해 상임고문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시민운동단체 가운데 재정형편이 넉넉한 부자단체가 많으니 “민생생활 관련 시민단체 위주로 기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스님이 시민운동을 보는 눈은 최근 매우 현실적이며 비판적이다. 시민운동에 참여하다 정치와 권력기관으로 출세하는 경우가 너무 잦다는 지적이다. 시민운동에 시민은 없고 탐욕만 있으면 순수한 시민운동이 아니라는 것이 스님에게서 나온 말이다.

얼마 전 ‘바다이야기’ 추문이 터져 나온 후 모임에서 잠깐 뵌 스님은 도박공화국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도박과의 전쟁’을 선포에 앞장섰다고 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관련 서명운동에도 참여해 달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바다이야기가 더욱 민생에 절실할 것 같아 도박과의 전쟁에 먼저 나섰다고 설명했다.


중독자 구출 위해 ‘도박과 전쟁’

송 스님은 선진화국민회의, 기독교사회책임 등 많은 시민단체 대표와 교수, 변호사 등 126명의 각계 대표와 함께 지구촌 공생회 이사장으로 도박과의 전쟁에 참여했다.

‘도박과의 전쟁’ 선언문이 우리에게 절실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사행성 도박은 마약과 매춘과 함께 우리의 인간성을 피폐케 만드는 사회악이다. 도박은 근로의욕을 저하시키며 부유한 자를 가난하게 만들고 가난한 자를 마멸로 이끈다.”

도박은 마약과 같이 한번 빠지면 자력으로 헤쳐 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정부의 정책과 과오로 국민의 귀중한 생산력을 감축시키고 재산을 날리도록 만들었으니 그냥 넘길 수 있겠는가.

성명서는 “도적적 준비를 못 갖춘 민간단체에서 행정권한을 위임하고 사후 관리와 감독에 소홀했다”고 지적하고 이 때문에 경제가 불안하
고 청년실업이 문제라고 강력 비판했다.

스님은 바다 이야기 사태로 사행성 오락게임 업소만 1만4000개에 달하고 상품권 액수가 28조원에 달한다고 보도됐지만 실상은 이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들었다고 했다.

이에 따라 ‘도박과의 전쟁’ 선언문은 4가지 항목의 입장을 천명했다.

첫째, 청와대, 정부, 국회는 바다 이야기와 관련된 의혹을 성역없이 철저히 규명해 엄중 문책해야 한다.

둘째, 정부와 국회는 도박공화국의 오명을 벗기 위한 법적 제도적 정비와 사행성 도박퇴치를 위한 엄정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건전한 게임산업과 사행법 도박산업을 명확히 구분하고 경마, 경정, 경륜, 카지노, 복권 등 도박산업에 대한 정부의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들을 최대한 규제해야 한다.

셋째, 도박 악습에 빠진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한 철저한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정부와 국민은 협력해 이들 중 한사람도 버려지지 않도록 근본적인 구제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이번 기회에 도박과의 전쟁을 단호하게 전개하지 않으면 나라가 도박으로 멍든다. 시민사회는 도박과의 전쟁을 위한 범국민기구를 제안하며 온 국민이 이 운동에 나설 것을 호소한다.


감상적 ‘민족공조’ 경계해야

스님은 지금껏 바른 사회, 경제정의, 실업극복 등 국가와 사회문제에 높은 관심을 보여 온 현실참여 발자취를 쌓아왔다.

1980년대 지역감정해소국민운동협의회 공동의장, 10·27 법난진상규명추진위 대표,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공동대표 등 정치적 현안에도 앞장섰지만 경실련 공동대표, 공해추방불교인 회장, 정의사회시민운동, 바른언론시민운동, 실업극복국민운동, 등 공동의장으로 생활시민운동에 보다 역점을 뒀다.

최근 도박과의 전쟁 선포에 앞장선 것도 바로 이 같은 시민운동정신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민족 화해와 대북 인도적 지원에서도 스님은 오랫동안 앞서가는 행보를 보여 왔다. 1980년대 조국평화통일추진불교인협의 회장을 시작으로 1990년대에 들어 통일광복민족회의 공동대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및 이사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민족정기선양협의회, 지구촌공생회 등의 대표 얼굴로 대북지원과 나눔운동에 매우 헌신적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스님은 인도적 대북지원에 있어서도 제도적 개선이 절실하며 일방적으로 감상적인 ‘민족공조’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왜 큰 스님의 대북인식이 달라졌을까. 행여 무턱대고 물자와 현금을 지원한 것이 오히려 잘못됐다는 판단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스님은 감상적, 일방적 대북지원의 순수성이 북의 전략에 악용됐노라고 생각한다.


인도적 지원 악용 미사일 발사

스님은 지난 1996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를 맡은 이후 10여 차례나 북한을 방문하고 수백억원 상당을 지원했다.

농기계수리공장 2곳, 양계장 산란장, 탁아소, 무료급식소 등을 마련해 주고 수액제 공장도 세워줬다. 이 공장은 준공식 준비를 끝내고도 북측의 일방적인 일정 취소통보로 무기한 연기됐다가 나중에 준공식 행사를 치러야만 했다.

스님은 이때 황당했다고 한다. 링겔 주사액을 맥주병에 담아 주사하는 것을 보고 어렵게 공장을 짓고 준공식 행사용 물자 등도 준비해 놓고 있었는데 막바지에 행사 취소를 통보해 온 것이 북한 당국이었다.

스님은 우리민족서로돕기 차원의 이들 인도적 지원이 북에게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실망했다. 북의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스님은 10여 차례나 방북할 때마다 항공료에서부터 체류비와 행사비용까지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북측에서는 맨입으로 받기만 했다.

그러던 것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보니 결국 속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북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대북지원정책은 안되겠다는 판단이 여기서 나왔다. 북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6자회담에 복귀하며 이산가족 상봉 등 순수하게 화해와 협력으로 나와야만 대북 인도적 지원의 의미도 살아나게 될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백범·DJ 속고 ‘나도 속았다’

스님은 북한에 대한 체험을 통해 철저히 속아왔다고 실토한다.

해방정국에서 백범 김구는 김일성에게 속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6·15공동선언을 통해 김정일에게 속고, 자신은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분에 속았다는 뜻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실로 명언이다.

스님은 모든 국민과 대북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분들에게 북한으로부터 속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정부에 대해서는 대북정책의 대전환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구소련이 1945년 9월, 스탈린 지시를 통해 북한에 공산정권 수립을 계획했고 김일성은 정권수립을 준비하면서 백범에게 통일정부 운운하며 남북협상을 제안했다고 주장한다. 통일정부 수립이란 명분이 좋고 자주와 외세배격이란 매력 있는 구호였다.

백범이 김일성의 제안을 수락해 평양에 가서 얻은 것이 없다. 결과적으로 김일성 정권을 도와준 꼴이니 백범은 김일성에게 속은 셈이다.

DJ도 평양을 방문, 6·15선언에 합의하고 “이제 전쟁은 없다”고 선언했지만 그 뒤 서해교전이 있었고 북이 핵보유 선언하고 끝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으니 얼마나 철저히 속았는가.

스님은 노무현 대통령도 속고 있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북한 미사일을 인공위성이라고 변호하던가 침략용이 아닌 정치용 미사일이라고 자꾸만 해명하는 것이 속고 있는 징후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스님은 북의 핵무기나 미사일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하면 차라리 입을 닫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 국익에 부합된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당당히 노라고 발언했듯이 북한에도 당당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 연구를 보면서 중국에도 할 말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권고한다. 듣고 보면 스님 말씀에 한 점 틀림이 없다고 수긍된다.


강온 양면으로 북 변화 이끌어내야

스님은 북의 대남위협에는 강경한 경고로 대응하고 인도적 지원은 국제공조의 틀 안에서 실시하는 강온 양면작전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
어내야 할 것이라고 권고한다. 일방적으로 감상적인 ‘우리민족끼리’는 의미도 없고 기대할 것이 없다. 우리의 건국정신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헌법정신의 토대 위에 민족통합을 이룩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 때문에 스님은 지난 2003년부터 대북지원과 제3세계를 열심히 지원해 온 지구촌공생회의 활동도 당분간 동남아에 주력할 계획이라며 민간단체들의 대북지원도 북한의 변화를 지켜보며 재개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님은 북한이 수시로 관광 중단이나 이산가족 상봉을 중단시키는 방침을 보면서 금강산에 우리 돈으로 면회소를 건설하는 것이 잘못됐다
고 비판한다. 판문점이나 휴전선에 건설해 북이 정치적 논리로 이산가족 상봉을 중단시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대북협력과 지원은 대한민국의 정체성 바탕 위에 국민에게 안보 불안감을 주지 않으면서 “줄 것은 주되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국제기구 등을 통해 투명하게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뜻이다.

대북정책에 허둥대는 정부와 국회가 제발 큰 스님의 조언을 깊이 새겨들었으면 좋겠다는 소감이다.

스님이 주저하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소신과 신념대로 현실문제에 접근해 대안을 제시하고 정부에 권고하니 믿음이 생긴다. 시민단체가 권력화 하고 있는 시민단체 천국이라 하지만 스님과 같이 강력한 비판과 행동을 보여주는 제1세대 시민운동 지도자가 있으니 기대를 갖고 안도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배병휴 언론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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