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스펀지에 담아 평화와 사랑으로 나눈다
세상만사 스펀지에 담아 평화와 사랑으로 나눈다
  • 배병휴 언론인  
  • 입력 2007-12-24 15:57
  • 승인 2007.12.24 15:57
  • 호수 37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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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휴의 재계 원로 탐험 <25> 김순권 목사
김순천 목사가 KNCC 회장직 시절 간담회 모습

교계에서 ‘스펀지 목사’로 널리 알려진 경천교회 김순권 목사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된 후 ‘스펀지 목사의 KNCC’로 불리게 됐다. 스펀지는 만지면 보드랍고 포근하며 약한 것 같지만 끈끈하고 강한 질감이다. 김 전 회장은 스펀지가 되자는 것은 사랑을 갖자는 얘기라고 들러준다. 그리고 스펀지 목회란 스펀지와 같은 사랑을 펴자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스펀지 목회 이야기를 3권이나 출판한 김 회장은 고교시절부터 기독교와 함께 살아온 한 평생을 KNCC회장이란 스펀지에 담아 사랑을 실천하는 목회자가 되겠노라고 다짐한다. 한마디로 김 회장이 강조하는 스펀지란 사랑이다. 다만 한없이 부드럽지만 강한 스펀지이기에 모든 생명과 평화를 몽땅 수용해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김 전 회장을 두고 행여 ‘개천에서 용 났다’는 속담에 비유하는 것은 너무 천박한 논평이다. 봉천동 경천교회에서 KNCC회장이 선출된 것을 ‘개천에서 용 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성도수 2000명이 넘는 경천교회가 결코 개천쯤으로 비하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스펀지에 교계의 반성도

김 전회장이 작은 전원도시 김천 출신이란 점에서는 지역의 경사로 기록된다. 인구 15만명에 불과한 김천에서 모든 생명과 세계평화를 담을 수 있는 스펀지 목사가 탄생한 것을 두고 지역민들이 우쭐대는 것이 나무랄 일이 못된다.

김 전 회장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에다 KNCC실행위원장과 부회장 등으로 이미 생명과 평화를 위한 사통팔달의 지구촌 선교활동을 펴온 인물이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이해할 귀가 없는 우리네는 김 전 회장의 수많은 설교집을 받아 보고도 뜻을 모른다. 선풍적 인기를 모았다는 스펀지 목회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김 전 회장이 강조하는 하나님의 스펀지가 부천님의 바랑과 유사한 개념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산에서 내려와 도심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산사로 올라가는 스님은 “세간의 고통을 탁발하러 갔었다”고 했다.

자신이 지고 다니는 부처님 바랑에 세상의 온갖 번뇌와 고통을 담아지고 가겠다는 말이었다.

이에 비해 김 전 회장은 스펀지에 모든 것을 다 수용했다가 부드러운 사랑으로 모든 생명과 평와 통일까지 듬뿍 퍼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이는 필경 부처님의 바랑에 비유될 수도 있을 것이다.

KNCC도 시대발전과 함께 역할과 고임이 달라졌으리라 믿어진다. 지난 1970~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KNCC의 발언은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화를 지나 생명과 평화를 말해야 하며 이는 사랑으로 이룩될 수 있다고 믿어진다.

김 전 회장이 KNCC회장에 취임한 후 개신교계의 반성을 촉구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먼저 자신부터 깨끗해져야 한다거나 한국교회가 작은 교회를 중심으로 질적 향상을 가져와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아마도 너무나 대형화되고 윤택하게 비쳐지는 물질적 팽창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어떤 교회는 성도수가 무려 70만명에 달하며 위성교회를 설립,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그러니까 김 전 회장이 강조하는 스펀지 목회는 교계 내부의 혁신마저 담을 수 있는 스펀지가 돼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김 전 회장의 스펀지 목회 이야기에 따르면 ‘목회자의 위기의식’을 강조한 칼럼이 여러 편이다. 외부 세계에서 보면 자기 채찍질이자 목회자들에 대한 고발성 반성이다.

김 전 회장이 독일의 경우를 제시하며 교회부흥을 촉구하고 교회연합운동을 줄기차게 강조하는 것도 KNCC의 새로운 시대정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김 전 회장이 언론회계를 통해 KNCC의 문호개방을 약속하며 기존 8개 교단 외 기독교 대한성결교회나 루터교 등을 방문해 함께 가자고 권유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권태와 무관심은 위기다

솔직히 비 교계에서 보면 대형교회가 재벌의 문어발식 영토확장처럼 비대화되고 담임목사의 세습이 재벌의 상속과 증여식으로 비쳐 지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교회 빅 10 가운데 6개가 우리나라에 몰려 있다는 사실이 결코 정상이거나 바람직한 양적 성장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김 전 회장이 지적한 목회자의 위기의식에 따르면 ‘목회의 비전’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영혼구원이라는 소명의식을 잊고 물질에만 몰두한다는 세속의 지적을 받게 되면 큰일이다.

그래서 김 전 회장은 “목회를 오래 할수록 위기극복 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목회자의 위기는 권태로부터 오게 된다. 괜히 사람이 싫어지고 심방도 하고 싶지 않은 권태가 주기적으로 다가오면 이를 누가 알아차릴까 고민하게 된다. 이럴 때면 설교준비도 하기 싫고 위선자가 되는 것 같아 괴로워지며 훌쩍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받는다.

김 전 회장은 이를 마치 중년 여성의 갱년기에 비유하며 권태는 ‘자신 속에 붙어사는 기생충’이자 ‘목회자의 병’이라고 진단한다.


스펀지의 거울은 한경직 목사

또 무관심과 의욕상실로 위기의식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목적의식이 약해지고 사랑이 식으면 양떼들에게도 무관심해지니 큰 병이라고 진단한다. 김 전 회장은 이처럼 무관심 병이 생길 때 공연히 자신을 괴롭히는 자학을 할 것이 아니라 스펀지가 돼 영혼구원의 사랑을 되찾으라고 권유한다.

김 전 회장은 ‘목회자도 인간’이라고 말한다. 성도들에게는 ‘두려워 말고 담대 하라’ 해 놓고 자신은 두려워 하니 위기를 맞는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목회자는 늘 자기관리에 열중하고 바쁜 일에 몰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여행, 운동으로 바쁘게 뛰어도 좋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체면 버리고 엎드려 자아로 돌아가는 기회도 많이 가지라고 주문한다.

목회자가 남에게는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자신은 세미나에 참석해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의 결핍이라 지적한다.

또 목회자가 오해받기 쉬운 습관으로 반말, 명령투, 게으름 등을 꼬집는다. 스펀지가 돼 사랑의 결핍을 재충전하고 존댓말 습관을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김 전 회장은 스펀지 목회의 거울로 한경직 목사를 회고한다. 아흔 아홉의 천수를 마치고 떠난 한 목사의 외모는 약한 듯 강인 했으며 군림하기는 고사하고 연민의 정이 솟게 할 만큼 너무나 겸손했었다고 회상한다. 한 목사가 강단에 섰을 때는 등이 굽어진 연약 체형으로 설교를 마칠 수 있을까 불안했지만 카랑카랑하고 또박또박한 음성이 귀를 울렸었다고 한다.

한 목사는 언제나 ‘옳아 옳아’가 먼저이고 부정보다 긍정이 앞섰던 스펀지 목회자였다는 것이 김 전 회장의 해석이다. 결국 김 전 회장의 스펀지 목회란 한경직 목사가 원조라는 해석이다.


거창고 인연이 KNCC까지

김 목사는 1950년대 속기사로 출세하려 속기에 열중하다 목사가 된 양반이다. 경북 김천 중학교에 다닐 적에 과외공부로 시작한 속기반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거창 고교로 진학해 전영창 교장을 만난 것이 필생의 목회자 길이었다.

미국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거창고교의 재선을 위해 부임한 전 교장은 주2회 예배에 엄격했다. 당시 김순권 학생은 특기를 살려 성경말씀을 속기로 기록해 전 교장 눈에 들어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었다.

고교 졸업 후에는 현 호남대 전신인 대전대에 입학했다가 그만두고 장로회 신학대학으로 진학해 5년간 신학공부에 빠졌다. 그 뒤 경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65년 군목 중위로 임관돼 맹호부대를 따라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으며 육본시절 미국 컬럼비아 선교대학원 석사코스에 유학함으로써 세계적 목회자의 길을 열었다.

미국 유학 후에는 이스라엘 성지 고고학연구원 3개월 코스를 마치고 영천에 있는 3사관학교와 제1군단 군목을 거쳐 중령으로 예편해 봉천동 경천교회에 정착, 무려 23년간 담임목사로 오늘에 이른다.

이어 1981년부터 스위스 기독교 국제공동선교회 이사로 기독교 박해지역 선교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해 왔으며 88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에 진학해 목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KNCC부회장, 경천교회 담임을 줄곧 맡아왔다.

김 목사가 시골 중학교 속기반 학생으로부터 오늘에 이른 성공 가도에는 거창고 전영창 교장과 컬럼비아 선교대학원의 해피 스트리더스 박사의 영향이 많았다. 거창고 전 교장은 오늘의 노무현 대통령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현 전성은 거창고 교장의 선친이다. 또한 청와대 정창용 수석비서관이 당시 거창고 교사였다.

전 교사는 이때부터 YMCA활동에 참여해 뒤에 광주YMCA총무를 맡았다. 김 전 회장은 당시 전 교장 시대 거창고가 요즘의 전교조식 참교육 운동이 일어났었다고 회고한다. 김 전 회장이 KNCC회장이 돼 청와대로 노 대통령을 예방했더니 노 대통령이 부산 재야 변호사 시절 거창고와 전 교장의 인연을 들추고 그때 그 시절의 야학과 인권운동을 회고하더라고 전해 준다.


글재주 타고난 목회자 논객

김 목사는 중단 없이 글 쓰고 대화하며 설교하는 목사다. 신학과 문학을 함께 짊어질 시대적 저널리스트 격이다. 대학에선 신학과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글 쓰는 재주는 타고난 재능이었다.

1990년 서정주님의 추천으로 등단한 후 국제 팬클럽한국본부 회원과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한국기독교문인협회를 통해 눈부시게 활동해 왔다.

또 목회자 논객으로 필명을 드높이기도 했다. 기독공보 논설위원, 목회자신문 논설위원, 장로신보 논설위원, 기독교연합신문 논설위원, 군 복음화보 논설위원 등의 직함이 스펀지 논객의 과거를 웅변해 준다.

스펀지 목사가 우리에게 펼쳐 보일 생명과 평화의 사랑이 얼마나 큰 물결을 일으키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배병휴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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