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일 노무현 대통령은 13박 14일간의 순방일정을 잡고 출국했다.
노 대통령은 순방 기간 동안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 등을 통해 양국 간의 어려운 난제를 헤쳐 나가기로 합의했다. 또한,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그리스와 루마니아, 핀란드 3개국을 국빈 방문했고, 헬싱키에서 열린 아시아 유럽정상회의에서 중국, 독일 정상 등과 회담을 가졌다.
노 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각 나라의 국가원수를 호위하는 ‘근위병(의장병)’들에 휩싸여 영접을 받았다.
그로부터 13일 후, 노 대통령은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공항에는 공군 의장대 20~30여명이 노 대통령의 귀국을 축하하기 위해 도열하고 있었다.
이처럼 각 나라마다 국가원수를 호위하는 ‘근위병(의장병)’들이 있다. 근위병들은 국가원수의 순방길이나 귀국길에 나가 대통령을 영접한다. 가장 유명한 근위병은 아마도 영국 버킹엄궁의 근위병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육해공군 및 해병 등에 의장대병과가 별도로 설치돼 있다. 이들은 각 군 행사에 동원되기도 하지만 대통령 행사 때에는 하나로 통합돼 단일 부대로 움직인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국군이 처음 창설된 직후에는, 국군은 그야 말로 오합지졸이었다.
쉬운 말로 구한말의 조선군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때문에 각 군은 의장대라는 것을 두지도 않았다.
의장대는 1950년에서 1953년 사이 창설됐다. 미군의 영향을 받아 창설된 의장대는 미국식 제식을 만들어, 기틀을 다지게 됐다.
대통령 스타일과 일맥상통
노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과는 달리 청와대 행사 및 본인 스스로 외국에 나가고 들어오는 공항행사에 의장병력 동원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실제 지난달 16일 귀국길에 노 대통령을 영접하는 의장 병력은 고작 20~30명에 불과했다. 이는 100여명이 넘었던 전직 대통령들과 비교해 보면 터무니없이 적은 수다. 노 대통령의 스타일과도 일맥상통한다.
노 대통령이 대통령에 오르기 전인 2000년. 노무현은 16대 국회의원선거에 부산에서 민주당 간판을 달고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당시 필자와 사석에서 술자리를 가진 노 후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낙선한 후, 술 한잔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냥 울었습니다. 막 슬퍼집디다. 그냥 막….”
필자는 그 자리에서 “그래도 노 후보는 자랑스러운 것 아니냐,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거기까지 내려갔으니…, 그리고 국회의원까지 지낸 분이 우는 것은….”
노 후보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가는 내가 미워서도 눈물이 납디다, 아니, 나오는 눈물을 어떻게 막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이처럼 노 대통령은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종종 거추장스러움을 탈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이 같은 행동양식은 의전행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난 듯하다.
실제 현정부의 의전담당부서는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고는 소수의 의장병력만을 각 군에 요청하고 있다.
YS는 호위에 큰 비중
김대중 전대통령 또한 노무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주요 행사를 제외하고는 병력 동원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지 않았다.
DJ도 본인의 행사에 군을 동원하는 것을 극히 자제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의장병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다. 이는 당시 시대상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의장대의 도열을 군사문화의 잔재로 여겼던 탓이다. 이로 인해 배려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YS는 대통령에 오른 직후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곳(청와대)에는 군사문화가 너무 많다.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문민스러운’ 일처리가 필요한 때다.”
때문에 YS 정부시절에는 의장병의 화려한 도열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임 대통령들보다 더 강화된 호위를 요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보통 100명 내외의 의장병으로 외국 국가원수의 청와대 방문 행사를 치르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YS 정부시절에는 한번 행사때마다 200여명이 넘는 의장병 동원을 요구했다. 물론 YS가 요청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당연히 의전 담당이 맡아서 했다. 의전담당이 그 전과는 달리 민간인 출신이라 군으로부터 보호받고 호위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아 이처럼 많은 병력동원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일종의 보상심리가 강하게 작용한 것 일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행사비 윗선서 ‘꿀꺽’도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의전행사를 치를 때면, 의장병 1인당 적정 금액의 행사비가 책정됐다.
청와대 행사가 됐든 대통령 환송 및 환영행사가 됐든 간에 대통령 행사에 참석하는 의장병에 대해 수당을 책정해 준 셈이다.
그러나 당시가 군사정부 시절이고, 군대 내 민주화가 일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의장병 개개인에게 돌아가야 했던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는 않았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부터 국방부 의장대장을 맡았던 모 중령이 김영삼 대통령 시절 수뢰 혐의로 옷을 벗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이런 것으로 미뤄, 아마도 의장병에게 지급됐던 행사비는 윗선에서 알아서 ‘꿀꺽’했던 것 같다.
노태우 정부시절 의장대와 관련해 재밌는 일화가 있다.
노 대통령이 어느날 의장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청와대로 호출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호출을 받은 의장대장은 감격한 나머지 대통령 앞에 서서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눈물까지 쏟고 말았다고 한다.
이 후 청와대 행사에 동원되는 의장병들에게는 대통령이 지나가는 순간에는 절대로 눈을 깜빡여서는 안된다는 불문율까지 생겼다고 한다.
전두환 대통령도 의장대에 관해 남다른 관심을 표했다.
당시만해도 국군 의장대에는 겨울용 행사복이 없었다. 전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겨울용 행사코트를 제작해 배급까지 했다. 군 출신답게 대통령의 호위병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물질적인 것으로 표출한 것이다.
전 대통령 시절에는 국방부 의장대가 창설되기도 했다.
전 대통령 이전까지는 청와대 내에 대통령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각 군 본부 의장대가 소집, 동원됐다. 하지만 전 대통령은 대통령 행사만 전담하는 의장대를 국방부 안에 설치했다.
의장병 제복도 직접 도안
버마 아웅산묘소 테러 당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전 대통령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했을 당시 공항에 도열해 있던 의장병들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다는 일화가 있는 것으로 봐서도 군 통수권자이자 군 출신인 전두환 대통령의 의장병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는 전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뒤 군에 대한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관리했다. 특히 청와대 행사에 동원되는 의장대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역대 대통령 중 최고로 손꼽힌다.
의장병의 어깨에 장식하는 수술도 박대통령이 직접 도안부터 검사까지 할 정도로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이는 박 대통령이 군 출신답게 외국사절 앞에서 의장병들의 깔끔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박 대통령이 의장병에게 관심을 높게 가진 이유는 5·16 쿠데타 당시로 돌아간다.
서울시청 앞에서 육사생도들은 절도 있는 열병 행사를 벌였다.
육사생도의 도열에 감명 받은 박 대통령은 그 후 호위를 맡는 군에게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는 의장병들이 대통령을 임금 모시듯 했다고 한다. 국가원수로서의 호위가 아닌, 국부로서 이 대통령을 호위했기 때문이다.
의장대가 제식과 함께 총 돌리기 등의 묘기 비슷한 동작을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1955년 당시 이 대통령은 해병대 의장대에게 특별지시를 내려 동작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해병대 의장대는 독창적인 동작을 외국을 방문해서 시범을 보이는 등 다양한 행사도 가졌다.
<김문신·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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