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청와대가 노무현 대통령이 2008년 2월 퇴임 후 거처할 곳으로 고향인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꼽자 많은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전직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전례가 없는데다, 노 대통령 스스로 “퇴임 후 당의 고문이라도 맡고 싶다”는 말을 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낙향’ 의지는 일단 확고한 것 같다. 지난 8월26일 주말을 맞아 퇴임 뒤 살 곳을 정하기 위해 봉하마을을 직접 찾은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지난 6일 노 대통령을 수행해 그리스 아테네를 방문 중인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이 같이 간 기자들에게 “노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인 봉하마을로 돌아가 살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구체적인 거주 장소를 결정하기 위해 지난달 26일 봉하마을을 둘러봤다”고 전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당시 3곳 정도의 후보지를 직접 답사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봉하마을로 낙향한다면 이는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 문화’에도 적지않은 의미를 갖는다. 미국 등 선진국의 전직 국가원수들이 활발한 강연이나 저술, 사회봉사 활동을 하면서 국가원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전직 대통령 문화’가 없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 왔다.
우리나라에선 정상적으로 퇴임한 대부분의 전직 대통령들이 일선 정치인 시절 살았던 서울의 집으로 되돌아가 정치적 목소리를 내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정반대로 서울에 머물면서도 ‘은둔생활’을 방불케 할 정도로 너무나 조용히 지내고 있다.
3인의 대통령 배출한 T·K
역대 대통령들의 고향과 퇴임 후의 활동 공간을 살펴보자.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태어난 곳은 황해도 평산이다. 그러나 이승만 전대통령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고, 광복 후 서울로 돌아와서는 1946년 1월부터 경무대로 들어가기 전인 1948년 8월까지 종로구 이화동의 ‘이화장’에 머물렀다. 이화장은 조선 중종때 학자인 신광한이 건립했고, 인조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살던 곳이다. 이승만 전대통령은 4·19로 권좌에서 물러난 1960년 4월에도 이화장에서 한 달 동안 머물다 하와이 망명길에 올랐다.
내각 책임제 하의 윤보선 대통령은 충남 아산이 고향이다. 윤 전대통령은 아산군 둔포면 신항리의, 일명 새말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10세 무렵까지 살았다. 서울에서는 지금은 서울시 민속사료 제27호로 지정돼 있는 대지 1,411평, 건평 250평 짜리 한옥에서 거주했다. 구한말 권세가인 민 모 대감과 개화론자인 박영효가 살았던 집으로, 당시 집의 규모가 너무 커서 고종의 눈총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윤 전대통령은 5·16에 의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1990년 사망할 때까지도 이곳에 거처했다.
5·16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이 태어난 곳은 잘 알려진대로 경북 선산이다. 지금은 구미시에 통합된 선산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 4대에 걸쳐 권세를 누렸던 고 ‘허주(虛舟)’ 김윤환 전 의원의 고향이기도 하다.
박 전대통령은 선산에서 태어났지만, 대구에서 오래 살았다. 30여년간 정권을 장악했던 ‘TK(대구·경북)’ 세력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 태동했다.
노태우 전대통령 건강 악화설
박 전대통령의 생가는 구미시 상모동에 있다. 박 전대통령이 1917년 태어나서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생가 내에는 안채와 사랑채가 있다. 박 전대통령이 10·26으로 사망한 직후인 1979년에는 분향소가 설치됐다. 선거철이 되면 대구·경북지역의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이명박 전서울시장이 방문해 박 전대통령의 재임 기간 업적을 찬양했다. 이 전시장은 차기 대권을 놓고 한나라당에서 박 전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대표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사이다.
10·26으로 박 전대통령이 사망한 후 과도기에 청와대의 주인이 된 최규하 전대통령은 강원도 원주가 고향이다. 고위공직자와 금융기관 간부로 있던 최 전대통령의 아들들이 한 때 원주에 ‘최규하 기념관’을 건립하는 문제를 검토했으나 아직 뚜렷한 진척은 없다.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가운데 가장 고령인 최 전대통령은 지난 7월16일 현재 머물고 있는 서울 서교동 자택에서 미수(米壽·88세) 생일을 조용히 맞았다. 현재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여서 바깥 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다.
청와대에서 최규하 대통령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전두환 전대통령의 고향은 경남 합천군 율곡읍 내천리다. 그렇지만 그는 부산·경남을 의미하는 ‘PK’ 사람이라기 보다는 ‘TK’로 치는 게 일반적이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합천 생가
합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 부산보다는 거리가 가까운 대구로 가는 것처럼 그도 대구공고를 나왔다. 이후 육사 11기의 대구·경북 출신들이 주축이 된 ‘하나회’의 리더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TK’ 인맥의 핵심이 됐다.
전두환 전대통령을 이은 노태우 대통령은 팔공산 자락인 대구시 동구 신용동 용진 마을에서 태어났다. 최초의 대도시 출신 대통령인 셈이다. 노태우 전대통령의 전기에는 이곳의 지세를 ‘한 마리의 큰 용’에 비유한다. 특히 노 전대통령의 생가는 용머리의 중심처에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퇴임 후에는 서울 연희동에 이웃해 살고 있다. 두 사람의 집은 마을 골목 두, 세 블록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한 때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 사이였던 이들간의 왕래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절 ‘5공청산’ 과정에서 전두환 전대통령을 백담사로 ‘유배’ 보내면서 생긴 과거의 악감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희동의 두 전직 대통령은 퇴임 후에 드러난 재임 기간의 ‘검은 돈’과 5·17, 12·12에 대한 단죄 등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더구나 최근에는 각각 75, 74세로 연로해진 탓에 거의 대외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한 살 많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비교적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데 비해,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건강악화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규하 전대통령은 철저한 은둔생활
문민정부 시대를 개막한 김영삼 전대통령의 고향은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이다. YS가 태어나 13세까지 성장한 생가가 있다. YS는 바닷가 마을인 이 곳에서 성장할 때부터 장차 대통령의 꿈을 키웠다고 술회하곤 했다.
영남 출신 YS의 숙명의 라이벌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은 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두 시간인 하의도(신안군)다. DJ의 생가는 하의도 북동쪽 끝인 후광 마을의 끝집이다. DJ의 아호 ‘후광(後光)’은 이 마을에서 따왔다.
‘양김씨’로 지칭되는 두 사람은 고향도 그렇지만 정치생활을 하면서 거주한 서울의 집이 더 유명하다. YS의 ‘상도동’, DJ의 ‘동교동’은 우리 헌정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특이한 것은 지금도 양김씨는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과 달리 정치적 목소리를 활발하게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YS는 명절 때나 취임 인사 등을 위해 상도동 자택을 찾는 사람들에게 현정권을 향해서 ‘독설’을 퍼붓기 일쑤다. 특히 그는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현직 대통령인 DJ를 꼭 ‘김대중씨’라고 지칭하면서 아예 대통령으로 인정하려 하지도 않았다.
반면, DJ도 퇴임 후 ‘동교동 정치’를 하고 있지만 비교적 조용하게 한다. 누구를 극단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자제하고, 가급적 정책적 조언을 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여전히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쪽 사람들이 선거가 있을 때면 찾아 와 손을 들어주길 바라지만, 역시 호남에 일정 부분 지분이 있는 열린우리당을 의식해 확답을 주지 않을 정도다.
노 대통령 낙향 가능성 반반
역대 대통령들의 이런 모습과 비교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낙향 결심은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노 대통령은 2008년 퇴임을 해도 나이가 62세 밖에 되지 않아 한창 일할 나이기 때문에 과연 낙향이 현실화될지에 대해선 완전히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봉하마을은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36번지에 있다. 진영읍에서 동북쪽으로 4.5㎞ 지점인 봉화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진영단감’이 유명하며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곳이다. 봉화산에 봉수대가 있고, 봉수대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봉하(烽下)’라 불리게 됐다.
그토록 외진 봉하마을에서 노 대통령은 어떻게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청와대 관계자는 “퇴임 후 상임고문을 하겠다거나 당원으로 남겠다는 말씀과 봉하마을로의 귀향은 다르다. 봉하마을에서 얼마든지 당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귀향’이 완전한 야인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란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유제성·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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