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범 발언에 청와대 발칵…“독대는 없다”
이희범 발언에 청와대 발칵…“독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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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5-24 09:00
  • 승인 2006.05.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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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실의 파워는 어디서 나오는가.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대통령과의 접근성’이다. 최고 권력자이자 국가의 진로를 정하는 정책 판단의 마지막 단계인 대통령과 수시로 만날 수 있는 물리적 위치 때문에 힘이 붙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과 다른 배석자없이 독대를 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면 그 힘은 더욱 탄력을 받는다.굳이 청와대 비서실뿐 아니라 행정부나 여당 등 범여권의 실력자로 불리는 사람들은 주로 대통령과 독대가 가능한 인물들이다. 물론, 대통령과의 독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굳건한 신뢰가 있어야 하고, 나름대로 대통령에게 여론을 전하고 판단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는 고급정보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난 18일 청와대가 발칵 뒤집어졌다. 참여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이희범 한국무역협회장이 전날 “참여정부들어 장관들이 대통령과의 독대가 힘들어져 대통령과 생각이 달라도 설득할 수 없다”고 한 말을 동아일보와 국민일보가 1면 톱에 올려 대서특필했기 때문이다.이 회장은 그날 오전 서울대 행정대학원이 주최한 ‘장관 리더십 특강’에서 “이전에는 (장관이 대통령과) 독대하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참여정부 들어서는 협의체로 의사가 결정됐다”며 “장관 입장에서는 남들이 모르는 얘기를 대통령과 하고 싶지만 최고통치자가 생각이 달라도 설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그러자 청와대가 발끈했다. 평소 언론을 향해 거침없는 독설을 날리는 것으로 유명한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이 총대를 멨다. 양 비서관은 이 회장의 발언 자체 보다는 언론의 보도 방향을 문제삼으면서 은근히 이 회장을 겨냥했다.그는 “그 내용을 대서특필하는 일부 언론의 판단가치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며 “누가 어떤 말을 한 것이 사실일지라도, 진실이 아니고 근거가 미약하거나 보편적 상식에 어긋나는 경우 기사화하지 않는 것이 언론의 ABC”라고 비판했다

.양 비서관은 또 “조선시대에도 밀실정치를 막기 위해 독대를 금지해 왔다”면서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독대금지 원칙은 주지의 사실로, 이러한 원칙은 시대의 요구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독대가 가신정치, 안방정치, 밀실정치의 산물이었기에 폐지한 것”이라고 덧붙였다.양 비서관은 대신 티타임 때나 식사자리 등 장관과 대통령과의 만남이 수시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한 뒤 “대통령과 독대를 못해 일을 못하거나 설득을 못하는 장관이 있다면 그것은 본인의 무능이거나 아니면 다른 부처와의 협의가 덜 됐기 때문”이라고 이 회장을 겨냥했다.이 회장은 특강에서 ‘과거엔 청와대 수석이 독대에 참여해 힘이 실렸으나 참여정부 수석들은 현황 파악만 한다’고도 말했다. 이에 대해서도 양 비서관은 “수석이 독대로 힘을 얻는다면 그 힘은 비정상적 힘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독대라는 형식을 빌려 특정관료나 정치인에 대한 각별한 신임을 나타내곤 한 것으로 안다”고 비판했다.

노대통령의 독특한 ‘결벽증’

이런 공방이 벌어지면서 ‘대통령의 독대’ 방식이 청와대 주변의 관심을 끌고 있다.양 비서관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도 측근이나 특정 관료들과 독대를 자주 하는 편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희범 회장도 특강에서 “장관 시절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물론, 청와대측은 배석자 없는 1대1 독대가 없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독대는 사라졌으며, 더구나 밀실에서 독대에 의해 인사나 정책이 결정되는 일은 결코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국가정보원장의 주례 독대보고를 없애는 등 ‘밀실통치’의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애썼다. 또 핵심 참모와 우연히 둘만의 자리를 같이 했을 때도 “따로 보고할 것이 있어도 지금 하지 말고, 공식 채널을 통하라”고 말할 정도로 조심을 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나 김한길 원내대표 등과 만날 때 이병완 비서실장을 꼭 배석시키는 것도 독특한 ‘결벽증’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대통령과의 독대 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노 대통령도 국정운영의 큰 방향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이강철 정무특보나 문재인 전 민정수석 같은 ‘친구’나 이호철 국정상황실장, 윤태영 연설기획비서관 같은 ‘신뢰하는 젊은 참모’들을 불러 상의를 하곤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청와대 참모들뿐 아니라 염동연·이광재 의원을 비롯한 국회에 진출해 있는 측근들이나 이기명·명계남씨 같은 제도권 밖의 지인들과도 독대 상의를 하기도 한다는 전언이다. 이밖에 신임 장관이나 퇴임 장관 등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관저에서 오찬 형식의 독대를 하기도 한다. 얼마전 시위농민 사망사건과 관련한 퇴진압력에 버티다가 끝내 옷을 벗은 허준영 전 경찰청장을 부부동반으로 청와대로 초청해 식사를 함께 한 것이 대표적이다.노무현 대통령 이전의 정치인 대통령 시절에는 ‘청와대 독대’가 중요한 통치 수단의 하나였다. 밀실정치, 측근정치, 타협정치가 판을 치던 그 시절의 트렌드에 의한 것이었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동교동계 가신 그룹과 박지원씨 등 신진 측근그룹, 김중권씨를 비롯한 구여권 출신 참모 등과 번갈아 독대를 하며 주변 세력들이 힘의 균형을 갖도록 조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DJ는 재임 기간 동안 국가정보원장을 수시로 청와대로 불러 독대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고 한다. 하나는, 대북 햇볕정책 추진 과정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고 뒷마무리를 하는 데 국정원장과 긴밀한 협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정치권의 동향에 민감한 DJ였기에 국내정치 정보를 직보받기 위해서 국정원장의 보고를 중요시 했다.그러나 DJ 시절에는 모처럼 독대 기회를 잡은 보고자들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나올 때면 늘 찜찜한 기분이 들곤 했다고 한다. DJ가 워낙 모든 분야에 박식하다 보니, 여러 가지 보고를 하는 가운데 오히려 오류가 있는 부분을 지적받고 머쓱해져서 나오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국민의 정부 초기에는 DJP 공동정권의 한 축이던 김종필 국무총리가 매주 청와대에 들어가 김대중 대통령과 독대를 했다.

역대 대통령들, 적극 ‘독대’ 활용

전임인 김영삼 전 대통령도 핵심 참모들과의 ‘독대’를 무척 즐겼다. 그 대상은 DJ와 비슷했다. 자신의 정치계보인 상도동계 핵심 참모 아니면 정보기관장이었다.특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YS는 매주 청와대에서 ‘일요가족예배’를 봤는데, 이 예배를 마친 뒤 당시 ‘소통령’으로 불린 차남 현철씨와 따로 자리를 마련해 이런저런 정국상황을 보고받고 대처 방안을 숙의했다고 한다.YS가 측근들로부터 정국현안에 대한 직보를 받는 또 하나의 통로는 ‘아침 조깅’ 때였다. YS는 청와대 경내에서 매일 아침 핵심 참모들과 함께 조깅을 즐겼는데 조깅 후 아침을 먹을 때 국가 현안을 놓고 깊숙한 대화들이 오갔다.군 출신인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시절엔 정치인들과의 독대가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여당은 철저히 청와대 밑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이 정치 문제로 머리를 싸맬 일은 별로 없었다.

물론,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YS와 DJ, JP 같은 정치9단들과의 머리 싸움이 벌어졌지만 그 때도 정치는 정치인들이 알아서 한 시절이었다.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은 대신 대기업 총수들과 독대를 자주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때 독대를 주선한 인물은 주로 청와대 경호실장이었는데, 대통령과 경제인의 독대 후 이른바 ‘통치자금’이 오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군시절 정보장교를 지내기도 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핵심 참모들끼리 서로 경쟁하고 견제하도록 만드는 ‘디바이드 앤드 룰’(Devide and Rule) 전략을 곧잘 구사했다. 이 과정에서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측근들을 따로 불러 독대를 하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내부 역학구도를 읽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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