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4일 이번 청와대 비서실 개편에서 발탁된 5명의 신임 청와대 수석·보좌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서 스스로의 ‘인사철학’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먼저 이번 청와대 수석·보좌관 인사에서 40대를 수석급으로 전진배치한 이유를 설명했다. 신임 이정호(47) 시민사회, 전해철(44) 민정, 박남춘(48) 인사수석 등 3명이 ‘40대 수석’이다.이 자리서 노 대통령은 “대통령은 국가적으로 인적자원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인재에 있어 세대간 단절이 되지 않게 지속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어 젊은 사람도 과감히 발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참여정부 연령파괴,서열파괴
노 대통령은 수석비서관급 인사를 한 직후에 1~2급 대통령 비서실 인사에서도 ‘서열 파괴’를 시도했다. 민정비서관에 남영주(49) 국무총리실 민정수석, 혁신관리비서관에 강태영(47) 업무혁신비서관, 인사관리비서관에 문해남(47) 인사제도비서관을 내정한 것이다.또 업무혁신비서관에는 김충환(45) 업무혁신비서관실 행정관, 인사제도비서관에 구윤철(41) 인사관리비서관실 행정관을 승진 기용했고, 균형인사비서관에 조현옥(50)씨를 발탁했다.사실 연령파괴, 서열파괴는 노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된 지 오래다. 지난 2월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한 데 이어 3월에는 국무조정실장에 김영주 대통령 경제정책수석, 행정자치부 장관에 이용섭 대통령 혁신관리수석 등 내각에 청와대 참모 출신을 전진배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정부들어 1급 비서관으로 시작한 이병완 비서실장을 차관급인 대통령 홍보수석에 이어 장관급인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것도 마찬가지다. 청와대의 수석비서관은 지금의 직제상 모두 차관급이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시절만 해도 조금 달랐다. 그 때도 다른 수석은 차관급이었지만 경제수석을 비롯한 주요 부처 수석은 장관급이었다.그렇지만 이들의 파워는 일반 장관급들을 능가했다. 무엇보다 대통령과의 접근성 때문에 막강한 파워가 부여됐던 것이다. 참여정부에서도 청와대의 각 수석비서관은 산하에 1~2급 비서관 3~5명을 거느리고 있다.지금은 체제가 많이 달라졌지만 국민의 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청와대의 모든 수석비서관은 행정부의 각 부처를 장악했다.
장관인사도 좌지우지
2001년 3월의 청와대 직제를 보자. 당시 한광옥 비서실장 밑에 8개의 수석비서관실이 있었다. 실장실 직속인 총무비서관(박금옥), 의전비서관(최정일), 국정상황실장(정은성), 1부속실장(김한정), 2부속실장(성인숙)은 별개다.논의의 대상이 되는 8개 수석은 정책기획수석(박지원), 정무수석(남궁진), 민정수석(신광옥), 경제수석(이기호), 외교안보수석(김하중), 교육문화수석(정순택), 복지노동수석(이태복), 공보수석(박준영) 등이었다. 현재 각자의 위치로 봐도 화려한 그야말로 ‘드림팀’이었다.그 때까지만 해도 차관급이었던 청와대 수석비서관이었지만 그 정치적 힘은 장관급 못지 않았고, 국무총리급까지 미쳤다. 또 수석비서관 밑의 비서관들이 행정부의 장관들 보다 큰 파워를 갖기 일쑤였다.예를 들어보자.
당시 정치권 출신으로, 문화·관광 분야의 2급 비서관이었던 A씨(30대 후반)의 방에는 50대 초반의 관료 출신 B씨(3급)와 행정고시를 거친 40대의 C씨(4급)가 있었다.행정부로 치면 국장급 자리였지만 이 방에는 문화·관광 관련 부처 장관은 물론, 각 경제부처 장관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실제로 국가 예산을 주무르는 비서관이었던 데다, 대통령과의 접근성 때문에 웬만한 장관들에 대한 인사권까지 쥐고 있었던 까닭이다. 앞서 김영삼 대통령 때도 여러 가지 사례가 있다. 당시에는 각 수석비서관실이 정부 각 부처를 장악하도록 돼 있었다. 가령, 경제수석은 재경부, 행정수석은 내무부, 공보수석은 문화공보부 등을 ‘책임지고’ 관할했다.그러다 보니 차관급인 수석의 파워가 장관들을 능가했다. 당시 각 부처 장관들은 청와대에 회의가 있어 들를 때면 일찌감치 도착해 해당 수석실에 가서 미리 인사하는 것이 관례였다.그 때만 해도 누구도 이런 일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필자는 당시 경제 부총리인 모씨가 경제수석실의 모 비서관을 1~2분 정도 만나 인사를 하기 위해 반 시간 가량을 문 앞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말 많았던 이원종 수석 행정부이어 언론사까지 장악
앞서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등 군 출신 대통령 때의 청와대 수석비서관은 그 파워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다고 봐도 무방하다.‘청와대’, ‘고위층’이란 말 한 마디에 각종 정책이 표류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더구나 당시 청와대 비서실의 수석비서관급들은 행정부 장관에 대한 ‘인사권’까지 갖고 있었다. 수시로 대통령에게 보고를 직접 할 수 있는 이점 때문에 개각을 할 때 충분히 입김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역대 청와대 수석비서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 시절처럼 수석비서관들이 전횡을 행사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 오랜 기간 청와대에 근무했던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다른 정권에서는 수석비서관들이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며 몸을 사렸지만, YS 때는 대통령의 무신경을 틈타 일부 수석비서관들의 위세가 대단했다는 것이다.가령, 당시 정무수석이었던 이원종씨는 행정부처 장관 인사는 물론이고 언론사의 고위직 인사까지 좌지우지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총무수석이었던 홍인길씨는 ‘돈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어 지금까지도 그 때의 청와대 분위기가 최고였다는 기억을 하는 원로들이 많다.
386참모들 수석 가능성 높아
현재 참여정부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은 도덕성에서 자유롭다. 그러나 ‘아마추어 국정운영’이란 비판의 빌미를 제공한 인물들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의 ‘젊은 수석 전진 배치’라는 정치적 승부수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 주목된다.만일 이번 승부수가 성공하면 윤태영 연설기획비서관을 비롯한 다른 386 참모들도 참여정부 임기 중에 청와대 수석비서관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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