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그는 잘못된 선거제도와 지역구도로 인해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 체계가 고장났다고 역설하는 가운데 외환위기, 성수대교 붕괴의 원인까지 이 때문이라고 진단해 “너무 오버한 것 아니냐”는 구설수에 올랐다. 김 실장은 이전에도 정치권은 물론 언론계의 ‘안티 노무현’ 그룹에 대해 원색적인 언어를 사용해 비판하는 등 정책 입안보다는 대통령과의 코드 맞추기에 열중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과거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청와대사람들 가운데는 김 실장처럼 ‘튀는 참모’가 많다.참여정부 청와대에 현재 몸담고 있는 참모 중엔 김 실장 외에 ‘386 참모’ 그룹인 윤태영 1부속실장,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이 튀는 참모로 꼽힌다. 현정부 초기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윤 부속실장의 행동 반경은 본연의 임무인 대통령 일정관리를 비롯한 ‘신변 보필’에 머물지 않는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매주 ‘국정일기’를 연재해 노 대통령의 복심(腹心)을 전하는가 하면 수시로 기자들과 만나 홍보에 열을 올리곤한다. 그러나 그의 글은 항상 ‘용비어천가’를 연상시킬 정도로 민심과는 동떨어진 미화 일변도라는 지적이 많다.양정철 비서관은 지난해 국내언론비서관 시절 ‘청와대 브리핑’에 게재한 ‘동아·조선은 저주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두 신문을 격렬한 논조로 비난하고 나서 화제를 모았다. 당시 그의 글을 놓고 국정 사령탑인 청와대의 비서관이 아니라 마치 운동권 학생이 대학가 대자보에 쓴 글 같다는 비판이 쏟아졌었다. 이후에도 그는 보수언론으로부터 노 대통령을 보호하는 데 온 몸을 날리고 있다. 청와대에선 “충성심이 높은 많은 참모들이 있지만 윤 부속실장과 양 비서관처럼 자신의 이미지를 구겨가면서까지 몸으로 보필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에 동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참여정부 초기 튀는 참모 많아
참여정부 초기엔 튀는 참모가 훨씬 많았다. 그 중에서 지금은 국회에 진출한 유인태 정무수석은 ‘엽기 수석’으로 통하면서 숱한 화제를 뿌렸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그는 청와대 수석비서관 같지 않은 털털한 외모와 언제 어디서나 연신 피워대는 줄담배, 누구 앞에서나 아무렇게나 막 하는 말, 대통령 주재의 회의 석상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는 배짱 등이 복합적으로 인식돼 그런 별명이 생겼다. 다음은 본인이 들려주는 ‘엽기 수석’ 별명의 유래.“기자들 욕해서 생긴 거다. 참여정부 초기에 청와대 2진 기자들하고 상견례 겸 저녁을 먹는데 자기들이 그 자리에서 나온 얘기는 기사로 절대 안쓴다고 했다. 그래서 이래저래 술도 먹고 격의없이 얘기를 나눴는데, 그 후 1주일 내내 정말 써선 안될 농담까지 기사로 다 쓰더라. 나중에 어떤 회의에 들어가니까 해당 기자들이 보이길래 내가 ‘개새끼들이 있네’라고 그랬지. 그리고 얼마 후 청남대 반환 행사 때문에 내려갔을 때 버스를 타는데 그 기자들이 타고 있길래 내가 ‘이거 사람이 타는 버스에 개가 탔네’라고 하니까, 어떤 비서관이 웃으면서 ‘엽기야 엽기’라고 하더라. 그 후부터 ‘엽기 수석’이란 별명이 붙었다.”그런데 참여정부 초기 청와대의 엽기 수석은 또 있었다.
최근 행담도 개발 의혹 연루로 고초를 당하고 있는 정찬용 전 인사수석도 거의 엽기적이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촌닭’이라고 부르는 등 가식을 찾아볼 수 없는 성품 탓에 엽기적인 언행이 가능했던 경우에 속한다. 공·사석을 막론하고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직설적인 화법을 사용하는 그는 청와대 기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청와대에서 나간 후 행담도 사건이 터져 기자들이 머무는 춘추관에 찾아와 해명 기자회견을 할 때도 “낙후된 전라도를 위해 필요하다면야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같은 역할을 해야제”라고 당당히 말하기도 했다.비서관급 중에선 기자 출신이거나 정치판의 물을 먹은 사람이 대부분인 홍보수석실에 ‘끼’가 넘쳐나는 참모들이 많았다. 오랫동안 정당에 몸담았던 모 비서관은 참여정부 출범 초기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언론과의 긴장관계를 강조하던 시점에도 전혀 위의 눈치를 보지않고 일부 친한 기자들과 고급 술집에서 수시로 술자리를 함께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으레 ‘물주’가 불려 나왔다.참여정부 초기의 튀는 참모로는 이밖에도 ‘외모는 장비, 두뇌는 조조’라고 불리는 초대 문희상 비서실장과 술자리 향응 파문으로 물러난 양길승 1부속실장, 국회로 진출한 뒤에도 꾸준히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등을 꼽을 수 있다.
DJ정부 ‘3박’ 대통령 ‘입’ 역할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청와대도 개성 넘치는 참모들이 적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 청와대 사람들 가운데 상징적인 인물은 차례대로 공보수석(대변인)을 지낸 박지원·박준영·박선숙씨 등 ‘3박’이었다. 이들 세 사람은 마치 사제지간처럼 서로 업무를 배우고 때론 막후에서 지원하며 DJ의 입 역할을 이어서 했다.그러나 청와대에서 나온 후의 생활은 너무나 다르다. 잘 알려진대로 박지원씨는 대북송금과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가 실명 위기에 빠지는 등 온갖 고초를 겪고 가까스로 풀려나 있지만 최근 불거진 X파일 사건으로 또다시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반면 중앙일보 부국장 출신으로 국민의 정부 탄생에 모종의 역할을 했지만 청와대에선 박지원씨의 그늘에 철저히 가려 있었던 박준영씨는 지금 민주당 소속 민선 전남지사가 돼 있다. 최초의 여성 청와대 대변인 기록을 세운 박선숙씨도 참여정부들어 환경부 차관으로 발탁돼 2년반째 장수를 하고 있다. 그는 청와대 공보수석실 비서관과 대변인을 지내면서 자주 남자 기자들과 밤늦도록 통음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또 명절엔 항상 기자실에 넥타이 선물을 돌리곤 해 당시 ‘박선숙표 넥타이’가 춘추관에서 유행했다.
YS정부 상도동 가신 권세 누려
국민의 정부 청와대 살림을 맡았던 박금옥 총무비서관도 눈에 띄는 여성 참모였다. 김대중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그 직급(1급) 그대로 한 자리(총무비서관)에서 근무한 박 비서관은 중년의 나이(1956년생)였지만 미혼에 외모가 수려한 데다, 붙임성이 좋아 청와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주량도 만만치 않았는데 특히 젊은 남자 기자들과 술자리를 해도 결코 먼저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그런 성격이 좋은 평판을 받아서인지 그 역시 국민의 정부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요직(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앞서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청와대 사람들 가운데는 그들의 보스인 YS를 닮아 톡톡 튀는 참모들이 유난히 많았다. 특히 초기에 청와대에 입성한 ‘상도동’ 가신 출신 참모들은 거칠 것 없는 행동을 하면서 권세를 누렸다.최근 불거진 ‘X파일’ 사건에서 도청팀인 ‘미림팀’의 보고를 받아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이원종 정무수석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전직 안기부 직원인 김기삼씨는 “당시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은 고교 동창생과 밥먹는 자리에서 ‘현철씨 전횡이 심하다’는 얘기를 했다가 미림 보고서에 걸려서 경질됐다”고 증언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결과적으로 일개 정무수석이 상관인 비서실장을 밀어내는 파워를 과시한 것이 된다. 그때도 청와대 기자실에선 이원종 수석이 ‘소통령’ 현철씨와 함께 문민정부의 정보를 독점하고 정부 요직뿐 아니라, 사기업과 언론사 인사에도 개입하는 등 나라 전체를 좌지우지한다는 소문이 나돌았었다.문민정부 청와대 참모 가운데는 특히 ‘함량미달’인 인물이 많았던 것으로 당시 상도동과 청와대를 출입했던 기자들은 기억한다. 심지어 수석비서관급 가운데서도 머리 보다는 완력을 앞세우는 스타일도 있었다. 상도동계의 막내급들이 주로 차지했던 행정관급까지 내려가면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뇌물을 먹거나 밖에서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등 ‘튀는’ 경우가 많아 양식 있는 상도동 사람들의 속을 썩였다.상도동계의 한 젊은 참모는 기자들에게 돌리라는 떡값을 가로채 착복했다가 발각되는 바람에 상도동 고참들에게 끌려가 호된 꾸지람을 당하기도 했다 한다.
노태우정부 박철언 특보 실세
노태우 대통령 시절 청와대의 실세는 누가 뭐래도 박철언 특보였다. 노 대통령의 처고종사촌이기도 한 박 특보는 국내정치부터 대북 정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국정에 관여해 ‘LP(리틀 프레지던트)’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그는 곧 발간될 회고록(가제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을 통해 자신이 청와대에 있으면서 밑그림을 그린 1990년 3당통합(민정·민주·공화당 합당) 추진 과정을 포함한 청와대 비사를 소개할 계획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그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도 청와대 정무비서관과 안기부 특보를 역임했기 때문에 5·6공 청와대의 굵직굵직한 뒷 얘기들이 이 책을 통해서 소개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정무1장관으로 있던 1990년 4월. 정치적 충돌이 잦았던 당시 김영삼 민자당 최고위원을 겨냥해 “3당 통합 과정이나 소련 방문 중에 있었던 비화(秘話)를 얘기하면 YS의 정치생명은 하루아침에 끝날 수도 있다”고 기자들에게 말해 민자당을 발칵 뒤집어놓는 등 자주 튀는 언행을 했다.전두환 전 대통령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도 튀는 행동을 하는 참모들이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당시엔 대통령의 카리스마가 워낙 강해 참모가 대통령보다 더 빛을 발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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