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한계 보여준 10·29 재보선
‘선거의 여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힘이 다시한번 입증됐다. 10·29재보선 결과 한나라당의 텃밭 영남권에서 무소속 돌풍이 거셌다. 박근혜 전 대표가 침묵을 지킨 여파가 크다. 6·4 재보선 때보다는 다소 나아졌다고 하지만 ‘한나라당=이명박 대통령(MB)당’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충청권에선 자유선진당이 웃었다. 보수진영의 지역분할 구도 양상이 확연해지면서, 한나라당 선거흥행의 보증수표로 박 전 대표의 가치가 입증됐다. 박근혜 전 대표가 ‘침묵의 정치’로 여권 주류를 압박한 셈이다. 한나라당은 14명의 지방일꾼을 뽑은 10·29 재보선에서 5곳(기초단체장1, 광역의원2, 기초의원2)을 건졌다. 지난 6·4재보선에 비해 선방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전통적 텃밭인 영남권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울산 울주군과 부산 서구, 경북 성주에서는 승리했지만 경북 구미와 포항, 영천, 그리고 경남 의령에서 무소속이 약진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 무소속 당선자들이 대부분 친한나라당 성향이긴 하지만 수치상으로는 영남권의 절반을 잃은 셈이다.
경북 구미 완패, ‘박근혜의 힘’ 절감
한나라당 관계자는 “가장 뼈아픈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인 경북 구미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완패한 것”이라며 “박근혜 전 대표가 한번만 다녀갔으면 전세는 뒤집어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경북 구미시 제 4선거구에서는 무소속 김대호 후보(54.51%)가 한나라당 김인배 후보 (45.48%)를 10%차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경북지역 한나라당 당직자는 “박 전 대표가 침묵하면서 ‘한나라당=MB당’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마치 1996년 총선 때 ‘신한국당=YS당’이 되면서 자민련 바람이 거세게 일어날 때와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구토 회복’을 부르짖으며 공을 들였던 충청권 선거에서도 자유선진당에 전패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MB선대위의 중소기업위원장을 지냈던 박상희 전 의원은 “각종 재보선 불패의 한나라당 신화가 지난 6·4재보선 이후 내리막길에 접어들었음을 다시한번 입증한 셈”이라며 “보수진영의 세력분할이 확연하게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즉, 'MB-박근혜-이회창'으로 대표되는 보수의 3각축이 개별적으로 대응한 이번 선거는 ‘MB 지지기반의 한계’가 노출되며 ‘박근혜-영남, 이회창-충청’의 분할구도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특히 한나라당내에서는 6·4재보선에 이어 ‘선거의 여인’ 박근혜의 위력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 박 전 대표를 제외한 한나라당의 선거 승리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미 박근혜 전 대표는 2004년 4·15총선에서 쓰러져가는 한나라당을 구했다. 이후 2년3개월간 한나라당 대표로 있으면서 네 번의 재보권 선거를 모두 압승했다.
박근혜-昌 연대는 96년 녹색바람보다 파괴력 강할 듯
특히 자유선진당의 충청권 석권이 증명되면서 적어도 선거에 있어서 박 전 대표의 향후 입지는 더욱 확고해졌다.
구 여권 관계자는 “96년 15대 총선 때 자민련 녹색바람은 YS에 의해 밀려난 민정계와 공화계가 지역 정서를 자극했기 때문”이라면서 “만약 박 전 대표가 이회창 총재와 손을 잡는다면 향후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96년 녹색바람 이상 태풍이 몰아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재오 귀국 전 박근혜 결단할 듯
이미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지난 대선 때 BBK사건으로 판세가 흔들리자 박근혜 전 대표를 찾아가 동맹을 제안한 바 있다. 박 전 대표는 또 지난 96년 자민련의 구애를 뿌리치고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을 택했다. 때문에 ‘박근혜-이회창 연대’는 여권의 역학구도가 변하면 언제든지 성사될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
한나라당 당직자는 “박 전 대표가 두 차례 재보선을 지원하지 않은데 대해 주류 강경파들이 크게 섭섭해 하면서도 공개적으로 반박하지 못하는 이유는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위상뿐만 아니라 그의 선거 마케팅과 잠재적 탈당 가능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본전을 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박 전 대표가 승리한 게임”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여권 일부에서는 주류 매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말 개각 때 친박계 중진의 입각을 점치고 있다. 여권 주류 측에 확실한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박 전 대표와 갈등이 표면화되면 내년 4월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참패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권이 최근 YS의 차남 김현철씨를 여의도 연구소 부소장으로 기용하는 등 견제 세력군 형성에 고심하고 있지만, 박 전 대표와 어깨를 견주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재오 전 의원의 연말 귀국과 관련 여권 실세들이 박 전 대표 측 눈치를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경섭 기자 kbswave@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