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의 원인과 결과를 두고 탄핵 반대 진영은 당리당략적 탄핵에 대해선 대규모의 집회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인과 논리를 주장하는 데 반해, 찬성 진영은 사회 혼란과 국론 분열을 야기할 뿐이라는 논리를 강조하는 프레임이 구성된다.사태 해결을 위해 찬성 진영이 즉각적인 자진 해산을 촉구하는 데 비해, 반대 진영은 공직선거 기간이 시작되면 그만둘 것이라는 자제력을 내세운다는 점이 각각 강조된다.결국, 촛불 시위를 둘러싸고 정당한 시민권의 행사라는 프레임과 은밀한 배후 세력의 조직적인 동원이라는 프레임이 서로 대립하는 방식으로 정치 갈등 현실이 재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세 번째로 탄핵 관련 방송은 편향 방송 시비 논란을 또 하나의 경쟁하는 프레임들로 구축하였다.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 민주당과 한나라당 관계자가 두 공영 방송사를 차례로 항의 방문하면서 이 문제가 탄핵 정국의 정치 쟁점으로 부상하였다. 여권은 야권이 제기하는 편향 방송 시비를 언론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규정하며 방송에 대한 야권의 규제 방침을 신군부 세력의 방송 장악이라는 역사적 사례에 견주거나 신보도지침이라는 은유를 써가며 비판한다. 그러나 편향 방송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은유나 역사적 의미와 관련된 프레임 요소는 관찰되지 않았다. 결국, 편향 방송 시비는 공영 방송의 본분 망각이라는 방송 공격 진영의 프레임과 야권의 정치 공세라는 방송 옹호 진영의 프레임이 서로 경쟁하면서 탄핵 정국의 갈등을 새 국면으로 전개시켰다.
4. 담화분석
1) 3개 방송사의 특성을 상대적으로 내용 비교한 결과를 요약하면, MBC가 KBS나 SBS에 비해 평가적인 표현을 상당히 많이 사용하였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탄핵 가결에 대한 국민 반응이건 야 3당에 대한 표현이건, 좀더 감정적이고 역동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서도 근거가 충분치 않은 단정이나 예측을 함으로써 문제점을 드러냈다.
2) 열린우리당과 야 3당의 비교를 보면, 열린우리당에 대한 방송의 초기 묘사는 분노, 비통, 울분 등이었던데 비해 한나라당을 위시한 야 3당에 대해서는 무소불위의 힘, 음모적 치밀함, 오만함 등이 집중적으로 부각되었던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열린우리당에 대해서 ‘여유’, ‘고무’ 등과 더불어 ‘잡음’, ‘곤혹’ 등의 판단 표현이 함께 활용되었던 데 비해 야 3당에 대한 표현이 ‘당황’, ‘초조’, ‘절박’, ‘휘청’, ‘경악’ 등으로 바뀌었다. 탄핵 가결 직후에 열린우리당에 부여되었던 많은 감정적 표현들이 야 3당으로 옮겨간 형국이다.
3) 각계의 반응을 보도하는 데 있어서도 판단 표현이 자주 사용되었는데, 내용상으로도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국민의 반응은 ‘사태에 대한 당혹감’과 ‘정치권에 대한 성토’로 일반화되었고, 열린우리당과 야 3당의 반응 역시 ‘분노한 여당’과 ‘오만한 야당’의 구도 속에서 지나치게 많은 판단 표현이 사용되었다. 정확한 정보 전달에 의해서가 아닌 화자의 가치가 개입된 단어들을 사용하여 여야 구도를 묘사하였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4) 토론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누구에게 발언권을 부여하고 누구로부터 박탈하는지를 조사한 결과, 탄핵 찬성과 반대 집단별 차이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발언권 부여 횟수에서 박탈 횟수를 빼어 비교했을 때, 탄핵 찬성 집단은 총 75회의 발언권을, 반대 집단은 총 79회의 발언권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 차이가 진행자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문제삼을 만큼 크다고 보여 지지는 않는다. 대신, 탄핵 찬성 집단에 대해 발언권도 많이 주고 뺏기도 많이 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느슨한 기준 적용해도 공정하지 못해
보고서는 결론적으로 ‘탄핵안 가결을 둘러싼 갈등을 합법적 논쟁의 영역에 속하는 제도권 정치집단 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본 것이 아니라 일탈적 행위로 보았거나 그렇게 했던 것으로 추론된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서 방송사들이 탄핵안 가결을 ‘잘못된 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가해자와 피해자의 틀로 보였고, 언어도 탄핵 반대 세력은 ‘억울한 약자’, 탄핵 찬성 세력은 ‘부당한 강자’로 표현된 것이다. 탄핵안 가결을 주도한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 3당에 대해서는 ‘무소불위의 힘’, ‘음모적 치밀함’, ‘오만함’ 등으로 부각됐다. 그래서 결론은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발표한 것이다.
언론인 포럼의 설문조사
그러면 언론인들 스스로는 탄핵 정국을 전후한 언론사의 보도 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때마침 한국언론인 포럼(회장·윤명중)이 탄핵 정국과 4.15총선을 전후해 우리의 공영 방송(KBS, MBC)과 메이저 신문(조·중·동)들이 보인 보도 행태에 대해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기에 그 결과를 요약해 본다.여기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언론인 포럼을 간단히 소개해 보겠다. 언론인 포럼은 방송사와 신문사의 전직 보도· 편집국장, 해설·논설위원장, 앵커, 특파원 출신들이 중심이 돼 결성된 언론 단체다. 회원들 모두가 보도와 편집의 실무총책임자를 거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갖는 의견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아무튼 언론인 포럼은 특정 방송이나 메이저 신문을 매도하기 위한 취지가 아니라 후배 언론인들에게 ‘바른 언론의 정도’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싶은 충정에서 설문조사를 한 것 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런 조사를 하게 된 동기가 공영 방송과 메이저 신문의 보도 행태가 편향성을 보였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음도 밝혔다. 그러면 결과를 보자.먼저 공영 방송에 대해서는 무려 96.2%가 여당에 편향적이었다고 대답했다.(너무 편향적 50%, 상당히 편향적 40.4%, 조금 편향적 5.8%)공영 방송이 공정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3.8%에 불과했다.프로그램별로는 뉴스에서 64.5%가, 기획 취재물에서 76.9%, 다큐멘터리에서 19.2%, 그리고 토론, 좌담에서 50%가 편향적이었다고 답변했다.그리고 이런 편향적 보도가 4·15총선에서 영향을 끼쳤다는 응답은 94.2%로 나타났다.(결정적 영향 34.6%, 상당한 영향 51.9%, 조금 영향 7.7%)그런데 조·중·동 등 메이저 신문들은 23.1%가 야당에 편향적(상당히 편향적 17.7%, 조금 편향적 5.4%)이었던 반면 공정했다고 응답한 것은 76.9%(매우 공정 9.6%, 대체로 공정 67.3%)에 달했다.그리고 스트레이트 뉴스에서 5.8%, 특집 기획물에서 9.6%, 사설·논단에서 19.2%가 편향적인 것으로 나타나 4·15총선에서는 15.4%가 영향을 미쳤다고 답변했다. (상당한 영향 1.9%, 조금영향 13.5%)
엄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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