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 역풍, 방송 역할론 두고 설전
탄핵안 역풍, 방송 역할론 두고 설전
  • 엄광석 
  • 입력 2004-12-13 09:00
  • 승인 2004.12.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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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학자들도 다툰다
먼저 방송이 탄핵 반대 여론을 유도했다는 부분에 대해서 알아보자.외국어대 김우룡 교수의 말이다.“언론은 어떤 사안에 대해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답안지를 제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가령 안락사 문제를 예로 들어봅시다. 언론이 안락사가 불가피하다고 강요하면 언론은 선전 도구에 불과합니다. 언론은 ‘안락사에 이런 면이 있어 필요성을 얘기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생명 경시는 안 된다는 측면에서 반대한다’고 서로 대립된 견해를 소상히 소개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이 편견 없이 판단하게 됩니다. 이번 탄핵 사태의 경우에도 왜 탄핵에 이르게 됐고, 탄핵이 갖고 있는 부정적, 긍정적 견해는 무엇인지 상세히 알려 주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언론의 기능입니다. 그런데 방송은 그런 역할을 소홀히 한 채 탄핵 반대로만 몰았습니다.”성균관대 김정탁 교수도 방송의 탄핵 보도는 문제가 많았다는 입장이다.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병은 좋게 얘기해서 계몽적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권위적이라는 것입니다. 방송이, 언론이, 우매한 국민들을 리드하고 일깨워 주어야 한다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권위적이 된 언론은 스스로 의제를 설정(Agenda Setting)하고, 이를 정치 사회화(Political Socialization) 하려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이번 방송의 보도 태도는 자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방송하는 것이니 국민들은 받아먹으라는 식인데, 문제가 큽니다. 그런데 이것은 신문도 마찬가지입니다.”김정탁 교수는 이번 방송의 탄핵 보도에 있어 ‘침묵의 나선이론’이 그대로 적용됐다고 말한다.“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나오는 침묵의 나선 이론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게임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진짜 여론을 모르는 상황에서 A라는 사람이 어떤 사안에 대해 옳다고 큰 소리를 치면 A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이 다수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게 되고, A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 소수라고 생각해서 입을 다물게 됩니다. 이번 방송의 탄핵 보도에서도 탄핵 반대의 목소리만 크게 보도하다가 보니까, 탄핵 지지 목소리는 사그라진 것입니다.”그러나 한일장신대 김동민 교수는 다른 의견이다.

“방송에 그런 보도가 나간 것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들이 한 행동(탄핵 가결)이 정당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가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또한 탄핵 가결 이후 헌재의 결정이 나오기까지 자신들이 한 행위에 대한 성찰이 있었어야 했습니다. 한나라당 일부에서 반성은 있었다고 하지만, 탄핵 발의 주도 세력은 전혀 반성이 없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방송 보도 때문에 여론이 악화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 것입니다. 방송이 탄핵 순간의 장면을 계속 반복해 보여준 것도 국민적 관심사를 반영한 것이고, 탄핵 반대가 높다고 보도한 것도 여론을 반영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보도였습니다.”이 정도면 생각이 서로 얼마나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음은 탄핵 반대와 찬성의 목소리를 3개 방송이 일률적으로 7:3의 비율에 맞춰 인터뷰해 방송한 것이 과연 옳은 것이었느냐에 대한 논쟁이다.

7:3 인터뷰 비율은 옳은가
이번에는 김동민 교수의 의견부터 먼저 들어보자.“탄핵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인터뷰를 7:3으로 많이 넣은 것은 비율상, 확률상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여론조사 결과 탄핵 반대의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언론의 기능은, 보도의 본령은, 여론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사실 탄핵 이전부터 국민의 60%는 탄핵에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탄핵안 가결시의 장면 보도이후 여론이 반대가 70%로 나타났다면, 10% 정도가 그로 인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후에도 반대만 크게 보도했다면 편향성에서 지적 받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이 부분에 대해서도 김우룡 교수의 의견은 전혀 다르다.“방송이 탄핵 반대의 여론이 70%라고 해서 7:3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인터뷰해 집중적으로 내보냈다는 것은 보도에서의 ABC를 어긴 것입니다.사실 여론은 속절없는 것입니다. 국민에게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언론은 균형을 맞춰 국민들이 차분하게 안정을 지키며 판단할 수 있도록 찬·반의 근거를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토론·시사·기획 프로그램의 편향성 시비
다음은 좌담회, 토론회, 시사 프로그램, 기획 취재 프로그램에서의 편향성 문제다. 다시 순서를 바꿔 김우룡 교수의 의견을 먼저 듣는다.“언론은 사회적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이를 투명화(Crystalize) 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이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왜 언론이 나서서 탄핵 지지는 나쁜 것이라는 판단을 유도합니까? 이렇게 되면 언론은 정부·여당의 선전 기관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련 공산당 시절의 프라우다와 이즈베스티야와 무엇이 다릅니까? MBC의 시사매거진 2580, KBS의 미디어 비평, 각종 기획, 보도 특집 프로그램들이 그런 행태를 보였습니다.”

이에 대한 김동민 교수의 반론.“토론회와 좌담회의 경우, 참석자의 성향은 모두 파악하지 못했으나, 미루어 짐작컨대 그런 분위기에서 탄핵을 찬성하는 사람들에 대한 섭외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따라서 방송이 의도적으로 야당을 음해하고, 여론을 조작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시사 프로그램이나 기획 취재 프로그램도 국민적 관심사를 반영한 것입니다. 촛불 시위가 계속되고 있고, 헌재의 판결과 총선에 어떻게 반영될지에 관심이 모아진 이상 사회의 아젠다로 설정하고 다루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다만 그런 것을 다룰 때 균형의 문제는 있을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다 보지 못해서 확실한 얘기는 할 수 없지만 탄핵 지지 여론도 20∼30%였으니까, 그 정도의 목소리를 적절히 반영했느냐, 만일 반영하지 못했다면 문제로 지적할 수는 있겠습니다. 물론 100% 탄핵 반대의 목소리만 냈다면 문젭니다.”

그러나 이번 탄핵 결정 과정에서 다수와 소수의 의견이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이슈가 제기되고 타협점이 모색되는 민주적 절차가 국회에서 전혀 없었다는 점이 국민들에게 정치 혐오감을 갖게 한 주요 원인의 하나인데, 방송도 똑같은 우를 범했다는 학계의 지적(숙명여대 박천일 교수)이 있었다는 점을 밝혀둔다. 결국 탄핵에 대해서도 찬성과 반대 의견이 다함께 있었음에도 프로그램에서 반대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몰아간 것은 문제였다는 것이다.

야당의 방송 정책 때문이다
그러면 네 번째로 방송이 그런 양태를 보이게 된 원인에 대한 시각을 알아보자. 이번에는 김동민 교수의 의견을 먼저 듣는 게 순서이나 김우룡 교수 측에서 문제를 제기했기에 먼저 들어본다.“KBS와 MBC 등 공영 방송은 야당인 한나라당의 언론 정책이 자기들의 이해와 상충되기 때문에 야당이 집권하면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누적돼 그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MBC의 경우 한나라당이 민영화 정책을 견지하고 있는데, 민영화가 되면 구조조정이 따르게 되고 경영이 합리화되어 지금까지 누리던 혜택을 잃게 되는 것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KBS는 2TV를 민영화한다는 게 역시 한나라당의 방송 정책인데, 그렇게 될 경우 1TV의 경영이 난관에 봉착하게 돼 재정적 토대가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리고 양 공영 방송사 내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기득권 내지는 부패 세력에 대한 반감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KBS와 MBC의 이사진, 경영진이 친정부적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는 것도 여당 편향 시각을 보이게 된 원인입니다.”김동민 교수는 즉각 반론한다.

“KBS와 MBC 등 공영 방송이 야당의 방송 정책 때문에 이를 두려워해서 여당 편향이라는 것은 학자답지 않은 지극히 정치적인 해석입니다. 한나라당의 방송 정책이 과연 옳은 것인지, 김 교수가 민영화를 주장하는 한나라당의 방송 정책에 찬성한다면, 저는 그런 찬성 자체가 올바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렇게 결부시키는 것은 너무 정치적입니다. 저는 방송이 그런 경향을 보인 것이 방송 제작자들의 판단과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방송 제작자들의 양식을 믿기 때문에 그들이 노 대통령이나 여권에 유리한 여론을 지속시키기 위해, 또는 야권에 타격을 주기 위해 악의적으로 편성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그렇다면 조·중·동의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서로 어떻게 견해가 다를까?김동민 교수는 ‘방송의 야권 비판이 조·중·동의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 수위보다 낮으며 특정 아젠다에 대해서도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요즘 방송을 자세히 지켜보는 사람들이라면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김우룡 교수는 조·중·동은 공영 방송과는 달리 독자적인 컬러가 있는 민간 신문으로,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질 좋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이고, 그들의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권 지지 세력의 악의적인 네임콜링(Name Calling)으로 오히려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친일언론, 족벌언론으로 매도해 버린다는 것이다.언론의 주관적 판단에 대해서도 김우룡 교수는 충분한 정보 제공으로 시청자나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김동민 교수는 지면이나 보도 시간의 제약 때문에 기자들의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주관적 판단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필자는? 언론이 언론이기 위해서는 환경을 감시해야 하며, 이 환경은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전체를 말하는 바, 이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정부 권력에 대해, 세금은 제대로 쓰고 있는지, 부정비리는 없는지, 항상 눈을 부릅뜨고 지켜야 하는 감시견(Watch Dog)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김우룡 교수의 견해에 동의한다. 권력을 감시, 비판하지 않는 언론은 있을 필요가 없다.

엄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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